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 정국'으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정치인생 최대위기를 맞고 있다.
朴 대통령 '배신의 정치'로 낙인…운신의 폭 좁아져
당청, 친박-비박, 여야 갈등 일촉즉발…정치인생 최대위기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과 관련, 예상보다 거센 박 대통령의 비난에 '충격파'가 새누리당을 덮치고 있다. 특히 유승민 원내대표가 의원들로부터 재신임을 받았지만 당청 간, 계파 간, 여야 간 갈등은 여전해 '식물 원내대표'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앞서 박 대통령은 전날(25일) 국무회의에서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여당의 원내사령탑도 정부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국회의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배신의 정치'를 지적하며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이 심판해주셔야 할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 朴 대통령, 유승민 '배신의 정치'로 '불신임' = 박 대통령이 인식하는 '자기의 정치철학과 정치적 논리'는 유 원내대표가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 확장정책을 펴는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실패"라는 등 정부정책을 비판한 것에 대한 지적으로 풀이된다.
또한 유 원내대표는 정부가 반대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를 거듭 주장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유 원내대표 '불신임'은 유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반대에도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협상과정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하는 방식으로 합의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특히 국회법이 대통령령 등 정부입법에 대한 수정권한이 강화되는 것으로 개정되면서 이 자체를 여당마저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은 야당대표를 했기 때문에 야당이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여당이 대통령 뜻에 맞지 않게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섭섭해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배신의 정치'라는 것 역시 한 때 자신의 비서실장이었던 유 원내대표가 자신과 반대되는 언행을 하고 있다고 판단, 이에 대한 비판의 성격이 짙다. '선거로 심판해 달라'는 것 또한 여당 내 자신의 반대세력(비박계)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 180도 달라진 대통령의 당청관계 인식…비박과 갈등 불가피 = 이는 박 대통령이 국회의 한 축인 여당을 행정부를 견제하는 권력이 아닌 행정부를 뒷받침하는 '보좌권력', 수직적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 2010년 이명박정부 당시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여당의원이었음에도 정부 뜻과 반대되는 표결을 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잘 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친다"며 여당의 분열을 지적하자, "집안에 있는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 갑자기 강도로 돌변한다면 어떻게 하느냐"고 '소신'을 내세웠다.
당청의 '수평관계'를 강조했던 어제와 180도 달라진 박 대통령의 뜻을 비박계 의원들이 그대로 따르는 데는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비박계는 향후 '유승민 흔들기'에 나설 친박계와의 갈등은 불을 보듯 뻔하다.
□ 유승민 "대통령께 진심으로 송구"…野 협상 입지 좁아져 = 또한 유 원내대표가 26일 박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서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사과했지만 당청 간 갈등이 풀릴 지도 미지수다.
청와대가 거듭 '불신임'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선 유 원내대표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한구, 최경환, 이완구 전 원내대표들은 정부정책에 관여했거나 친박계 원내수석부대표들이 청와대 다리역할을 했지만 유승민 원내지도부는 대부분 비박계다.
특히 유 원내대표가 '할 말을 하는' 스타일이라는 점도 청와대의 주문만 그대로 따르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는 이날 박 대통령을 향한 사과문에도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는 "제가 원내대표로서 가장 노력 기울였던 점은 훗날 박근혜 정부의 개혁 과제로 길이 남을 공무원연금 개혁이었다"며 "대통령께서도 100% 만족스럽지 못하셨지만 공무원연금개혁의 국회 통과를 가장 절실하게 원하셨던 것으로 믿었다"고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촉발된 현 상황을 에둘러 꼬집었다.
또 박 대통령이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 처리가 지연된다고 힐난했던 점에 대해 "경제활성화법도 30개 중 23개가 처리가 됐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이어 "우리 국회의 사정상 야당이 반대하면 꼼짝을 할 수 없는 그런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지만 저의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며 국회 현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 총선 국면, 친박계 공세 더 거세질 듯…유승민 정치인생 '최대고비' = 더 큰 문제는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을 대통령이 거부하면서 야당과의 협상에서 여당 원내대표로서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법 재의절차를 밟을 때까지 모든 의사일정을 중단하기로 했다. 거부권 정국에서 정부 추진 법안은 자연스럽게 처리 지연될 수밖에 없다.
특히 총선이 불과 1년도 남지 않아 친박계의 사퇴론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당 관계자는 "결국 총선에서 친박들의 공천 문제가 핵심"이라며 "특히 투톱(김무성-유승민)은 친박이었다가 멀어졌기 때문에 친박계 의원들이 그들 성향을 잘 알고 불신이 깊은 것이다. 둘 중 한 명을 무력화시켜야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부권 정국'은 지난 2000년 여의도 연구소장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유 원내대표의 15년 정치인생에 최대 가시밭길이 됐다. '보수의 새 지평'을 다짐했던 유 원내대표의 신념이 일장춘몽으로 끝날지, 성충으로 거듭나 나비가 될지 기로에 놓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