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 신청 앞둔 열악한 기업에 거액 대출
우리은행 "이자 제 때 지급하는 정상기업" 해명
우리은행이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에 지난해 20억원의 운전자금을 신규대출한 것으로 드러나 이 은행의 부실한 여신관리가 도마에 오르게됐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삼일회계법인이 회계감사 결과 부실기업으로 판단한 J사에 대해 이자 납입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로 재무상태가 열악한 기업에 대해 준수해야할 업무 규정을 지키지 않고 거액의 대출을 해준 것으로 밝혀졌다. 부실한 여신관리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이 은행은 이 가운데 10억원은 올해 1월 28일 만기가 돌아왔지만 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의 정보라는 이유로 확인을 거부했다.
12일 금감원 등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지난해말 기준 J사에 운전자금대출 20억원을 비롯해 전자어음할인 18억원, 매출채권할인 100억원 등 모두 138억원에 달하는 여신을 제공했다.
그러나 삼일회계법인은 지난해 이 회사에 대한 회계감사를 통해 "단기차입금과 유동부채, 미래에셋증권 지분 매수 청구금액 등이 상당액 존재하고, 영업활동으로 인한 손실도 상당부분 존재한다"며 "이러한 상황은 계속 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불러 일으킬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J사의 재무제표를 보면 지난해 5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고, 현금흐름표상 영업활동현금흐름은 41억원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부족한 현금은 대부분 눈먼 은행 여신으로 보충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대손상각비는 2013년보다 3배 이상 증가했고, 매출채권은 2013년에 151억원 증가했다가 지난해에는 16억원가량 감소했다. 회계감사를 받지 않은 2013년에 '이익부풀리기'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감사보고서가 경고하는 것처럼 재무상 문제가 있는 기업에 대해선 대출심사 과정뿐만 아니라 기존 대출에 대해서도 조기 회수나 연장 거부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은행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그러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관계자는 "해당 기업에 대한 여신심사는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해당 기업이 이자를 정상 납부하고 있는데 영업상황이 안 좋다고 해서 대출을 회수할 수는 없다"며 신규대출과 대출기한 연장이 정상적이었음을 강조했다.
또 "정상적으로 기업이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데 대출을 회수할 경우 기업이 받을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며 "외부감사인의 감사의견만으로 대출을 회수하거나 연장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같은 우리은행의 주장은 은행의 업무처리 지침과 관행을 무시한 것이다.
감사보고서 상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불러 일으킬만한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의미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 기업이 어려워졌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또 금융당국도 이자를 제 때 지급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여신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한 기업이 지난7일 법정관리를 신청해 우리은행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
더구나 미래에셋증권이 J사에 대해 대처한 내용을 보면 우리은행측의 대응이 부실했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해준다.
미래에셋증권은 2012년 5월 투자한 전환상환우선주 120만주에 대해 지난해 12월 30일 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청구된 금액은 원금 78억원에 이자 10억9000여만원 등 총 88억9000여만원이다.
미래에셋증권의 전환상환우선주는 상환 요구가 있는 날부터 1개월 이내 현금상환하도록 조건이 달려있다. 하지만 J사는 청구 금액 중 8억8000여만원만 상환하고 나머지 금액은 2017년 7월까지 매달 3억원씩 분할 상환하는 것으로 조건을 변경했다. 사실상 디폴트(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의미다.
이 회사의 부실한 재무상태를 인지한 미래에셋증권이 매수 청구를 요청했지만 J사는 지급여력이 안 돼 상환조건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계속기업으로 존속 가능성이 의문이라는 감사의견은 파산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데 부도가 나지 않는 이상 이자만 잘 납입하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안일한 태도"라며 "20년 이상 은행에 근무해 왔지만 그런 말을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기업의 신용도가 저하될 경우 기존 대출에 대해 금리를 높이거나 담보를 추가로 요구할 수도 있고 심각한 상황이면 대출을 회수할 수도 있다"며 "은행의 여신에 대한 사후관리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올해부터는 개별 기업 여신에 대해서는 들여다보지 않지만 지난해까지 개별 기업 여신에 대해 샘플링 해서 검사를 했다"며 "단지 기업들이 이자를 제 때 낸다고 해서 검사 샘플에서 제외하는 적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