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부처 4곳 거친 행정달인…"국세공무원이어서 영광"
국세청 50년 역사에서 다른 부처에서 사무관(5급) 이상의 관리자로 승진해서 국세청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이들 가운데 정작 세무서장급 이상의 간부로 성장해 명예롭게 정년을 채운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국세청에서 일하려면 꼭 알아야 하는 세법자체가 너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국세청 조직문화도 폐쇄적이다 못해 배타적인 터라 적응이 어려워 대부분 스스로 떠나는 탓도 있지만, 때로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이런 저런 부적절한 일에 얽혀 강제로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 마흔이 넘도록 세금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부처에서 근무를 하다가 국세청에 와서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안겨줬을 뿐 아니라, 세법실력까지 갖추고는 국세청 직원들로부터 ‘기존 국세인보다 더 국세인 같다’는 평가를 들으며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인물이 있다.
7급 공채시험에서 합격해 조달청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기획예산처를 차례로 거쳐 마흔 둘의 나이로 국세청에 전입, 정년을 2년6개월이나 남겨두고 이달말 국세공무원 생활을 명예롭게 마감할 예정인 류효석 동안양세무서장(사진)이 그 주인공.
1957년 전라남도 고흥에서 태어난 류 서장은 34년6개월이라는 기나긴 공직생활 내내 투철한 국가관으로 균형 잡힌 모범적인 공직자상을 보여 왔으며, 마지막 16년을 국세공무원으로 보내면서 짧지만 굵은 인상으로 주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 정부부처 4곳 거친 행정달인…어디든 환영받는 '믿을 맨'
반듯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모습에서 기품(氣品)까지 느껴지는 류 서장은 고교시절 광주광역시에 있는 동신고를 다니다가 불의의 사고로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2학년까지만 마치고, 고향인 고흥으로 돌아와 영주고등학교에서 3학년을 마쳐야 했다.
고교시절 학업성적은 늘 수위를 다툴 만큼 빼어났지만, 당연히 대학진학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 담임선생님의 집요한 대학 진학 권유에도 그는 대학진학을 끝내 포기했고, 고졸 직후 친지의 권유로 고흥군청의 임시직원으로 들어간다.
군청 임시직원으로 일하면서 "아버님도 안계시고 대학진학도 못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은 결국 공무원 밖에는 없다"고 판단했고, 군대를 제대한 직후 1년의 시험 준비 끝에 1980년 치러진 7급 공채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가 공직생활의 첫발을 뗀 곳은 조달청. 이곳에서 그는 IBRD차관자금을 통해 서울대 등 국립대 그리고 숙명여대와 순천향대 등 사립대학교 및 병원 등에 첨단 컴퓨터시스템을 구매·공급, 대학 및 병원시설의 정보화에 기여했다.
이후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경제기획원에 발탁되고는 물가정책국에서 일하면서 전기・전자제품 등 그가 담당한 품목에 대한 품질향상 및 가격경쟁력을 유도, 소비자에게 정보기기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는데 노력했다.
그는 "물가정책국에서 우리나라 물가정책과 소비자보호업무를 하면서 소비자 보호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게 됐다"며 "이곳에서 일을 접할 때 폭넓게 보는 안목, 그리고 전체적인 국가업무에 대한 혜안과 통찰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재정경제원으로 경제정책부처가 통합된 뒤에는 예산실 등에서 정부투자기관관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한국통신의 정보산업 육성, 산업은행, 주택은행 및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정보화 기반조성에도 공헌한다.
정부예산을 주무르는 기획예산처로 자리를 이동한 이후엔 교육문화정보예산과 각 부처 전산예산업무를 총괄하면서 각 부처별로 작업요원을 선발, D/B구축 및 전산화작업을 앞당겨 정부부문 정보화 정착이 조기에 달성되는데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계속된 스카웃으로 여러 정부부처를 거치는 동안 그는 어디에서나 환영받는 '믿을 맨'이었다. 주어진 일은 포기를 모르고 야무지게 처리했으며, 급기야 상급 관리자들은 그의 성실하고 깔끔한 일처리에 반해 어떤 일이든 믿고 맡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다가 국세청이 제2의 개청을 추진할 당시인 1999년 정부부처 사이에서 이뤄진 인사교류를 통해 국세청으로 오게 됐으며, 목포세무서 납세지원과장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국세공무원의 길을 걷게 됐다.
■ 국세청 녹인 '서번트 리더십'…납세자 배려했던 국세인
류 서장이 국세청으로 발걸음을 옮길 당시는 국세청 조직문화가 군대문화 뺨칠 만큼의 엄격한 상명하복(上命下服) 관계로 '카리스마 리더십'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국세청 직원들은 그저 지배만 하려는 관리자들의 뜻에 따르면서 배타적이고 딱딱한 조직문화에 길들여져 있었다.
여러 정부부처를 거치는 동안 동료들과의 적극적인 소통·화합으로 대인관계만큼은 자신했던 류 서장도 처음엔 그러한 국세청의 폐쇄적일뿐만 아니라 배타적이고 딱딱한 낯선 분위기에 참으로 적응하기 힘들었단다.
목포세무서에서 처음 국세청 사람들을 대한 그는 관리자이면서도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직원들에게는 같이 추구할 목표를 함께 공유할 뿐 강요하지 않았고, 해야 할 업무에 대한 의사결정도 능동적으로 스스로 결정하도록 직원들을 참여시킨다.
직원들을 가족처럼 섬기며 따뜻한 신뢰로 허물없이 대하는 이른바 그가 선보인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에 국세청 직원들은 녹아들었고, 기존의 일방적 획일적 방식에 젖었던 직원들은 점차 주인의식과 함께 직무에 몰입하며 다양한 성과를 이뤄냈다.
국세공무원으로서 대부분의 시간을 중부지방국세청에서 지낸 것도 류 서장의 특징. 그는 인천·안양·수원·서인천세무서 등에서 조사·세원관리·징세과장 등 다양한 보직을 경험했으며, 특히 중부청 조사국에선 뛰어난 업무실적을 자랑하기도 했다.
중부청 조사국의 핵심인 조사2국과 조사1국에서 각각 계장과 과장으로 있을 땐 대법인 조사는 물론 중소법인과 개인사업자 조사, 그리고 주식변동조사를 포함한 재산제세 조사까지 하지 못한 조사분야가 없다.
그가 이끈 조사팀은 중부청 관내 납세자들에게 "결코 억지를 부리거나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납세자의 입장을 잘 경청하고 배려하는 조사팀"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세법의 견지에서 과세가 불가피할 땐 납세자들에게 과세의 당위성을 납득이 갈만큼 충분히 설명했고, 이 때문인지 그가 관여했던 세무조사는 다른 부서와 비교할 땐 불복이 거의 없을 만큼 납세자들의 불평이 없었다.
그렇다고 조사 실적이 작은 것이 아니었다. 한번은 어느 공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여 5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했는데, 깜짝 놀란 인사권자가 그 공기업의 실무담당자들은 모두 사표를 내라고 호통을 쳤다는 얘기가 나돌 만큼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당시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공사입장에선 총력을 기울여 만만치 않은 대응논리로 반격을 시도하면서 조사를 마칠 때까지 심적 부담도 컸지만, 워낙 원칙적이고도 심도 있는 조사가 이뤄진 터라 일부를 빼고는 조사결과가 그대로 유지됐다.
그는 "조사국에 있으면서 조사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기업의 생존과 목적달성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라며 "기업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바탕으로 합리적 조사를 위해 노력했음은 자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국세청 본청 징세계장 때 체납관리업무를 총괄하기도 했지만, 중부청에서 정리1계장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데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효율적인 체납정리를 위한 체납정리시스템을 만들어 시행했을 때가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기존에 있던 체납정리시스템을 대폭 보완해 체납정리를 효과적으로 하는데 도움이 되는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일선세무서를 찾아다니며 담당자 교육을 할 때 직원들의 반응이 놀랍도록 좋은 것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는 것.
당시 그의 노력으로 중부청 체납정리실적은 큰 폭으로 늘었으며 매년 증가세를 보여왔던 미정리체납액 규모도 감소세로 돌아선다. 또 서인천세무서에선 고액체납자를 직접 면담하는 등의 적극성으로, 중부청 관내 만년 최하위관서라는 오명을 벗겨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중부청 안방살림을 책임진 경리계장으로 있을 땐 안양·의정부·삼척·강릉세무서 등 노후·임차청사의 청사신축 진행상황을 현장방문을 통해 수시로 점검하고, 성남·이천세무서 등 노후청사에 대한 안전진단을 실시하는 등 직원 근무환경 개선에도 노력했다.
그는 "국세청에 오기 전에 다른 부처에서 했던 의사결정방법이나 담당업무들이 국세행정을 수행하면서 많은 도움이 됐다"며 "처음에는 몰랐는데 다양하게 연관성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들의 관리나 리더십 분야에서도 다른 부처의 경험이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했다.
■ 사람에 취하고, 가락에도 취하고…판소리 완창하는 '풍류남(風流男)'
수많은 국세청 사람들에게 류 서장은 "춘향가나 쑥대머리를 완창할 만큼 판소리 실력이 압권이며, 타고난 유머감각의 명품사회자(=MC)"로 각인돼 있다. 또 이런저런 모임을 함께하며 어울렸던 사람들 사이에선 '분위기를 이끄는 풍류를 좀 아는 남자'로도 유명하다.
류 서장의 판소리 실력은 한번 들으면 또 듣고 싶을 정도로 일품(一品)이다. 한번은 중부청 간부들이 광교산 등산을 하고 내려와 식당에서 뒷풀이를 할 때 그의 판소리를 듣기 위해 다른 간부들이 온갖 '꼼수(?)' 부릴 만큼 인기가 대단했단다.
창(唱)은 목포세무서 납세지원과장 시절 유달산 아래에 위치한 시립국악원에서 오정혜 명창까지 가르친 안애란씨(훗날 인간문화재 지정)로부터 수개월 동안 제대로 사사를 받았다.
행사에서 사회를 보는 MC로서의 능력도 크게 인정받는 편이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그가 회식자리 등 각종 자리에서 분위기를 잘 이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 능력이 중부청 전체 직원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빛을 발한 적도 있었다.
중부지방국세청 청사가 임계동에 있을 당시 구내식당에서 열린 중부청장까지 참석한 큰 행사에서 그가 사회자로 마이크를 잡으면서 좌중을 휘어잡았고, 행사분위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라 크게 고조됐던 것.
이를 통해 그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국세청 외부출신으로서 다소 조용하고 과묵한 사무관’이라는 선입관을 깨뜨렸고, '풍류를 제대로 아는 친화력이 강한 사람'로 널리 알려졌다.
■ 국세공무원이어서 영광스럽다…동료·가족에 보답하며 살 터
지난 5월 국세청 최고의 연중행사인 종합소득세 신고업무를 무난하게 마무리 하면서 류 서장은 예전에도 수차 느꼈지만 국세청 직원들의 저력에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고 했다.
이번 종합소득세 신고는 특히 하루평균 1000명 가까운 납세자들이 찾아오는데 올 초 개통된 차세대전산시스템이 시작과 동시에 불안전한 기능을 보여 왔던 터여서, 국세청 본청을 비롯해 지방청 간부들까지 상당한 조바심으로 긴장감이 크게 고조된 상황.
그는 "직원들은 5월 한 달 내내 일치단결하고 혼연일체의 자세로 마지막 신고 날까지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 불가능할 것 같았던 소득세 신고업무가 잘 마무리됐다"며 "이것이 바로 우리 국세청 직원들의 저력"이라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함께 근무한 사람들에 따르면 후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다른 그는 후배들 중에 잠재역량 뿐만 아니라 뚜렷한 성과가 있는데도 승진대상에서 밀릴 것 같으면 참지를 못하며, 끈질긴 설득을 통해 결국은 승진을 시킨 일도 여러 번이다.
이 때문일까. 그가 동안양세무서장으로 임명될 때에도 그렇고 국세청 어느 곳에 그가 발령이 된 뒤에는 함께 근무하고 싶어서 지원하는 직원들로 언제나 넘쳐난다.
그는 "국세공무원일 수 있어서 영광이고, 힘든 시절도 있었지만 국세청에서 공직을 마감하게 돼 행복하다"며 "다시 태어나더라도 국세공무원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직을 떠나더라도 국세청과 국세공무원들의 발전을 항상 기원할 것"이라며 "인생의 선배로서 힘들 때 생각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언제라도 흥겨운 판소리가 듣고 싶을 땐 소주한잔 하자고 불러달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아내 김경애 여사와의 사이에 아들만 둘을 두고 있다. 큰 아들은 현재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해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으며, 둘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를 향한 다양한 꿈을 꾸고 있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인생을 되돌아보니 박봉인 공무원 남편을 곁에서 35년이나 말없이 내조하며, 명예로운 퇴직까지 지켜봐 준 아내가 너무나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훌륭하게 두 아들 키워준 것에 대해서도 새삼 감사하다"고 했다.
아울러 "이따금씩 잠든 아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여리게만 보였던 예전 소녀의 모습에서 잔주름 가득한 중년으로 변한 모습에 함께 한 세월의 흐름을 절감하곤 한다"며 "오랜 세월 고생하며 참고 살아온 아내에게 문득 미안한 생각도 든다"며 미안해했다.
그는 특히 "공직생활을 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입학식은 물론 졸업식도 가보지 못했을뿐더러, 집안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며 "그런데도 묵묵하게 자기 앞가림을 해가며,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무척 고맙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아내와는 여행도 함께 다니고 취미생활도 함께 하며 지난 세월을 보답하며 살고 싶다"며 "세무사로서의 제2 인생도 납세자이든 국세청이든 지금까지 역지사지로 입장을 헤아리려 노력하며 살아온 것처럼, 앞으로도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57년 ▲전남 고흥 ▲전남 영주고 ▲방통대 행정/고대 경영대학원 ▲7급 공채 ▲조달청 기획예산담당관실(예산업무),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 유통소비과(6급 승진), 재정경제원 심사평가국 공기업평가 및 관리, 재정경제원 예산실 투자기관 관리과(사무관 승진),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 기획예산처 교육문화정보예산과, 기획예산처 법사경찰예산담당관실, 99년 8월30일 국세청 전입, 목포세무서 납세지원과장, 인천세무서 세원관리1과장, 안양세무서 납세지원과장, 수원세무서 조사2과장, 중부청 총무과 경리계장, 국세청 징세법무국 징세2계장, 서인천세무서 징세과장, 중부청 징세과 정리1계장(2009년 서기관 승진), 중부청 조사2-2-1계장, 전주세무서장, 중부국세청 조사1-2과장, 동안양세무서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