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악재 이어지며 글로벌 진출 안전모드로
중국 등 해외시장 실적 악화도 해외진출에 경종
무리한 해외 확장보다는 내실 다지기 택할 듯
국내 은행권을 중심으로 잇따라 대형 악재들이 이어지며 글로벌 행보도 느린 '게걸음'을 걷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최근 일련의 국내외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전략은 '이상무'라는 것이 기본 입장이지만 속내는 좀 복잡하다.
주요 은행의 일본 도쿄지점 부당대출이 관련 직원의 자살 등으로 이어지며 일파만파 파란을 일으키고, 중국시장에 진출한 국내은행들의 수익성이 급감하는 등 적신호가 켜진 가운데 글로벌 진출 신중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이다.
□도쿄發 부당대출 후폭풍에 해외 진출 '움찔' = 일본 도쿄지점의 부당대출과 리베이트 의혹은 해외진출을 꾀하는 국내 은행들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8일 우리은행 전 도쿄지점장 김모씨 자살 이후 중단됐던 우리은행 도쿄지점 부당대출 의혹에 대한 검사를 재개할 방침이다.
앞서 국민은행의 경우 부당대출 규모가 점차 늘어나며 5000억원 이상으로 늘어났는데 현재 우리은행의 경우는 도쿄지점 부실대출 규모가 600억원 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규모는 검사과정에서 더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은행권의 조심스러운 관측.
최근 금감원은 부실대출 문제가 발생한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기업은행은 물론 시중은행 전체에 대해 실태조사를 진행하는 등 조사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올해 글로벌 신규 진출을 사실상 접었다.
국민은행의 관계자는 "올해 해외 일부 사무소를 지점으로 전환하는 이외에는 특별한 해외 진출 계획은 없다"며 "올해는 기존 글로벌 네트워킹에서 보강해야 할 부분을 검토하는 시기가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도쿄지점 불법대출 사건에 대한 조사가 끝나긴 했지만 최근 일련의 대형 악재에 내부 조직이 흔들리고, 기존에 진출한 카자흐스탄 BCC 은행이 실적이 기대 이하로 떨어진 상황에서 무리한 해외진출은 최대한 자제하겠다는 것이다.
도쿄발 악재에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은행도 해외진출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올해는 두바이 사무소의 지점 전환 등이나 베트남 법인신설 등 기존 지점의 재정비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며 "지난해 브라질 진출처럼 새로운 시장 개척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해외 진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신규 시장 진출에 좀더 신중을 기하겠다는 것"이라며 "최근 악재로 인해 해외진출 계획에 크게 변동이 생기거나 한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중국시장 타격…묻지마 해외진출 '경고등' =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의 실적 부진도 '묻지마식 글로벌 진출'에 제동을 걸게 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2013년말 하나·우리·신한·기업·외환·국민은행 등 6개 국내은행 현지법인이 진출해 12개 성에 76개 영업점을 운영중인 가운데 2012년 이후 현지법인의 영업이익과 자산이익률이 급격히 악화되며, 2013년 상반기 순이익이 860만 달러로 전년동기 대비 79.6%나 감소했다.
이중 국민은행은 지난해 중국에서 161억68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신한은행 중국법인도 지난해 88억600만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체면을 구기고 있다.
두 은행 모두 전년도 흑자를 기록하다가 1년만에 적자로 전환한 것이다.
이처럼 해외에서의 실적이 저조하자 동남아, 중국 등 신흥시장 진출에 열을 내던 은행권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신한은행의 관계자는 "현재까지 인도네시아 법인 승인과 미얀마 양곤 사무소 추가 말고 구체적으로 나온 해외 진출 계획은 없다"며 "해외 진출을 신중하게 진행하면서 리스크 등을 점검하게 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내 은행들이 국내 기업들을 따라 해외 현지에서 영업을 펼치는 기존 영업방식으로는 더이상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국내 은행의 중국 내 수익성이 악화된 것은 한국 기업들이 진출한 시장에 집중하다 보니 스스로 레드오션을 자초한 결과로 볼 수 있다"며 "중국의 현지에 맞는 새로운 진출 전략을 모색할 시기다"고 전했다.
□금융권, 악재 지뢰밭…내실 다지기 나설 듯 = 지난해까지 정부와 은행권의 해외진출 공략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0일 청와대에 금융인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진행하며, 신제윤 금융위원장에게 금융강국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것도 해외진출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이에 은행권도 연초에 의기양양하게 글로벌 전략으로 화답한 것도 이 때문.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 1월 10일 열린 비전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2025년까지 글로벌 비중을 40%로 확대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서 신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해 세계 유수의 글로벌 플레이어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권선주 기업은행장도 2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오는 2016년에 글로벌 100대 은행에 진입시키겠다"며 해외지점 확대 등의 복안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국민은행이 중국 베이징 지점 인사 문제로 논란에 휩싸이더니 최근에는 도쿄지점의 부당대출 문제가 은행권의 해외지점에 대한 부실관리 논란으로 점점 번지고 있어 분위기 급랭하고 있다.
또 카드 3사 등 금융권의 고객정보유출, KT ENS 협력업체 매출채권 대출 사기, 일부 영업점 직원의 횡령 사고 의혹 등 대형 금융사고가 지뢰밭처럼 터지며, 무리한 해외 진출은 급제동이 걸리고 있다.
특히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이 14일 최근 일련의 금융사고와 관련 "금융산업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데 대해 매우 개탄스럽다"고 직설화법으로 금융권을 질타한 대목은 뼈 아프다.
최 원장은 15일 시중은행장을 모두 소집해 최근 직원 횡령 및 비리, 정보유출 사고 등에 대한 대책을 촉구할 방침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악재 속에 전체 은행권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며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은행권에서는 아무래도 해외진출에 있어 돌다리를 두들기듯 신중해 질 수밖에 없으며, 우선적으로 내실 다지기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