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행정 강화보다 조세제도 개혁이 우선(下)

최근까지 확산되고있는 유럽 각국의 재정위기는 다른 요인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국민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는 조세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조세제도의 개혁없이 세무행정의 강화로만 필요한 재정을 충족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우리도 지금과 같은 경기침체와 확대재정 기조에서 노출된 국가적인 재정위기를 막기위해서는 단순히 세무행정적 정책만으로는 역부족이며 조세제도를 개혁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는 아직도 '소득있는 곳에 세금있다'는 조세원리가 실현되지 못하고 형평성에 어긋난 조세제도가 다수 존재하고있다. 

몇푼의 근로소득에도 세금을 물리면서도 엄청난 자본이득에 제대로 세금을 물리지않는 상장주식 양도차익이나 과다한 예외가 적용되는 금융종합과세, 세원의 사각지대지만 그동안 정치적인 이유로 손대지못하고있는 간이과세제, 폭넓게 인정되는 부가가치세 면세 등 일그러진 조세제도를 하루빨리 개혁하는 한편, 소득기반 부과체계가 확보된 건강보험 등 공적보험을 사회보장세로 전환하여 과세형평성과 징수체계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조세개혁 과제이다. 

 

국가적인 재정위기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고 지금 국민 대다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세금과 공적보험 부담으로 고통스러워하고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세금루프홀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저인망식 세무행정보다 더 필요한 것은 세무행정에서 빤히 소득이 있음을 확인하고도 과세할 수 없는 '먹튀' 조세제도를 개혁하는 일이다. 

조세개혁을 통해 형평한 조세제도를 갖추게 되면 독일, 일본 등 세계적으로 재정이 안정적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과세인프라와 전자세정이 잘 갖춰져있고 납세자의 높은 납세의식 및 신고수준을 좌우하는 세무사제도가 확립되어있는 우리나라도 재정안정성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지금 박근혜정부가 중점을 두고있는 세무조사의 강화나 지하경제의 양성화를 위해서도 조세제도의 개혁은 매우 중요하다. 

조세제도가 세금없는 소득을 용인하게 되면 지하경제의 원천이 되고 조세제도에 근거하여 실시되는 세무조사도 무력화될 수 밖에 없다. 

재정안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지금이 불공평하고 불합리한 조세제도를 개혁하는 데 가장 적절한 시점이므로 하루속히 국가재정안정을 위한 조세제도 개편을 서두르고 이를 바탕으로 물흐르듯이 세무행정을 집행하면 진정 국민과 정부가 다같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국회에 곧 설치될 것으로 보이는 조세개혁특위가 맡는 것도 나쁘지않다. 하지만 그동안의 조세개혁특위가 그래왔듯이 국회의원과 정부만 참여하여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타협을 하는 자리에 그치는 경우 또다시 조세개혁이 좌초되거나 성과를 내도 국민들의 동의를 받지못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입법권을 가진 국회, 징세와 세출을 담당하는 정부와 함께 각자의 호주머니를 열어 고통을 분담해야하는 국민들이 민간전문가와 함께 참여하여 국가재정과 조세제도에 관한 충실한 검토와 합리적인 개혁안을 도출하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세무조사 강화와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무행정의 문제로 국가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면 세무조사시스템이 완벽하고 지하경제가 거의 없는 프랑스와 미국 등 선진국들이 지금 가공할만한 세금인상에 들어갈 필요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동안 많이 틀어진 조세제도를 소득간 과세형평성을 기준으로 개혁하고 방만한 예산편성과 세출까지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조세제도 개혁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와같이 재정확충과 안정을 목표로 하는 조세제도 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우선해야하는 것은 지금까지같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고통 속에서 각자의 몫을 기꺼이 내놓아야하는 국민들의 컨센서스를 갖추는 일임을 잊지말아야한다. 

[약력] : 세무사·경영학박사, 가천대 겸임교수,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 한국조세연구포럼 부회장,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자권익존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