변죽만 울리고만 세법개정안

2016년 세법개정안이 나왔다. 예년보다 조금 빠르다. 국회에서는 충분한 예산심의를 위하여 국가재정법을 개정하여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에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도록 하였고 올해가 120일이 첫 적용되는 해이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개정안 항목이 190개에 이른다. 잡다한 내용이 담겨 있다. 올해는 세제발전심의회의 분과위원회가 예년과 달리 여러번 개최되어 무엇인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세제발전심의회는 여전히 세제개정에서 주도권이 없다. 60인이 넘는 전체회의는 추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종전에는 정부안은 곧바로 세법 개정법률이라는 등식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요즘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칼자루를 쥔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고,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는 커졌고 조직화되었다. 정부의 정치적 고려는 좋은 세법입안의 걸림돌이다.

지지난 해 연말정산 파동으로 개정초안이 백지화된 것은 세법개정의 주무부서인 세제실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되어 버렸다. 이를 계기로 세제실의 입법 주도권은 힘을 잃은 느낌이다.

이번 개정안도 개정항목은 무려 190개에 이르지만 자잘한 것이 대부분이다. 예컨대 출산세액공제액을 둘째, 셋째의 경우 20만원, 40만원 늘려주면 출산장려라는 조세정책적 목적이 달성될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 봉급생활자의 거의 과반인 48.1%가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 국민개세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는 묻혔다.

오히려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연장하고 근로장려금도 늘려 면세자 비율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완전포괄주의 증여세는 실패작이라는 지적이 있는 가운데 소득세와 체계를 조정하는 문제도 고심의 흔적이 없다. 세금은 국민이 내는 국민회비이다.

정부가 내세우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 조세형평을 이루고 재정을 튼실하게 한다. 나라살림을 맡고 있는 정부가 구호에 그치지 말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를 정치적 차원에서 접근하면 올바른 해법이 나오지 않는다. 국회도 재정영역과 세법에 있어서만큼은 포퓰리즘을 참아야 한다. 이번에 야당 측은 법인세, 소득세 인상을 내용으로 하는 의원입법안을 발의하여 이를 손대지 않은 정부안과 상충된다.

세율 인상안은 정강, 정책에 따른 것이므로 국회에서 장단점을 충분하게 심의하여 그 결과에 따르면 된다. 반면 대다수의 조세관련 의원입법은 혼란스럽다. 거개가 특정, 개별 사안에 대하여 조세감면을 하자는 내용이다.

제주도 내 구입 관광상품에 대한 부가세 환급, 신문구독료 30만원 소득공제, 초·중·고 체험학습비 특별세액공제 등은 다분히 특정대상을 겨냥한 포퓰리즘 법안이다. 적어도 세법개정안만은 각 정당의 정강, 정책의 검증을 거쳐 나와야 맞다.

일본의 내각 세제조사회는 세법교수 등으로 구성되어 연중 가동한다. 회의록, 토의자료도 공개하고, 회장은 매번 기자회견을 한다. 사실상 공개토론으로 지혜를 모은다, 각 정당도 세제조사회가 구성되어 있다. 임기응변식인 우리와 다르다.

그렇다면 핵심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정부의 세법입법 현실은 어떻게 개선하여야 하나? 주무부서인 세제실의 싱크 탱크 기능을 보완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의 역할도 증대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정부나 정치권이나 세제에 관하여서는 전문가의 역할을 강화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여야 한다. 변죽만 울리는 세법개정안은 주무부서인 세제실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