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노년층에 잔인한 디지털 고려장

지난 12월 초 추운 날씨에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아파트 상가 앞에 노인 수십 명이 모여 ‘노인배제 주민불편 S은행 폐점 반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은행 폐점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석한 노인들은 “연금 수령이나 공과금을 납부하러 한 달에 몇 번씩 들르는 은행 지점을 폐점하고 무인형 점포로 운영하면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갑자기 사라지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먼 곳까지 가야하는데 너무 불편하다”는 주장이다. 노안으로 글자도 잘 보이지 않는데다 단순한 금융업무도 은행의 안내원을 통해 해결했는데 ‘키오스크’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기계를 사용하라고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은행의 경영실적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다른 업종에 비하여 양호하다고 하는데 주요 은행들은 직원들의 희망퇴직을 더 확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장기적으로 은행원의 수가 적체될 것으로 예상되어 실적이 좋을 때에 구조조정을 하려는 것이다. 현금을 직접 가지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많아지고 모발 뱅킹의 증가로 지난 6년 사이에 1천개가 넘는 은행 점포가 사라졌으며 ATM 단말기도 해마다 축소되고 있다. 은행 점포의 무인화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는 노인에게는 잔인한 고려장이다.

디지털의 차별화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고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는 장노년층은 이미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금융거래의 기본이 되는 공인인증서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에게 모발 뱅킹은 그림의 떡인 것이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가지고 있더라도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줄 몰라 불편함을 감수하고 직접 은행 창구를 찾아가야 하고, 스마트폰의 앱을 이용하여 집에서 열차표 예매가 가능함에도 열차표를 예매하기 위해 가까운 역의 매표소까지 대중교통을 타고 가서 줄을 서서 종이로 된 열차표를 받아와야 하는 게 현실이다.

또 집근처의 대형마트는 직원이 계산해 주는 창구보다 바코드를 활용한 자율계산대가 훨씬 많은데 자율계산대를 사용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직원이 계산하는 창구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다. 계산해 주는 직원이 없는 무인점포는 어떻게 사용할 줄을 몰라 무인점포에 들어가 물건을 살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다. 커피점, 음식점, 햄버거 가게, 고속도로 휴게소, 공항 등은 ‘키오스크’로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되어 장노년층은 점점 이용하기 힘들어지고 소외되어 세상살 맛이 나지 않을 것 같다.

한편 배달 앱을 사용하는 방법을 몰라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배달시켜 먹을 수가 없으며 택시를 호출하는 앱의 사용법을 몰라 택시를 집 앞까지 부르지 못하고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도로가에 서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야 한다. 날씨가 춥거나 눈이 내리는 날은 더욱 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코로나가 더 심해져 정부가 확산세를 막기 위하여 방역패스(접종증명ㆍ음성확인제)를 실시하면 스마트폰이 없는 노인들은 종이로 된 접종증명서를 가지고 다녀야 할 형편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보급률과 스마트폰 보유율이 높아 디지털 선진국에 해당되고 스마트폰 보유율은 93.1%로 세계 1위다. 그러나 그 화려한 숫자 뒤에 노인들은 철저히 소외돼 있으며 디지털 사회로부터 21세기 현대판 고려장을 당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다양한 지원 대책과 함께 장노년층도 디지털 갭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주민센터나 평생교육원에서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무료로 하는 디지털 관련 교육이 많이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과정도 있고 스마트폰 활용법을 가르쳐 주는 과정도 있으며 은행권에서도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가상직원이 업무를 안내하고 화상상담 창구와 키오스크를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라운지’를 만들어 소외계층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니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디지털 고려장에서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