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 고민 깊어진 한은…전문가 "금리인상, 속도 조절 필요"

연준 '자이언트 스텝' 단행으로 빅스텝 명분 충분
문제는 국내 단기금융시장 상황... '금리인상 속도 조절' 목소리 커져
한은 '빅스텝' vs '베이비스텝' 기대치 갈려... 12월 FOMC 결정이 관건

한국은행이 세 번째 ‘빅스텝’ 결정을 앞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75%포인트 올림)'을 단행하면서 빅스텝 결정 명분은 충분하지만 국내 단기금융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금리인상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열린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는 사상 두 번째로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회의에서는 물가와 환율 안정을 우선해 빅스텝을 해야 한다는 의견과 경기·고용의 둔화를 우려해 '베이비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25%p 인상)'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한은은 지난달 '물가의 추가 상승압력과 외환부문의 리스크 증대로 정책대응을 강화' 제목의 입장을 블러그에 올리며 빅스텝 배경으로 "높은 물가오름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환율이 물가의 추가 상승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지난 8월보다 정책대응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물가가 정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원·달러 환율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한은이 추가 빅스텝을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열린 ‘한국은행-한국경제학회 국제컨퍼런스 2022’에 참석해 "최근 인플레이션과 환율이 비교적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미 연준의 금리인상 속도도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긴축적 통화기조를 유지함으로써 물가안정 기조를 공고히 하고 인플레이션 수준을 낮추는 것은 여전히 한국은행의 우선과제"라고 긴축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긴축기조가 지속함에 따라 금융안정 유지, 특히 비은행 부문에서의 금융안정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고(高)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의 긴축 하에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이러한 자금흐름을 비은행부문으로 어떻게 환류시킬 것인가는 한국은행이 당면한 또 하나의 정책적 이슈"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이 총재의 발언을 두고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단기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베이비스텝’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단기자금시장의 바로미터인 기업어음(CP) 금리는 처음으로 연 5.0%를 넘어섰다.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자 기업들이 앞다퉈 CP 발행에 나섰기 때문이다. 올해 초 1.55% 수준이던 CP금리는 5월 2.09%, 8월 3.01%, 10월 4.02%로 오름세를 보였다.

특히 9월 21일(3.13%) 이후 33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한은은 지난달 12일 기준금리 0.50%p 인상으로 인해 단기시장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CP·단기사채 순발행액은 9월 4000억원 순상환에서 10월 3조1000억원 순발행으로 전환됐다. 반면 회사채는 3조2000억원 순상환됐다. 단기자금시장의 신용경색 여파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저신용·취약기업의 CP 발행 여건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이다.

김광석 한양대학교 겸임교수(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는 "채권시장이 매우 불안한 상황"이라면서 "추가 빅스텝 단행 시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이어질까 가장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채권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한 이유로 민간기업들은 자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돈맥경화가 오고 있다"며 "추가적인 빅스텝은 부담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우리나라는 물가 정점을 확실히 찍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베이비스텝 만으로도 금리는 3.25%로 오른다. 그 정도의 높은 기준금리만으로도 물가가 안정화되는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설명했다. 속도 조절에 우리나라는 조금 빨리 들어가도 좋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인 셈이다.

하지만 한은으로서는 여전한 강달러 기조가 고민거리다. 최근 미 연준 위원들의 금리 인상 속도 조절 시사 발언으로 다음달 열리는 FOMC 정례회의에서 0.50%p 인상을 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따라서 연준의 강력한 긴축기조 지속은 물론 달러 강세로 이어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한은도 빅스텝으로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게 지배적이다.

아울러 강달러 기조가 다소 약화되는 흐름이지만 한미 양국의 금리 차이가 더 나게 될 경우 추가적 자금유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경우 물가가 더 오를 수도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NH투자증권 권아민 연구원은 "미국의 추가 긴축을 고려하면 현재 상황을 연준의 방향성 전환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며 "실물경기를 반영한 무역수지, 경상수지를 고려하면 결국 완연한 달러 공급 기조가 회복되지 않았다. 연말연초 에너지 수입 증대, 높은 에너지 수입물가 레벨 및 무역수지 추가 악화 가능성 등은 여전히 원화 약세 요인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김광석 교수는 "통화정책이라는 것이 항상 어떤 식으로 단행하겠다는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해야 되는데 그동안 사전조치 지침이 빅스텝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시장이 해석을 했었기 때문에 베이비스텝으로 전환하기는 부담이 될 수 있다"며 "한은 금통위원들의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