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고법' 부상, 재정절감 해법? 복지축소 꼼수?

朴대통령 주장에 與 "운영위 논의" 발 맞춰
野 "예산편성권 없는 한국, 현실적으로 불가능"

새누리당이 재정지출을 늘리는 법안을 만들 때 재원 대책을 함께 마련하도록 하는 '페이고'(Pay-go. 국회법 개정안) 제도 도입 추진 의사를 거듭 밝히면서 이 제도가 국회의 새로운 쟁점 사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페이고법 제도 도입을 박근혜 대통령이 강하게 주장하면서 여당이 이에 발맞추고 있어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기조 확대, 나아가 복지정책 축소 방향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한 페이고법을 시행하는 미국 국회의 경우 예산편성권과 입법권이 모두 있어 의무지출 법안을 마련할 때 예산규모를 짐작하고 재원마련을 가늠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국회는 예산편성권이 주어지지 않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야당은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법안 추진에 여야 대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박 대통령 페이고법 주장, 유승민 "운영위 논의" =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입법을 통한 무분별한 정부 지출 증가를 막기 위해서는 재정지출이 필요한 법안은 재원조달 방법도 함께 제출하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페이고법 도입을 주장했다.

이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나서 거듭 페이고법 도입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에 이어 20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도 재정절감 문제를 거론, "국회법 83조1항에 예산 수반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협의하도록 돼 있으나 지난 10년간 국회 규칙을 정하지 못해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모든 것을 운영위에서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 운영위원회에는 새누리당 이노근, 이만우 의원이 발의한 페이고 법안이 계류 중에 있다. 지난 해 11월 발의된 이노근 의원의 페이고 법안은 재정이 들어가는 법안을 발의할 때 재원조달 방안을 제출하고 국회는 이를 심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2012년 대선 전 발의된 이만우 의원의 법안은 더 나아가 의무지출 또는 재정이 들어가는 법안을 만들 때 재원조달 방안까지 법안으로 함께 국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이는 미국 페이고 제도와 유사하다.

□ 지난해 한 차례 논의, 기재부도 '현실적 어려움' 토로 = 야당은 페이고법이 예산편성권이 없는 우리나라 국회 구조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이미 지난해 국회 운영위에서 페이고법이 논의됐을 때 지적된 바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여당 원내대표이던 지난 해 초 페이고법 처리를 추진했으나 당시 운영위에서는 야당뿐 아니라 기획재정부 역시 "페이고 원칙의 도입 필요성에는 전적으로 공감하나 재원조달 방안을 법안으로 제출하는 것은 당장 시행하기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제시한 바 있다.  

당시 국경복 국회 예산정책처장도 "국회 차원에서 재원을 총량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위원회가 필요하다"며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복지재원 1조원 늘리는 법안과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그에 상쇄하는 법안을 동시에 냈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기구가 지금 국회에는 없다"고 지적했다.

□ 野 "세수기반 확대 노력 없는 포퓰리즘적 발상" = 야당은 세수부족 해결을 위해 세입기반을 확대하는 노력을 하기보다 처음부터 복지지출을 막는 '포퓰리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예산결산특위 야당 관계자는 21일 "국회에 예산편성권이 없는 상황에서 페이고법이 도입되면 정부나 여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며 "정부여당은 정책 추진에 드는 비용이나 의무지출을 가늠할 수 있는 자료를 언제든지 보고 계산할 수 있지만 야당의원들한테는 정부가 자료도 제대로 주지 않을뿐더러 의원 300명이 다 계산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재정절감을 앞세워 국회는 돈만 쓰는 법안만 제출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며 "결국 의무지출이 많이 드는 복지 정책을 축소하겠다는 거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는 "예산편성권을 누가 갖느냐에 대한 논의는 할 수 있지만 우리 국회 문화를 볼 때 국가재정 건전성을 지키고자 하는 성숙된 의식이나 문화가 자리잡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매년 예산심의를 하는 과정에서 어김없이 지역구 예산 따기를 위해 로비를 벌이는 상황에서 페이고법으로 재정지출을 강제적으로라도 고려토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여당 관계자는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우리 혼자 법안을 논의할 수는 없다"면서도 "지금 계류 중인 법안을 점검하고 지적된 문제들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