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자유무역협정(FTA)타결 이후 중국시장 개방에 대한 우리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두 나라가 자유롭게 교역을 하면 13억 중국시장이 바로 우리의 내수 시장이 된다는 논리다. 우리의 전체 교역 가운데 중국과의 교역은 21.3%다. 미국․일본과의 교역비율을 합한 것(18.4%)보다 크다.
교역규모 세계1위, 경제규모 세계2위의 중국과의 FTA는 앞으로 우리 산업 및 경제에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경제5단체장들은 입을 모아 반겼다. 미국․일본․ EU(유럽연합)보다 먼저 중국과 FTA를 체결함으로써 중국시장을 선점할 수 있게 됐고, 저출산과 고령화로 침체에 빠져있는 한국경제가 새 활로를 찾았다고 의미부여가 한창이다.
그러나 한․중 FTA는 타결선언을 했을 뿐 세부 기술적 사안에 대한 조율과 양국의 국내비준절차가 남아있다. FTA를 체결했다고 중국 내수시장이 저절로 열리지는 않는다. FTA의 혜택을 누리려면 우리제품의 시장경쟁력을 높여야하고, 그래야만 FTA가 우리경제의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기에는 한․중 FTA는 개방 폭과 속도 면에서 너무 낮은 수준이다. 한중 양국이 서로 민감한 부분을 인정하는 가운데 개방을 서둘렀기 때문이다. 양국은 품목 수 기준으로 10%, 그리고 수입액 기준으로 15%를 초민감품목으로 관세철폐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개방대상은 품목별로 70%, 수입액 기준으로는 40%로 역대 FTA 체결사상 최저 수준이다. 10년 안에 자유화 되는 수준은 60~70%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한․중 교역구조는 중국에 부품이나 반제품 같은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에 있는 한국 현지공장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미국․유럽 등지로 수출하는 가공무역방식 위주였다. 중국에 대한 전체 수출 가운데 완제품으로 수출돼 소비되는 최종소비재는 16%에 불과했다.
한․중 FTA가 우리경제에 돌파구가 되려면 한국 완제품이 중국시장에 본격 진출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어야한다. 하지만 한국이 경쟁력을 갖춘 주력 수출품들은 FTA가 발효되더라도 저율관세혜택을 받을 수 없게 돼 있다. 중국의 즉시 관세 철폐비율(품목기준)은 20%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50%나 돼 중국의 저가제품 공세에 한국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중국을 우리의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들려면 소비재 위주로 수출구조부터 바꿔야한다. FTA 관세인하효과만으로 저가 중국산제품과 경쟁을 할 수가 없고, 소득이 높아지는 중국 중산층을 겨냥한 프리미엄시장을 개척하고 공략하는 길 밖에 없다. 대중국 수출구조를 제 때 바꾸지 못하거나 한중 FTA 활용도를 높일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중 FTA에서 얻을 것이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중 FTA 지난 30개월 동안 14차례나 협상을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한미FTA, 또 한EU FTA때보다도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 일본 등 우리의 경쟁상대 보다 중국 내수시장을 먼저 차지하려는 욕심에서 ‘낮은 수준이라도 조기타결’을 서두를 수밖에 없는 사정은 이해가 간다.
경쟁국보다 먼저 맺은 강점을 살리려면 앞으로 진행될 후속 조치에서 철저한 준비로 한․중FTA를 국익과 연결시켜야 한다. 미국 및 EU와 FTA를 각각 체결한 한국을 연습상대로 삼아 향후 더 높은 FTA를 체결하기 위한 발판을 삼으려는 중국의 입지와 상황을 십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중국의 시장 환경, 관행은 한국과 많이 다르고 법은 여전히 미흡하며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중국투자에서 외국인들은 백전백패다. 우리나라 통신·유통·오락·건설 같은 내수업종이 중국시장의 문을 열심히 두들겼지만 높은 비관세장벽과 관시(關係·인맥)로 상징되는 이질적인 제도·문화의 벽에 막혀 어려움을 겪었다. 한 때 ‘기회의 땅’으로 불리며 수만 개의 한국기업이 몰려갔던 중국, 지금은 중국에서 철수하는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는 판이다.
한·중 FTA는 국내총생산을 합쳐 11조달러 규모인 양국의 경제적 통합을 뜻하는 것으로 물론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크다. 중장기적으로 중국 내수시장 선점효과, 그리고 한·중 FTA를 활용하려는 외국기업의 투자증대 등 여러 경제적 이득도 예상된다.
반면 두 나라간의 지리적 인접성과 엄청난 무역규모, 서로 중복되고 경쟁관계인 산업구조로 볼 때 ‘중국 곁에서 뭘 먹고 살 것인가’하는 근본적인 고민을 우리에게 안기고 있다.
범용(汎用)상품으로는 우리기업들이 중국기업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FTA를 통한 관세인하만으로 저가 중국산제품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게다가 중국은 전통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로 ‘굴기’에 속속 성공하고 있고, IT강국인 한국보다 충실하게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방정식을 구현하며 자체 생태계를 착실히 구축하고 있다.
중국의 정부와 기업은 이미 한국의 기술에 시큰둥하다. 애플처럼 창의적이지도, 세계 일등도 아니기 때문이다. 통신시장만 놓고 봐도 중국이 기존 강자를 제압하면서 시장의 규칙을 바꿔가고 있다. 중국과의 FTA가 알리바바의 뉴욕증시 상장과 중국토종 스마트폰 샤오미의 부상과 비슷한 시기에 타결됐다는 점에서 우리의 긴장감과 고민은 더 한다.
장벽을 낮춰 ‘경제영토’를 넓히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다. FTA 효과는 실제 현장에서 기업들이 얼마만큼 그것을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중국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내수시장에 파고들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새로운 창의와 경쟁력으로 무장해야하고, 정부 또한 ICT와 결합된 미래산업, 문화, 식품가공, 고급소비재 등 창의적인 역량을 지닌 중소기업을 중점적으로 뒷받침하고 필요한 인재를 육성 활용하는 지원책을 강구해야한다.
한국은 현재 47개국과 12개 FTA가 발효 중이고, 이번 중국과의 FTA 체결로 14대 경제대국 중에선 일본과 러시아, 브라질을 제외하고 11개국과 FTA를 체결하게 됐다.
‘FTA 선진국’으로 부상한 지난 10년 간 우리의 해외투자는 지속적으로 줄고 수출의 고용유발효과도 도리어 줄어드는 현상도 우려를 갖게 한다. 과연 우리가 당초 기대했던 FTA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종합적으로 점검할 때가 됐다.
그러잖아도 한국경제의 중국 예속 현상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무역은 물론이고, 내수시장과 금융·부동산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이미 절대적이다. 한·중 FTA 로 한류가 날개를 달 것이라는 전망도 나돌지만 한류가 들어가는 길이 거꾸로 ‘중류(中流)’가 유입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다.
한․중 FTA 로 중국은 동북아에서 한국을 우군으로 얻었지만 한·중 FTA와 대만과의 ‘양안상품무역협정’ 둘 간의 견제와 경쟁을 통해 최대이익을 도모한다는 속내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거대시장 선점에 우쭐하며 자만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중국 곁에서 한국이 뭘,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