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알레고리(Allegory)

예전에 《On Death and Dying/죽음과 죽어감》이라는 책에서 사람이 죽어가면서 느끼는 감정(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5단계 과정)을 설명한 내용은 불현듯 '세무조사'를 떠올리게 했다.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이름이 가물가물할 즈음에 그가 "인간의 마음은 간디와 히틀러가 함께 입주해 있는 거주지다"라는 말을 남겼음을 또 다른 글에서 만났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의 이중적 성향을 돌아보게 된다.

모든 사람과 사물에 양면이 있고, 타인과의 관계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게 하는 한 편의 시가 있다.
오마르 워싱턴의 「나는 배웠다」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 중 일부다.
"~또 나는 배웠다. 무엇을 아무리 얇게 베어낸다 해도
거기에는 언제나 양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나에게도 분노할 권리가 있으나
타인에 대해 몰인정하고 잔인하게 대할 권리가 없음을
~그리고 나는 배웠다.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을 위해 내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2개월 정도 되었으니 그리 오래되었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민간단체에서 주최하고 서울시에서 후원하는 예술행사에서 이광기 작가의 설치 예술작품이 퇴짜를 맞았단다. 더욱이 이 작품은 2019년 부산 바다미술제에도 출품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고 한다. 작가의 작품은 간판에 '쓰레기는 되지 말자'라는 대형 문구를 건 공공예술 작품이었다. 철거 이유가 작품을 바라본 - 사실 작품으로 인식한 시민이 얼마나 되었는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지만, 다수의 시민이 '불쾌하다'라거나 '시민을 비하한다'라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란다.

작가는 "부산이 어찌 보면 서울보다는 지방 아닙니까. 혹시 서울은 다를까?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았죠. 그런데 별거 없더라는 겁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로 끝나고 만 셈이다.

공공예술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순수하고 자율적인 미술작품과는 구별하여 건축과 도시환경 디자인의 일부라는 측면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능적 공공예술에 회의적인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작가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있다. 그의 '기울어진 호(Tilted Arc)'라는 작품은 당시 세상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 작품은 1981년 미국 연방조달청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높이 3.7m에 길이 37m, 무게가 73t이라는 육중한 철제 벽의 구조물이었다. 뉴욕 맨해튼 연방 청사 광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설치되었다.

시민으로부터 통행에 방해가 된다거나 광장의 기능을 저해하는 장애물이라는 혹독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이 발생하였다. 법정 소송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작가는 "처음부터 특정 장소를 고려하여 제작된 것이며, 작품의 이전은 작품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맞섰지만, 법원은 공공장소는 시민들의 장소라는 이유로 철거를 결정한다. 누군가의 마음속에는 더 없는 작품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장애물로 취급받기도 한다.

히틀러의 퇴폐미술전(ENTARTETE KUNST, 1937년)은 더욱 가관이다. 히틀러는 젊은 시절 건축과 미술 분야에 흥미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틀러는 당시 오토 딕스라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화가 치밀었던지 소위 "퇴폐 미술" 목록을 작성하여 기획 미술전을 개최한다. 32개 공공미술관에서 1만 6천여 점을 압수해서 5개월여에 걸쳐 전시회를 열었다. 오토 딕스는 "카드놀이를 하는 상이군인들", "프라하 거리"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작품으로 표현했다.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가난한 자와 상이군인, 길거리 여성 등이 그의 작품 소재였다. 히틀러는 여기에 퇴폐문화를 조장한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오토 딕스가 사회의 부정과 퇴폐 등으로 인한 아픔을 작품을 통해 치유하려 했다면, 히틀러는 이런 예술행위 자체가 부정한 퇴폐문화라며 '멸시'와 '혐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히틀러가 예술작품에 '멸시'와 '혐오'를 사람들 머릿속에 심어 넣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의 작품 「바다의 야상곡」(1913년 작품, 2012년 슬로바키아 온라인 경매에서 3만 2천 유로에 낙찰) 등을 포함하여 유작의 예술성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얇게 베어내도 양면이 있는 것처럼 동일한 사안이나 대상을 두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클랙슨과 사이렌이 차에서 나는 소리지만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불쾌했지만, 이광기 작가에게는 "사람마다 지닌 쓰레기 같은 본성을 제어하자는 나 자신의 다짐과도 같은 문구"였다.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 글쓴이 : 김종봉 세무법인 더택스 대표세무사
[약력] 현)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현) (사)대한바둑협회 임원(이사), 현)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모금분과실행위원회 위원, 서울청 국선세무대리인, 중부청 국세심사위원, 법무법인 율촌(조세그룹 팀장), 행정자치부 지방세정책포럼위원 / 가천대학교 경영학 박사 / 국립세무대학 총동문회 수석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