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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의 세금, 오해와 통념]

⑨ 실무 사무관의 좌충우돌 해외출장기

  • 보도 : 2022.11.22 07:50
  • 수정 : 2022.11.22 07:50
◆ 80년대 초반, 지구 한 바퀴 돌다.

강태공이 낚시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세금 관련 글이 벌써 아홉 번째이다. 세금 주제의 특성상 재미보다는 전문적인 분석에 치중하다 보니 독자들의 글 읽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그래서 오늘은 후배들에게 무용담(?)으로 들려줬던 ‘라떼(나때) 시절’ 이야기 하나를 풀어보려 한다.

내가 난생처음 해외에 나간 것은 1981년 3월이었다. 당시 재무부 국제조세과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때라 호주와 이중과세방지협약(이하 조세조약) 체결을 위해 캔버라에서 열린 제3차 실무자 회담에 한국 측 대표로 참석했다. 이때 이후 나는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는 사명감으로 4년여 동안에 무려 15차례나 6대주를 돌았다.

이때만 해도 국민들이 해외 나가기가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었고, 공무원들도 해외 출장이 매우 드물었다. 따라서 주변으로부터 외국 자주 다녀서 좋겠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실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업무 일부를 외주 주던 때도 아니었기 때문에 실무 사무관인 내가 모든 일정을 짜고, 비행기 표를 예약하고, 조세조약 회담 자료를 여러 상황에 대비하여 일일이 영문으로 작성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어도 익히고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처럼 해외 출장을 자주 다니다 보니 에피소드가 제법 있는데, 1984년 6월의 로마사건(?)은 나의 가장 큰 실수이면서 행운이었다.

◆ 84년 6월, 한·나이지리아 조세조약 2차 회담하러 라고스 출장

조세조약은 일반적으로 양국 간 ① 교섭 ②실무자 회담 ③가서명 ④서명 ⑤비준 ⑥비준서 교환 절차를 거쳐 효력을 발생한다. 실무자 회담 및 가서명까지는 재무부(국제조세과)에서 담당하고 서명부터는 외무부에서 담당했다. 실무자 회담은 통상 2회 이상 양국에서 교대로 개최되는데, 회담 대표는 외무부 장관이 ‘정부대표 및 특별사절의 임명과 권한에 관한 법률’에 의해 대개 재무부 세제국장(또는 세정 차관보)을 수석대표로 하여 재무부와 외무부 직원 3~5명을 임명한다.

한국과 나이지리아 간 조세조약 체결을 위한 제2차 실무자 회담은 나이지리아 제1의 도시 라고스에서 개최되었는데, 우리나라 대표단은 한ㅇㅇ 국제조세과장을 수석대표로 하여 나와 김ㅇㅇ 국제조세과 사무관 그리고 외무부 직원 1인 (나이지리아 한국대사관 근무) 등 4명이었다. 통상 수석대표는 세제국장이 맡는데 거리도 멀고 우리나라와 경제관계가 그렇게 긴밀하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라서 과장이 수석대표로 가게 되었다.

우리 출장 일정(6.1∽12)은 서울에서 라고스까지 직항이 없어 프랑스를 거쳐 라고스에 도착하여 2차 회담을 끝내고 로마와 방콕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장시간 비행과 현지 더위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도 2차 회담을 무사히 마치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우리의 출장은 성공적이었다.

◆ “어! 왜 지퍼가 열려있지?”

우리는 6월 8일(금) 레오나르도다빈치 공항에 도착하였다. 로마에서 일박하고 다음 날인 6월 9일(토) 11시 30분 비행기로 방콕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나는 이번이 12번째 해외출장이고 과거에도 로마에 온 경험이 있어 공항에서 한 과장과 김 사무관에게 이곳은 소매치기가 매우 심하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당부까지 했다. 그런데 내가 당할 줄이야...

다음날 아침 식사를 일찍 끝내고 나니 1시간 정도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우리는 근처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 주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이른 아침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한 곳에만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어 가보았다. 관광지다 보니 하얀 반팔 티셔츠에 이름을 새겨 판매하는 노점상이었다. 우리는 각자 아이들의 이름을 새겨 넣은 티셔츠를 기념품으로 사고 서둘러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3사람의 여권과 비행기 표 그리고 출장 여비를 넣어둔 조그마한 가방을 내가 목에 메거나 들고 다녔는데, 손가방에서 여권이 저절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 왜 가방 지퍼가 열려있지?”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같이 있던 두 사람도 걱정이 돼서 나를 쳐다보았다.
점검해 보니 2시간 뒤에 탑승해야 할 비행기 표(air tickets)가 없어진 것이다. 여권과 현금이 남아있는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지금은 비행기 표가 없더라도 항공사 계산대에서 인터넷으로 예약 확인만 되면 재발급이 가능하고 탑승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38년 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로마에는 대한항공 지점이 없어 파리지점에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더니, 서울이 토요일 오후라 업무 담당자들이 모두 퇴근해서 다음 월요일이 되어야 필요한 조치가 가능하다는 답변이었다. 대사관에도 연락해 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나 자신도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무작정 월요일까지 로마에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로마공항에 가서 방법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 일행은 서둘러 택시를 탔다.
로마 시내에서 공항까지 35㎞, 50분 동안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 실수를 수없이 자책하고 또 자책할 뿐, 한 과장님과 김 사무관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공항에 도착해 보니 우리가 탈 방콕행 비행기(태국 항공사)는 노조 파업으로 인해 오후 5시경으로 출발이 연기되어 있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장시간 아무리 사정을 해도 대한항공에서 확인 조치를 해주지 않으면 비행기 표 없이 탑승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시 대한항공에 이런 사정을 얘기해 보았지만 월요일이 돼야 가능하다는 똑같은 답만 돌아왔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로마 경찰관 만세!

다른 방도가 없어 우리는 다시 로마 시내로 돌아와서 조그마한 호텔방 하나를 잡아 3명이 들어갔다. 두 사람은 침대에 눈 감고 누워버렸다. 얼마나 속상했겠는가? 그렇다고 나마저도 자포자기하고 함께 누울 수는 없었다. 뭔가 실마리라도 찾아볼 생각으로 말없이 호텔방을 나와 아침에 갔던 그 길을 다시 걸었다.

행여 길가에 떨어져 있지 않을까,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으로 땅만 쳐다보며 걸었다. 아침에 티셔츠를 팔았던 노점상은 흔적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던 그 순간, 저쪽에 경찰관이 보였다. 경찰에게 협조라도 구해볼 심산으로 그 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오히려 경찰관이 반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매우 서툰 영어로 말을 걸었다.

“You are Korean?”
“In the morning, you pickpocket here?"
"Come here"

경찰관은 내 손을 잡고 근처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어디엔가 전화를 걸어 나를 바꾸어주었다. 전화기 너머 상대방은 이런 요지로 영어를 쏟아냈다.

“여기는 로마 경찰청 외국인 담당 부서다. 오늘 아침에 성 베드로 성당 근처에서 당신이 만난 경찰관이 소매치기 범인을 잡았다. 훔친 비행기 표를 돌려주기 위해 당신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해 그 비행기 표를 우리 부서에서 보관 중이다. 여기 와서 직접 확인해 보고 찾아가기 바란다.”

세상에나!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다니.
나는 당장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경찰관과 함께 순찰차를 타고 로마 경찰서로 달려가 외국인 담당 부서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만 책상 위에 비행기 표가 애타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은 내 여권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비행기 표를 돌려주었다.

◆ 또 다른 미션! 방콕행 비행기를 잡아라!

그때 시간이 오후 3시쯤, 잘하면 방콕행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 같아 경찰서 직원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긴급출동 경찰차(police car)를 내주면서 호텔까지 나를 데려다주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나를 태운 경찰차는 비상 사이렌을 켜고 신호등까지 무시하면서 호텔로 달렸다. 비행기 표를 손에 꼭 쥐고 로마 시내를 달리던 그때 그 기분은 말로 다 설명하기가 힘들다. 아마 로마 시내를 이렇게 달린 한국 사람은 일찍이 없었을 것이다.

호텔 방문을 박차고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로 외쳤다.
“과장님! 비행기 표 찾았어요. 빨리 공항으로 가시게요!”

믿기지 않는 상황에 한 과장님은 “정말이야?” “어떻게 찾았어?” 질문을 쏟아냈지만, 답할 시간이 없었다. 일단 공항으로 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시간이 없으니 택시 타고 가면서 얘기할게요“
우리는 다시 택시를 타고 부리나케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오후 5시가 다 되어 도착했고, 우리가 탈 방콕행 비행기는 탑승을 마치고 이륙 준비 중이었다. 서둘러서 다른 태국행 항공편을 알아보니 오후 6시쯤에 태국 다른 도시로 가는 비행기(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가 있었다. 우리는 그 비행기를 타고 태국에 갔다가 6월 12일 예정대로 무사히 서울로 돌아왔다.

◆고통스러운 추억일수록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태국행 비행기 안에서 조금 여유가 생기자 한 과장님이 김 사무관을 조용히 질책하는 것이었다.

“김 사무관,! 잃어버린 비행기 표를 찾겠다고 주무 사무관이 나서면 같이 나가서 찾아봐야지 의리 없이 그렇게 누워있으면 되는 거야?”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는데 그런 얘기를 들었으니 김 사무관 입장에서는 기분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그런 김 사무관에게 내가 던진 한마디는 그를 더욱 아프게 했으니...
.
“김 사무관! 소매치기는 누구나 당할 수 있지만, 잃어버린 물건을 그것도 로마에서 다시 찾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 황당한 경험은 나에게 여러 교훈을 주었다. 그날 이후 해외여행 때 지갑 같은 조그마한 손가방은 나에게서 사라졌고, 물론 그 후 유사한 실수도 없었다. 훗날 해외 출장 시 후배 공직자들이 이런저런 실수를 할 때 ‘사무관 시절’의 아찔한 경험을 생각하며 웃고 이해해 주는 너그러운 상사가 될 수 있었다.

아쉬웠던 점은 비행기 표를 찾아주었던 그 고마운 경찰에게 충분히 사례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그 일 이후 고마운 분들에게는 그때그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노력하지만,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여전히 마음뿐 표현이 부족하다.

끝으로 38년 전 일을 기억에 의존해 쓰다 보니 일부 날짜와 시간 등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조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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