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면가왕'이 던진 메시지

 

복면은 얼굴을 못 알아보도록 그 일부나 전부를 가리는데 쓰는 보자기다. 가면은 얼굴을 감추거나 달리 꾸미기 위해 나무, 종이 또는 흙으로 만든 탈이다. 복면과 가면은 재질만 다를 뿐, 익명을 보장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에 착안한 TV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모 방송사의 “복면가왕”이 바로 그것. 실제로는 가면을 쓰고 나오나 프로그램이 그렇게 명명되었으니 복면이라고 하자. 복면을 쓴 채 누가 노래를 더 잘하는가를 견주는 프로그램이다. 시쳇말로 한물간 가수, 아이돌 그룹 멤버, 걸 그룹에서 주로 춤을 추던 멤버도 출연한다. 개그맨, 탤런트도 나온다. 

감미로운 발라드곡을 부르는 미성(美聲)의 복면이 나왔다. 누구나 발라드가수 중한 명인 줄 알았다. 복면을 벗으니, 이게 웬일. 강한 비트곡을 불렀던 힙합 아이돌 그룹 소속가수가 아닌가. 애절한 고음으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1,2대 가왕은 또 어떠한가. 복면을 벗으니 걸 그룹 소속 가수다. 걸 그룹이나 아이돌 그룹에 속해 있으면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기 어렵다. 그러니 복면을 쓰고 나와 평소와 달리 자기 개성으로 노래를 부르면 시청자들이 의표를 찔릴 수 밖에 없다. 

걸 그룹에서 주로 춤을 추던 가수가 복면을 쓰지 않고 무대에 섰다면 시청자들은  “춤이나 출 것이지 무슨 노래를”이라며 삐딱하게 볼 것이다. 그런 편견에 사로 잡혀 있으면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잘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힙합 아이돌 그룹 가수도 그렇다. 송창식이나 윤형주 류(流)의 포크송이나 애잔한 가사와 감미로운 선율의 발라드 풍(風)에 빠졌던 필자 세대 중 힙합을 좋아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힙합 아이돌 그룹 가수가 복면을 쓰지 않고 무대에 섰다면 그 세대는 아예 채널을 돌려버릴 것이다. 이 모두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다.

그러나 복면을 하면 누군지, 외모가 어떤지를 가늠할 길이 없다. 그저 목소리가 아름다운지, 창법은 탁월한지에만 포커스를 맞출 따름이다. 최근 동아일보에 소개된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교수의 논평이다. “인간은 기존의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 외부자극을 한번 걸러 인지하는데, 얼굴을 가리면 고정관념 없이 출연자의 진면목을 본다.” 복면을 하지 않았다면 그 가수에 관한 선입견으로 노래를 평가하나, 복면을 하면 그런 것 없이 오로지 노래로만 진면목을 평가하게 된다는 것. 

편견과 선입견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사람의 진면목을 보기 앞서 고향, 학교, 가문과 외모로 사람됨과 능력이 재단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그런 세상을 향해 외친다. “제발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능력 위주로 평가하라”고. 그 점에서 이 프로그램이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하나 아쉬운 것은 최고인기가수들이 복면가왕에 출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괜히 출연해서 탈락하면 망신살이 뻗치기 때문이리라. 굳이 그러지 않아도 인기를 누리는데 쓸데없이 출연하여 손해 볼 일 없다는 심리에 이해는 간다. 

그러나 최고인기가수들이 가창력을 인정받는 것조차도 노래를 잘 했으니 최고인기가수가 됐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이 복면을 씀은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복면을 쓰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 비겁한 게 아니라 당당하다는 것이다. 복면을 하고도 탁월한 가창력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최고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복면이 필요한 사람은 최고인기가수지 시위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