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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정글의 강자들㉓-전문직 성공의 핵심 DNA-

미국변호사 일화와 성공보수

  • 보도 : 2020.04.10 08:20
  • 수정 : 2020.04.10 08:20

조세일보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미국변호사가 있다. 그의 이니셜은 J이다. 그는 갑로펌 초창기에 들어와 로펌대표와 함께 갑로펌을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자리에 올려놓았다. 미국인이지만 한국어를 우리보다 잘 한다. 신기한 일이다.

미국 유타(Utah)주 출신인 그는 청년시절 몰몬교 선교사로 한국에 왔다. 선교활동에 매진하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외국인이 아무리 열심히 배운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법인데 J는 언어감각이 어느 누구보다 탁월한 것 같다. 전화로 그의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사람으로 오인할 정도다. 

어느 날 J가 여러 명의 변호사, 회계사 등과 회의를 하고 있었다. 회의 중에 다른 회의실에 모인 그룹에서 이쪽 팀의 한국 변호사들과 함께 토의할 사항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전화회의(conference call or teleconference)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쪽에서 전화를 요청한 사람은 갑로펌의 M&A 그룹장이며 고참 변호사 중의 한 사람인 K변호사였다. 그 당시 전화회의는 사람의 얼굴만 안 보일뿐 지금의 비디오 컨퍼런스와 동일했다. 전화기에 가장 가까이 앉아있던 J가 수신 버튼을 눌렀다.

K변호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X(한국)변호사, 그리고 Y(한국)변호사, 지난번에 미국의 판례를 급히 찾아 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왜 아직도 연락이 없지? 왜 이리 늦는 거야?"
K변호사가 짜증스럽게 질문을 하자 이 쪽에 있는 X변호사와 Y변호사는 '아차' 싶었는지 대답을 못하고 잠시 망설이고 있었다.
대답이 없자 K변호사가 말했다.
"왜들 대답이 없어요?"
그러자 이 두 변호사들에게 일을 너무 많이 시키고 있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던 J변호사가 대변인 비슷하게 나섰다.
"요즘 이쪽 팀에 일이 너무 폭주해서 후배 변호사들이 매일 새벽에 퇴근합니다. 그래서 그런 검색 같은 일(약간 수준이 낮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에 매달릴 시간이 없네요.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러자 K변호사가 약간 화가 난 듯 언성을 높이면서,
"누가 꼭 (한국)변호사들을 쓰랬어? 후배들이 바쁘면 미국 애들(미국변호사를 뜻함)에게 맡기면 되잖아? 그 친구들, 요즘 일도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던데…."
라고 했다.

미국변호사들을 얕잡아 보는듯한 이 이야기가 들려오자, 이쪽에 있는 변호사들이 약간 당황하며 J변호사와 미국변호사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이 이런 대화 정도는 다 알아듣기 때문이다. 참석한 다른 미국변호사들 중에도 한국어를 잘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J변호사가 계속했다. 좌중의 다른 변호사들을 쳐다보고 눈을 찡긋 감고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K변호사님, 잘 알았어요, 여기 있는 미국 애들이 할게요. 그런 잡일은 당연히 미국 애들이 하는 게 맞지요."

그러자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파안대소했다. 그들이 웃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J변호사는 K변호사보다도 훨씬 고참이고 법인 내에서 K변호사보다도 훨씬 더 비중 있는 변호사이기 때문이다.

저쪽에서 이쪽 분위기를 아직 눈치 채지 못 한 듯하자, 한국 변호사 한 사람이 말했다.
"K변호사님, K변호사님이 대화한 분이 바로 J(미국)변호사님이세요. 한국변호사가 아니라구요. 이 회의에 계속 참석해 계시거든요."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K변호사도 당황한 듯 잠시 주저하더니 한 바탕 웃어댔다. 그쪽의 다른 변호사들도 한 바탕 웃어댔다.

K변호사가 말했다.
"아, 내가 완전히 속았네. 나는 한국 사람과 얘기하는 줄 알았어. J변호사님인줄은 전혀 몰랐어. J변호사님이 사람 잡네. 한국 사람보다 한국말을 더 잘 하시니 내가 완전히 속은 거지. J변호사님은 당연히 미국 애들은 아니지, 하하하. 미안해요!"

이랬다. J변호사는 이만큼 한국말을 잘 한다.

그는 외국인 한국 땅에서 광범위한 네트워크(network)를 갖고 있다. 그가 오랫동안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아 한국의 식자층과 많은 교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장차관도 쉽게 만나고 대통령 면담도 어렵지 않다.

그는 유머감각도 뛰어나다. 한국말로 수시로 좌중을 웃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미국인이지만 한국인 팬이 많다. 기업인, 관료는 물론이고 정치인, 연예인 등 다양하다.

그는 또 만능해결사이다. 변호사나 회계사가 업무처리를 잘못해서 외국고객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가 나서서 다 해결해 준다. 자문료를 너무 과다하게 청구했다는 등의 이유로 고객과의 관계가 불편해질 때에도 그가 나서면 해결된다. 워낙 경험이 풍부하고, 유머가 많으며, 생각과 논리가 깊다. 그야 말로 "great lawyer"이다.

갑법인에게는 그야 말로 보배 중의 보배이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미국보다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 더 열심히 뛴다. 통상문제 등 한·미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로 미국을 찾아간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가 매년 펼치는 도어 녹(Doorknock :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사절단이 워싱턴 D.C.에서 한미 무역을 의논하는 것) 행사를 이용, 주한미국상공회의소 간부들을 인솔하여 미국 상무부나 백악관을 방문하여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미국의 양보를 얻어낸다.

그는 한국에서 자선사업에도 열심이다. 예를 들면 미래의동반자재단의 이사장으로서 많은 공익활동을 전개하고 소아암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머무르는 "하우스"를 짓는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나박사가 어느 날 J의 방에 들렀다. 한국의 외국계호텔업계에 매우 민감한 조세문제(외국법인의 고정사업장)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모든 호텔들에게 거액의 세금이 부과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나박사가 말했다.
"J, 이 건은 호텔업계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국세청이 곧 세금을 부과할 기세다. 내게 국세청의 주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논리가 있다. 그 논리를 가지고 재경부로부터 반대해석(예규)을 받아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어느 한 고객만의 의뢰를 받아서 이런 해석을 받아내면 나머지 많은 호텔들이 무임승차(free ride)를 하게 된다. 무임승차를 막고 모든 호텔들이 다 똑같이 보수를 내도록 하는 방안이 없겠나?"
"아, 그래? 그거 잘 하면 대박이겠네."
"그럼"

그는 그날 오후 내내 모든 호텔지배인들에게 전화 또는 이메일(email)을 보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등 한참 소란을 떨었다. 그리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만나기 시작했다. 며칠 간 밖으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며칠 후 그가 나박사의 방에 들렀다. 그리고 난데없이 계약서들을 내밀었다. 관련된 모든 호텔들과 맺은 계약서였다.

계약서 내용은 이러했다.
"~~, 갑로펌이 재경부로부터 유리한 예규를 받아내는 즉시, 각 호텔은 00억 원씩을 갑로펌에 지불한다."
역시 J의 능력은 대단했다.

물론 나중에 나박사는 유리한 예규를 받아냈다. 국세청은 과세를 포기했다. 나박사와 J는 호텔들로부터 총 00억 원을 성공보수로 받았다. 질의서를 보내서 답변하나 받아내고 받은 돈 치고는 크다. 그것도 몇 자 안되는 답변인데….

J는 이런 큼직한 사건들을 조용히 그리고 아주 능숙하게 잘도 해냈다. 나박사는 주로 아이디어를 내고 J는 고객을 모집했다.

변호사나 회계사 등 전문직들은 이런 성공보수 프로젝트들을 특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큰 금전적 손해를 피한 고객들은 기꺼이 돈을 내고, 전문직들은 한 건으로 일거에 거액의 자문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나박사는 오랫동안 J와 함께 손을 잡고 이와 같은 많은 대형프로젝트들을 성공시켰다.

얼마 전 나박사는 오랜만에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모임에 나갔다. 지난 1년간 UC Hasting Law School(법학전문대학원)에 방문 교수(visiting professor)로 미국에 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주빈으로 참석해 있었다. 나박사가 좀 늦게 참석했다. 단상에서 J가 반총장과 함께 앉아서 대화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나박사는 잠깐 단상으로 올라가서 반총장에게 실례(excuse)를 요청하고 J의 어깨를 툭 치며 인사했다. 그도 아주 반가워했다. 오랜만의 아주 짧은 만남이었다.

그렇게 헤어진 후 아쉬움이 남아 나박사가 J에게 모바일 메시지를 보냈다.
"J, 아까 정말 반가웠어."
즉시 답이 떴다.
"엄청! 엄청!"
웃음이 절로 나왔다.

반가움의 표시 치고는 최상급이다. 한국인인 나보다 더 실감 나는 메시지이다. 나박사가 J라면 그런 단어를 바로 생각해 낼 수 있었을까?
못했을 것이다.

법무법인 광장
이종열 고문

[약력] 서울대학교(경영학과) 졸, 세종대학교경영대학장·경영대학원장, 안건(현 안진)회계법인대표, 김&장법률사무소(부문)대표, 미국UC HASTINGS 법학대학원 방문교수,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조세분과 회장, 미국 및 호주회계법인 간부 등, 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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