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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

핏줄이 상속받을 자격의 절대적 조건일까?

  • 보도 : 2020.06.04 08:11
  • 수정 : 2020.06.30 11:57

상속받을 자의 자격(上)

조세일보
가효당, 아름다운 효도의 집

혜경궁 홍씨가 혼례를 치르고 세자빈이 된 나이는 열 살이었다. 영조(英祖)와 왕후들은 어린 세자빈을 무척 예뻐했다.

시아버지인 왕은 무거운 조언부터 건넸다. "궁중은 여염집과 다르다. 무슨 일을 보아도 모르는 체하라. 그리고 먼저 아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

'궁궐 정치'가 몸에 밴 노회한 충고를 열 살 아이가 과연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혜경궁 홍씨는 시아버지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의례를 위해 쓴 큰 가발도 무거웠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시할머니 인원왕후에게도 이런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했나보다. 왕후는 어린 세자빈을 크게 칭찬했다. "이제 열 살인 빈궁이 참으로 단정하도다. 기특하구나."

열여덟 살이 된 해에, 혜경궁은 마침내 왕이 될 아들을 낳았다. 영조는 무척 기뻐했다. 첫 손자가 두 돌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상황,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 상황이 불안했던 탓이다. 영조는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며 혜경궁을 추켜세웠다.

조선에서 효(孝)는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이다. 혜경궁은 어느 면에서나 효의 모범이라 할 만 했다. 이른 새벽 늦잠으로 문안 인사를 거를까봐 밤을 셀 정도였다. 나중에 남편을 잃은 혜경궁의 거처에 영조는 가효당(佳孝堂)이라는 현판을 써주었다. 이는 '아름다운 효성의 집'이라는 뜻이다.

임오화변의 비극

혜경궁의 남편인 사도세자는 어땠을까? 그는 영조가 마흔이 넘어 얻은 귀한 아들이었다. 효종, 숙종, 현종을 잇는 '삼종(三宗)의 혈맥'인 사도에게는 경쟁자가 없었다. 그는 당연하게 왕이 될 운명이었다. 하지만 결국 영조는 아들을 내쳤다. 나아가 뒤주에 가두어 목숨이 끊어지게 했다.

영조는 모두가 인정하는 현명한 군주다. 그런 왕이 왜 아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유학의 성인(聖人)인 맹자는 역성(易姓)혁명을 인정한다. 왕이 왕답지 못할 때는 끌어내려도 된다는 뜻이다.

뒤주에 들어갈 당시, 사도는 이미 왕이 될 만한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옷만 입으면 벗어던지는 의대병(衣襨病)이 심했을 뿐더러, 나중에는 눈에 띄는 것은 뭐든 죽여 버리려 할 정도로 광포해지기까지 했다.

스물 세 살 나던 해, 사도는 대왕대비전의 나인을 데려다 살림을 차렸다. 학문에는 별 뜻이 없는 아들이 웃전 하인까지 데려간 사실에 영조는 화를 참지 못했다. 호되게 혼이 난 사도는 슬픔에 우물에 뛰어들기까지 했다. 이 모습을 신하들은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왕의 후계자로서 체면이 살 리 없었다.

그 밖에도 사도세자가 했던 기행(奇行)들은 끝없이 이어진다. 기생과 비구니를 궁에 끌어들여 잔치를 벌이기도 했고, 병들어 누워있다고 주변을 속인 채 이 십 여 일 동안 북쪽 지방을 여행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도가 왕의 자리를 물려받는다면 과연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을까?

성리학의 나라에는 폭군이 자리할 곳이 없다. 영조는 냉철한 임금이었다. 다행스럽게 사도의 아들인 정조는 품행이 바르고 학문에도 밝았다. 한마디로 왕의 재목(材木)으로 손색이 없었다.

손자에게 권력을 물려주려면 아들부터 지워야 했다. 안 그랬다간 권력투쟁이 끝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허나 왕 자신이 아니면 누가 한 나라의 세자를 죽이라고 명령할 수 있겠는가. 영조는 사도에게 자결을 명했다.

세자가 주저하자 왕은 사도를 뒤주에 가두어 버린다. 아비로서 차마 못할 짓을 왕으로서 한 것이다. 왕으로서 왕국을 지켜야 할 소명은 아버지의 사랑보다 컸다. 조선왕조 최대 비극이라 할 만한 임오화변(壬午禍變)은 이렇게 끝났다.

핏줄이 상속의 절대적 조건일까?

만약 사도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았다면 어떨까? 마지막 순간 영조가 마음을 바꿔 사제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면, 과연 그는 온전히 왕국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인 임오화변은 상속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핏줄은 상속에 있어 절대적인 조건이다. 가진 것을 피붙이에게 물려주고픈 마음은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오롯이 재산과 권한을 넘겨주었다 해도, 상속받는 자가 이를 지켜낼 가능성이 없다면 어떨까? 나아가 물려준 몫이 오히려 상속받는 자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더 망가뜨린다면?

우리가 '상속받는 자의 자격'을 따져보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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