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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협상력을 발휘한 부호 '폴 게티'

  • 보도 : 2020.12.16 08:00
  • 수정 : 2020.12.16 16:48

게티 미술관 이야기
"미술품은 거짓말 하지 않아, 인간들은 거짓말을 하지"

조세일보
미국 대공황 이후, 세계 1위 부자는 석유사업으로 부를 일군 폴 게티(Jean Paul Getty, 1892-1976)였다. 

그는 지독한 구두쇠로 악명이 높았다. 집을 방문한 사람들이 무료로 집전화를 사용하는 것이 싫어 집에다 공중전화를 설치했다. 

게티는 협상의 지존이기도 했다. 어떤 경우에도 협상은 가능하며 그 목적은 가격을 후려쳐서 깎는데 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로마로 여름휴가를 떠났던 손자('게티 3세')가 1973년 7월, 마피아에게 유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마피아는 게티 3세의 어머니(게티 2세와는 이혼)에게 전화를 걸어 1,700만 달러를 지불하지 않으면 아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다급해진 그녀는 전 시아버지인 폴 게티에게 손자의 유괴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폴 게티는 "내게는 14명의 손자가 있다. 이번에 돈을 지불하면 앞으로 14번이나 마피아와 협상을 해야 한다"며 냉정하게 거절했다.

납치된 지 수 개월이 지나도록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마피아는 게티 3세의 한 쪽 귀와 머리카락을 잘라 한 일간지에 보냈다. 당장 돈을 주지 않으면 다음번엔 나머지 한 쪽 귀도 자르겠다면서….

폴 게티는 비로소 심각성을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마피아와 최종 순간까지 몸값 협상을 이어갔다. 결국 400만 달러만을 지불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그러면서 아들(게티 2세)에게는 원금에 이자까지 쳐서 갚을 것을 요구했다. 또한 이자 지급분은 세금공제가 되니 그 금액은 자신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악명 높은 수전노였던 그가 뜻밖에도 무한대로 돈을 쓰는 곳이 있었다. 미술품이나 유물을 구매할 때였다. 값어치가 나갈 만한 미술품이 있다는 소식만 접하면 어디든 찾아가 사들였다. 

이렇게 사 모은 미술품과 유물은 현재 LA의 '게티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누구든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게티 사후에 공개된 유언장에 따라 그의 유산 대부분이 소장 미술품과 함께 게티 트러스트에 맡겨진 덕분이다. 

상속인들이 자신의 유산을 함부로 찾아 쓰지 못하게 하면서 상속세를 절감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지극히 일부의 유산만을 상속인들에게 남긴 탓에 상속세로 납부한 금액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 소식을 접한 상속인들은 "쓰지도 못할 돈을 왜 그렇게 지독하게 모았냐"고 원망했다. 

그의 생전 누군가 물었다. "왜 그렇게 미술품 소장에 집착하시는지요?" 

그가 말했다. "미술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반면 내 앞에 나타나는 인간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지. 한 푼이라도 뜯어내려고 말이야."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말한다. "지나간 역사는 재현될 수 없고 역사를 기록한 글은 왜곡될 수 있다. 그러나 미술품은 과거가 남긴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

미술품은 왜곡되지 않은 날것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 체험을 통하여 인류의 발자취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고 미래를 열어가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선진국들이 미술관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양정무, 미술이야기). 

폴 게티는 죽어서도 협상력을 발휘했다. 미술품 기증을 통하여, 생전의 악인 이미지를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대명사로 바꾸는데 성공했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All the Money')로 만들어졌다. 

한편, 폴 게티 3세는 유괴된 해 겨울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삼일세무법인
정찬우 대표이사

[약력]성균관대원 박사과정 수료, 고려대원 졸업(석사), 서울시립대 졸업, (전) 삼일회계법인 파트너
[저서]사례와 함께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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