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자 민간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물량보다 투기로 인한 주택 사재기를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진=연합뉴스)
최근의 부동산 과열 현상은 과거 경제개발시대의 이른바 '투기공화국'이 재연되는 듯한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소위 '영끌'을 해서라도 집을 사고 보자는 심리 확산이 과거 산업화시대의 투기붐과 닮았다.
주택공급량을 늘리는 방안으로 기존의 다주택자가 집을 처분할 수 있도록 양도세를 완화하여 퇴로를 열어주어야 한다는 주장과 재건축, 재개발, 용적률을 확대하여 도심 아파트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 주택공급이 확대되면 투기붐이 잡힐까?
그러나 최근 서울의 아파트 준공물량 통계를 보면, 민간 주택의 공급이 부족해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은 힘을 잃게 된다. 국토교통부의 2011~2019년 '서울 아파트 연도별 준공실적'에 따르면 부동산 침체로 집값이 내려앉았던 2012~2013년보다 폭등이 심했던 2018~2019년의 아파트 물량이 2배 가량 많았다. 서울 아파트의 준공 물량은 2012년 2만6115호, 2013년 3만3607호였다가 2018년 4만3738호, 2019년 4만5630호로 크게 늘었다.
서울 아파트의 인허가 건수도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3~2016년 평균 3만5173건에서 2017년 7만4984건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후 2018년 3만2848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가 지난해 3만6220건으로 다소 늘었다. 특히 현 정부 임기 시작인 2017년 5월 이후의 인허가 건수는 5만8579세대로 이명박 정부(3만8009건), 박근혜 정부(3만5173건)보다 2만 건 이상 많았다.
다만 서울 주택의 순증 수(준공주택 총수에서 멸실주택 총수를 뺀 주택수)는 지난 3년 사이 2만5719건으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실질 입주물량인 2만7748건에 비해 다소 줄어들었다. 2017~2019년 연평균 준공 실적은 3만9734세대인데, 이 시기 멸실 비율이 1만여 건에 달한다. 결국 실제로 입주할 수 있는 서울 아파트의 물량은 2만5000여 건인 셈이다.
준공·인허가 물량을 놓고 보면 정부가 예측하는 신규 주택 수요에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국토연구원은 제2차 장기 주택종합계획(2013~2022년)에서 서울의 신규 주택 수요를 연평균 5만5000세대로 추정했다. 정부는 2022년까지 향후 3년 간 서울 지역에 작년보다 약 35%가 많은 연평균 4만6000호의 아파트를 추가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간아파트 공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다주택자의 '주택 사재기' 등 투기 수요를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강남 불패 신화는 '갭투자' 영향 컸다
부동산 투기 과열의 이면에는 실제로 입주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임차인의 보증금을 승계해 주택을 매수하는 이른바 '갭투자'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작년 서울, 수도권, 세종시 등 투기과열지구의 3억원 이상 주택 거래 중 절반 이상이 '갭투자'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3월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국토교통부의 '자금조달 및 입주계획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투기과열지구의 주택 매매 16만1835건 가운데 절반 이상인 8만2170건이 갭투자였다. 투기과열지구에서 3억원 이상의 주택을 거래할 경우 실제 입주 여부와 보증금 승계 등 주택취득자금의 상세항목을 적은 '자금조달 및 입주계획서'를 정부에 내야 하는데, 이를 통해 임대 보증금과의 차액만 지급한 거래 현황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은 2018년 3억원 이상의 주택 거래 13만56건 중 53.8%에 해당하는 7만17건이 보증금 승계를 통한 매입이었다. 특히 서울의 대표적인 투기과열지구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에서 갭투자 비율이 높았다. 2018년 1월 기준으로 서울에서 갭투자 추정 거래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성동구(76.1%), 강남구(75.5%), 용산구(72.7%), 송파구(72.3%), 서초구(72.2%) 순으로 나타났다. 매맷값이 큰 폭으로 오른 지역에 기대 심리를 갖고 들어와 전세금을 낀 갭투자를 많이 한 것으로 풀이된다.
수도권의 과열지구에서도 갭투자 열풍이 불었다. 성남시 분당구는 7506건의 주택 거래 가운데 5021건(66.9%)이 갭투자 추정 거래였고 광명시(1062건 중 410건·38.6%), 하남시(2032건 중 633건·31.2%)도 갭투자 비율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 정책 전문가들은 이사철을 앞둔 1월 갭투자 비율이 치솟았던 점에서 실제 거주 의사 없이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려는 경향이 강했던 것으로 봤다.
◆ 서울 30대 인구는 줄었는데 매수는 증가, 왜?
그런데, 한국부동산원(옛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30대 이하의 서울 아파트 매입 건수가 올해 2만9287건으로 작년(1만4809건)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30대 이하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은 올해 8월 처음으로 40%대를 기록한 이후 계속 상승해 지난달 43.6%에 달했다. 서울의 30대 인구는 빠져나가고 있는데 반해 아파트 구입은 늘어난 것이다.
무주택자의 주택구매비율은 전반적으로 줄어든 반면 주택구매력이 약한 젊은 층의 아파트 매입비율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의 아파트 증여는 올해 1만9108건으로 사상 처음으로 연간 2만건을 앞두고 있다. 특히 고가 아파트가 많은 강남 3구의 아파트 증여 건수는 5726건으로 서울 전체의 30%를 차지했다. 또 전체 거래 중 증여 비율은 강남 3구에서 22.7%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무주택자의 주택구매력이 약화된 반면, 주택구매력이 높은 부잣집은 종부세 강화 등의 영향으로 증여를 통해 자식 명의의 주택을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택 소유 편중이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 서울 강남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강남 아파트가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의 다주택자 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통계청이 11월 발표한 '2019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의 2주택자 이상 소유자는 3만1400명으로 주택 소유자 중 21.5%를 차지했다. 서울 서초구도 2만4900명(20.4%)로 전국에서 4번째로 많았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일부에서 주장하는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요구는 불로소득 환수를 통한 투기적 가수요를 줄이는 억제책과 거리가 멀다"며 "민간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는 부동산 투기에 기름을 더 끼얹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토지공개념 특별취재팀 : 홍준표·염재중·염정우·태기원·강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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