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핵심 측근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담긴 '성완종 리스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허태열·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완구 국무총리, 이병기 현 대통령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서병수 부산시장,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 홍준표 경남도지사까지 이들 8명 중 홍 도지사를 제외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 멘토이자 핵심 측근들이다.
청와대와 정부, 당내에서 요직을 맡으며 권력을 휘두르던 실세들이 8명씩이나 무더기로 불법 정치자금 나아가 불법대선자금 수수의혹에 휩싸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에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증폭되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이 연이어 '성역 없는 수사'를 강조하자, 특별수사팀을 꾸려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문제는 검찰 수사의 방향과 깊이다.
'성완종 리스트'는 박 대통령과 이완구 국무총리가 야심차게 '부정부패와의 전면전'을 외친 후, 해외자원외교 비리 관련 경남기업을 수사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드러난 사건이다. 전 정권 사정을 위해 드러낸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현 정권을 사정하게 된 것이다.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서는 박 대통령의 수사 의지와 검찰의 독립적인 수사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검찰이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제대로 의지를 갖고 수사할지 미지수다.
검찰은 성 전 회장이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고 이튿날인 10일 '성완종 리스트'가 보도된 이후에도 이 존재를 부정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인터뷰 녹취파일을 공개한다고 밝히자, "성 전 회장의 시신을 검시하는 과정에서 메모지가 한 장 발견됐다"며 '성완종 리스트'의 실체를 인정했다.
성완종 리스트가 파문이 일자, 공소시효가 끝났다며 수사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것도 검찰이다.
또 성 전 회장에 대한 강압수사도 논란이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독립적인 수사를 진행한다 해도 측근 실세들의 문제를 제대로 수사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이번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 핵심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불법 대선 자금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어야 한다.
리스트에 명시된 홍 도지사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은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특히, 허태열 전 비서실장은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고,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2012년 대선에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또 유정복 인천시장은 2012년 대선 당시 허 전 실장이 맡았던 직능본부장을, 서병수 부산시장은 사무총장으로 캠프 당무조정본부장을 맡았다.
이들 직책은 대선 자금과 시도 조직, 외곽조직을 총괄하는 대선 캠프의 핵심 자리다. 성 전 회장은 허 전 시장에 건넨 7억은 대선 경선자금으로, 홍 의원에게 준 2억은 대선 자금으로 썼다고 밝혔고, 공식 회계처리과정도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2년 불법대선자금 수사가 핵심인 이유다.
검찰의 의지를 좌우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결단'이다.
대통령 자신에게 정치적 치명타가 될 수 있는 문제이지만 이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밝히고 검찰의 수사 독립성을 담보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을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정윤회 비선실세' 논란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을 끝까지 옹호하며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결단에 대한 신뢰에 의구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
검찰 수사가 외압을 받았다는 정황이 나올 경우, 국민적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까지 '꼬리표'가 붙어 불명예 퇴임은 자명하다. 때문에 수사기관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철저하게 사건을 수사할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이 실천적인 '성역 없는 수사'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