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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적은 순간마다 ③ 마태목장 이야기

참된 믿음을 심기까지

  • 보도 : 2014.12.01 09:00
  • 수정 : 2014.12.01 09:00

 일주일 동안 목장식구들 스스로 판단하고 느낄 수 있게 최대한 여유를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3개월 동안의 성적표를 받는 심정으로 식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걱정이 앞섰다. 순수한 친목모임이 특별한 종교 색을 띠는 모임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나의 기우였다.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그들은 소감문을 쓰기 위해 3개월 동안 목장에서 느꼈던 것을 되돌아보았을 것이고, 그것이 그들의 마음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마음의 동요가 지극히 긍정적인 쪽으로 기운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하나둘씩 자신이 지난 3개월 동안 느꼈던 소감문을 나에게 건넸다. 그걸 받아들면서 나는 가슴에서 뜨거운 어떤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내 오랜 노력이 이들을 조금이나마 변화시켰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겨우 눈물을 참으며 목장식구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목장식구들은 그동안 기존교회에 대한 자신들이 느낀 선입견이나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마태목장에서처럼 이렇게 순수한 의도로 접근했다면 자신들이 그렇게 심한 거부감은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차츰 믿음이 생긴 것에 자기들도 놀랍다고 고백했다. 그들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마태목장의 순수성에 고맙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목장별 새벽찬양순서가 있었다. 그리고 순서 중에 간증을 하는 시간도 함께 주어졌다. 아직 신앙의 초보인 이들이 과연 새벽기도에 나올 수 있을까 나는 몹시 걱정했는데 다들 의외로 새벽에 일찍 나와 함께 찬양하였으며 일부는 지난 3개월간의 소감문도 읽었다.

지난 3개월 동안 자신을 변화시킨 많은 일들, 그리고 앞으로는 주님의 자녀로 살겠다고 고백하는 정말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그때 기존 교인들은 적잖은 충격에 빠졌다. 그리고 자신들의 나태한 신앙생활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다짐을 고백하는 정말 뜻깊은 새벽예배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 마태목장 식구들은 여름휴가도 같이 보냈으며, 목장 모임 외에 다른 외부 봉사활동도 같이 하면서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신앙에 대한 영적갈증이 생겼다 싶을 무렵이라고 생각될 때 한 명 한 명씩 교회에 등록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가 다니는 한영교회에 출석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가급적 자기 집에서 가까운 교회에 출석할 수 있도록 집 가까운 교회로 찾아가도록 당부했다. 그때 나는 다짐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은 그들이 교회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버리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 역할이라고……, 또 그것이 내 평생의 사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정확히 2003년 4월 4일부터 시작하여 2010년 4월 4일까지 한 주간도 빠지지 않고 목장모임을 지속시켜 오다가 7년 만에 목장 문을 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식구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 홀로서기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마태목장 2기도 고려 중에 있다.

지난 7년 동안 위기도 더러 있었다. 마태목장 문을 연 지 1년 후 국세청에서 자리를 옮길 기회가 생겼다. 그때 나는 연고지인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작 원하지 않았던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 발령이 나버렸다. 개인적으로 다소 섭섭했으나 갑자기 마태목장의 한 식구가 쓴 소감문이 문득 생각났다. 순간 머릿속에 한 줄기 깨달음이 훑고 지나갔다.

‘그렇다. 아직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마태목장을 좀 더 맡기시려는 것이구나. 또 아직 주님을 만나지도 못하고 세상 가운데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시는 거구나.’

◆…2007년 8월, 마태목장 회원들과 함께한 소망의 집 봉사

만약 내가 대구로 전근되었다면 마태목장은 문을 닫아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한 시간밖에 걸리지 않는 대전으로 발령을 내 주신 것은 분명 하나님 뜻이었다.

잠시 섭섭하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 후 목장 모임을 금요일 저녁으로 바꿨다. 대전에서 일을 마치고 곧바로 KTX를 타고 1시간 정도 걸리는 서울로 올라오는 생활을 계속했다. 마태목장 식구들과 계속 함께할 수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을 계속해서 만났다. 심지어 여름휴가도 같이 다니고 특별행사도 같이 했다. 또 목장 모임과는 별도로 한 달에 한 번씩은 서울 시내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에 있는 정신지체박약아들의 시설인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소망의 집’을 찾아가 몸으로 봉사활동을 했다.

매월 첫주일 오후에는 어김없이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찬송가를 부르고, 이발도 해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청소도 해주고, 마지막으로 함께 간식도 나눠 먹으며 일요일 오후 한때를 보내며 봉사활동을 마친 후에는 저녁 식사도 함께 하곤 했다.

내 욕심 같아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와서 아이들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싶지만, 마태목장 식구들에게 너무 큰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제2, 제3의 마태목장이 문을 연다면 일주일에 한 번은 물론, 더 많은 횟수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마태목장 문을 연 2003년 4월부터 문을 닫을 때까지 7년 동안 빠짐없이 매월 한 차례씩은 꼭 다녀왔다.

이런 일도 있었다.

‘소망의 집’에서 봉사하던 중 하루는 어느 교회에서 왔는지 교인들이 잔뜩 몰려와 성금봉투를 전달하고는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었다. 나는 몹시 화가 났다. 당장 달려가 호통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갑자기 내 등을 잡아끄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그 모습에 화가 나 있는 나에게 진정한 섬김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임이 느껴졌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주위에서 왜 우는 거냐고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하나님은 마태목장을 통해 내게 나눔과 섬김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몸소 깨우쳐 주셨다. 실천은 없고 보여주기 위한 나눔과 섬김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오히려 상대에게 깊은 상처만 줄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 대부분의 교회가 바로 이 점을 놓치고 있고,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그 의미를 잃어버린 겉모습만 요란한 나눔과 섬김이 판을 치고 있는 것 같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머리가 먼저인 섬김은 지양해야 한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야 진정 남을 돌보고,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감싸안아줄 수 있는 나눔과 섬김의 정신이 발휘될 수 있다고 본다.

감사하게도 마태목장 식구들이 매월 한 차례씩 ‘소망의 집’에서 봉사할 때마다 내가 먼저 진한 감동을 느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정신지체박약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는 이들을 나는 모두 ‘천사’라고 부르고 싶다.

그중에 더욱 빛을 발하는 한 천사가 있는데 이만수라는 서울에서 세무서장을 거쳐 지금은 세무사로 개업 중인 형제다. 봉사할 때 그는 남들이 꺼리는 일을 스스로 자기 몫이라고 하며 주저 없이 열심히 하는 형제다.

오늘도 나는 우리 마태목장 식구들을 생각하면서 진정한 나눔과 섬김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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