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율 2010년까지 6∼33% 단계적 인하, 소득세율과 '균형'
강만수 장관, "(세율)내렸더니 세수 더 걷힌 경험 있다"
정책효과 미지수, '부유층 위한 제도개선' 비판 소지
최고 세율이 50%인 상속증여세율이 대대적으로 낮아진다. 궁극적으로 세율은 현행 소득세율과 같아지고 과표구간별 금액도 상향조정돼 상속증여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결과적으로 세금부담 적은 '부(富)'의 이전이 실현되는 셈이다.
기획재정부는 2008년 세제개편을 통해 현행 상속증여세 과세표준을 5단계에 4단계로 축소, 과표구간별 금액을 상향조정하는 한편 세율도 현행 10∼50%에서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6%∼33%까지 낮추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현재 상속증여세 과세 표준은 ▲1억원 이하 10% ▲1억∼5억원 20% ▲5억∼10억원 30% ▲10억∼30억원 40% ▲30억원 초과 50%이다.
그러나 당장 내년부터 과표구간과 세율이 달라진다. 일단 최저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을 현행 1억원에서 5억원으로 끌어올려 상대적으로 소액 상속증여에 대한 세부담을 상당부분 완화했다.
이에 따라 과표구간은 5억원 이하, 5억∼15억원, 15억∼30억원, 30억원 초과로 조정되고 세율 또한 소득세율과 같이 7%, 16%, 25%, 34%로(구간별) 낮아진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구간별 세율이 1%p씩 재차 하향조정해 각각 6%, 15%, 24%, 33%로 인하된다. 상속세 폐지 기류에 적극 편성하지 않았지만 대대적인 세율.과표구간 조정으로 세부담을 상쇄하겠다는 것이 재정부의 복안인 셈.
재정부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일본과 더불어 OECD국가 중 상속세율이 가장 높은 국가"라며 "국가간 자본이동과 거주이전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지나치게 높은 세율은 국부의 해외유출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상속증여세율을 소득세율보다 낮게 운용하는 국제적 추세를 감안해 소득세율 수준으로 내렸다고 재정부는 설명했다.
□ 상속세, 얼마나 내려가나?= 상속증여세 과표구간이 상향조정되고 세율 또한 파격적으로 인하됨에 따라 오는 2010년에는 각종 공제 등을 제외한 상속증여세 과세표준 20억원인 상속인은(증여) 지금보다 3억4000만원의 세부담이 줄어든다.
지금은 6억4000만원을 내야했지만, 세율인하가 완료되는 2010년에는 무려 53.1%가 줄어든 3억원만 내면 된다.
과세표준이 5억원인 상속증여세는 현재는 9000만원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세율이 2010년에는 6000만원(66.7%)이 줄어든 3000만원만 내면 된다. 과세표준 10억원일 경우 2억4000만원에서 1억1000만원으로 세금이 줄어든다.
지금 내는 상속증여세보다 절반 이상이 줄어든다. 따라서 올해 증여할 계획을 가진 납세자들이라면 증여시기를 내년 또는 내후년으로 미룰 경우 상당한 '감세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셈이다.
□ 상속세, "우리나라가 유독 높다"= 이 같은 방식으로 제도수정을 결정한 재정부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위험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 현재 상속세의 경우 납세 대상자의 극히 일부분만이 내고 있다.
즉 다음 세대로 자금이전 여력이 풍부한 부유층만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셈.
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자 30만명 중 상속세 납세자는 2600여명으로 0.7%에 불과했다. 상속세 과표최저한 1억원에 미달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각종 공제가 적용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전재산 규모는 과표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정부의 방침은 부유층을 위한 조세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해나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정부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국부유출 차단'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도개선의 당위성을 찾는 모습이다.
재정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일본과 같이 최고 50%로 OECD 평균 최고상속세율인 26.3%의 약 두 배정도 되는 높은 세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상속세율이 낮은 곳으로 국부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재정부의 분석이다. 정부는 자본해외 순유출액(증권+부동산+송금)이 2001년 55억불에 불과했으나 2007년 664억불로 약 7년 만에 10배가 넘었다는 점을 그 증거로 제시했다.
상속세율이 높아 재산을 해외로 유출, 세부담을 피하기 위한 납세자들의 '시도'가 빈번해졌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이 재정부의 설명.
OECD 국가 중 상속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22개국 중 상속세율이 소득세율보다 높은 나라는 한국(50%), 일본(50%), 미국(45%), 덴마크(36.25%), 스페인(34%) 등 5개국에 불과하다는 것. 17개 국가는 상속세율과 소득세율이 같거나 상속세율이 낮다.
따라서 재정부의 상속증여세율 인하결정은 현재 대한민국의 상속세 정책자체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 후진적 정책기조라는 것을 재정부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 강만수, "내 경험을 믿어라…내렸더니 세수 오히려 증가"= 대대적인 정책수정으로 인한 세수감에 대한 불안은 없다는 것이 재정부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자신의 '경험칙'을 내세워 정책수정에 따른 부작용은 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장관은 "지난 1990년대 초반 세제실장으로 근무했던 당시 상속증여세율을 일괄해서 40%로 낮췄더니 이듬해 오히려 세금이 더 들어왔다"며 "고세율이라고 해서 세금이 더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 장관이 1994년부터 1995년까지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으로 근무하면서 상속증여세율을 인하, 각각 50%와 55%로 이원화 되어있던 상속증여세율을 일괄적으로 40%로 인하했다.
상속증여세율을 10∼15%로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1996년 세수는 감소하지 않았고, 1997년에는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 강 장관의 설명. 실제로 상속증여세 세수는 1994년 9000억원에서 1995년 1조원, 1996년 1조원, 1997년 1조2000억원이었다.
이 같은 강 장관의 경험칙에 따라 (최고)세율을 17%나 인하해도 실질적인 세수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재정부가 대대적인 세율 인하를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풀이된다.
그러나 경제규모 성장과 연계한 부유층의 증가도 세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 전적으로 세율인하가 세수를 오히려 상승시켰다는 주장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으로 비춰질 개연성이 높다.
□ 상속증여세율 인하-정책효과 '의문투성이'= 현재로서는 상속증여세율 인하가 국부 유출차단을 포함한 전체적인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여부는 실증적 검증이 부족한 상태다.
이희수 재정부 세제실장은 이에 대해 "이것은 굉장히 심리적·철학적 요인이 있다고 본다"며 "내가 열심히 벌었는데 그래도 좀 남고 후손들한테 도움이 되겠다 그러면 일할 동기가 부여되고 국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상속증여세는 대부분 재산이 많거나 기업을 경영한다거나 사회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큰 계층에서 내기 때문에 세수 부담이 지금보다 절반 정도 줄어들면 국내 투자여력이 생겨나 일자리 창출 등에 직·간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인 셈이다.
그러나 상속증여세율 인하에 따른 세부담 완화로 윤택해진 개인재산가와 기업 등의 경제여력이 시장에 상당부분 전이되지 않을 경우 제한적인 정책효과를 거두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