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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

오사카는 어떻게 '상인의 도시'가 되었을까?㊦

  • 보도 : 2020.10.27 08:00
  • 수정 : 2020.10.27 08:00

조세일보
"일본의 가업상속은 왜 모범사례로 여겨질까?"

금수저들은 비난 받곤 한다. 부와 지위의 상속이 사회를 더 불평등하게 만들 수 있는 탓이다.

반면, 일본의 가업 승계는 되레 바람직하다며 박수를 받는다. 상속받는 이가 경쟁에서 더 유리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그들의 가업승계나 우리네 금수저 입장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왜 그들의 상속은 오히려 본받아야 할 사례로 다가올까?

그 이유는 '일본 상도(商道)의 바이블'으로 여겨지는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巖 , 1685~1744)의 주장을 살펴보면 분명해진다.

이시다 바이간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하루 6시간 일해 한 달에 쌀 3섬을 거둔다. 상인은 하루 8시간을 이해 쌀 3섬 한 되를 얻는다. 이 얼마나 멋진가!"

사실, 쌀 3섬과 3섬 한 되의 차이는 1.5kg밖에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위한 노동량의 차이는 60시간 가까이 벌어진다. 그런데도 왜 그는 상인의 노력을 '멋지다'라고 했을까?

이시다 바이간에 따르면, 업의 목표는 이익만이 아니다. 업은 내 삶을 성실하게 만들고, 영혼에 규율과 검소함을 심어준다. 매일매일 한결같이 노동을 하려면 생활도 견실해야 한다. 반면, 이익이 적다고 놀고 쉬려하면 어떻게 될까? 씀씀이는 금방 커지고 일하는 태도도 느슨해질 터다.

"일 자체가 수양이다"

그래서 이시다 바이간은 "일 자체가 곧 수양(諸業則修行)"이라고 강조한다. 상인들도 사무라이들처럼,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마음에 새기며 이를 끊임없이 일상에서 실천해야 한다.

인(仁)은 고객을 생각하는 정성이다. 의(義)는 정직하게 거래하는 모습을 말한다. 예(禮)란 고객을 존경하는 자세다. 지(智)는 지혜를 모아 상품을 개발하는 노력이고, 신(信)은 돈을 빌리면 반드시 갚는 마음이다.

이를 꾸준히 실천하는 상인은 망할 리 없다. 게다가, 세상은 '인의예지신'이라는 유교의 다섯 덕목을 꾸준히 실천하는 학자들을 존경하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이를 생업을 통해 실현하는 상인도 우러름을 받곤 한다. 장사를 오래할수록 인격 역시 가다듬어지며 훌륭한 인품이 몸에 배는 까닭이다.

"나의 업이 자랑스러운가부터 물어라"

오사카 상인 정신의 고갱이인 '센바 상도(船場 商道)'에도 이시다 바이간의 가르침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문을 남기는 것은 하(下), 가게를 지키는 것은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이 상(上)이다.", "자신을 믿어주는 고객이 있는 한 장사는 영원하다." 등등의 말 속에는 큰 상인의 풍모가 오롯이 담겨 있다.

상속자는 오랜 견습 과정을 통해 이런 태도와 가치를 영혼에 새기게 된다. 그런 후에야 가게를 물려받게 될 터다. 오사카 상인의 DNA 속에는 장사란 "상대도 나도 모두 잘되는 것이 진정한 상인의 도리"라는 생각이 뿌리내려 있다. 이런 사람들이 가업을 자식에게 물려준다 해서 손가락 질 할 사람이 있을까?

꾸준히 가업을 이어가는 그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다. 그렇다고 사치스럽지도, 거만하지도 않다. 매일 매일 검약을 마음에 새기며 최선을 다해 오랜 전통을 지키기 위해 업을 이어갈 뿐이다.

세상이 이들의 정성을 인정하고 꾸준히 찾아 주는 한, 이미 수 백 년된 오사카의 노포들이 문을 닫을 일은 앞으로도 없을 듯싶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상공인들의 가업 승계는 어떨까? 상속하려는 자는 자신의 부를 일궈 준 가업을 마뜩치 않게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생스럽고 제대로 대접도 못 받는 일이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자식은 더 잘 배우고 '출세'하여 자신이 했던 일을 안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곤 한다. 이런 바람이 꼭 바람직하기만 할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진리다. 업종이 무엇이건, 인의예지신을 실천하며 자신의 혼을 담아 가업을 펼치는 자에게는 세상의 존경과 찬탄이 뒤따른다.

행복한 상속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오사카 상인들의 자부심, 그리고 이시다 바이간의 상도를 꼼꼼하게 살펴보시기 바란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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