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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

존 롤스 "최소수혜자 입장에서 생각하라"㊦

  • 보도 : 2020.03.04 08:20
  • 수정 : 2020.03.04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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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 원칙

"최소 수혜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롤스의 충고를 곱씹어보면, 사람들이 왜 불평등한 상황을 받아들이는지 이해된다.

경제 성장기에 대기업에게는 온갖 특혜가 주어졌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맞서는 이들만큼이나 많았다. 왜 그럴까? 설사 가장 성장의 열매를 적게 누리는 밑바닥에 있다 해도, 경제가 자라나지 못한 상황보다는 좋은 처지에 놓이는 까닭이다.

농업사회에서 장자(長子) 상속을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유도 다르지 않다. 맏이가 물려받은 큰 몫의 재산은 집안 전체의 '복지 제도'와 같았다. 동생들의 입장에서는 설사 자신이 적은 몫을 물려받았다 해도, 정말 어려울 때는 형에게 기댈 수 있다는 든든함이 있었다. 많은 형제들이 자잘하게 쪼개진 유산을 물려받아 고만고만해지기보다 '집안 전체의 기금'을 가진 믿음직한 버팀목이 있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이렇듯 사람들이 차별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가장 손해 보는 처지에 있는 이들조차도 이익이 돌아간다는 데 있다.

만약 가진 자들에게만 이득이 돌아간다면, 갖지 못한 이들은 주저 없이 '공평하게 몫을 나누라'며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롤스는 이를 '차등의 원칙(Difference Principle)'이라고 부른다. 즉, 최소 수혜자에게도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는 상황에서만 사람들은 기꺼이 차별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공정함은 기계적 평등이 아니다

하지만 롤스는 기계적으로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몫을 나누는 것을 '공정'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획일적인 사회가 발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본주의 역사가 보여주듯, 다양성과 경쟁이야말로 성장과 진보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사람들 사이에 능력의 차이가 없을 리 없다. 시간이 갈수록 재산의 많고 적음도 뚜렷해질 터다. 이런 조건 아래서 사람들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많은 몫과 좋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 그 가운데 경제와 문명도 발전해 나간다.

문제는 능력과 재산의 차이가 너무 벌어져 도저히 경쟁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른 경우다. 이 경우에 사회는 나락으로 떨어져버린다. 바닥에 놓인 자들은 가진 자들을 증오하며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든 사회를 뒤엎으려 한다. 반면, 가진 자들은 자기 것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며 못 가진 이들을 억누르려 할 터다.

때문에 롤스는 '기회의 균등'도 강조한다. 모든 이들이 뒤처지지 않고 경쟁할 수 있도록, 사회는 불리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의미다. 무상교육이나 의료, 복지 같은 경우를 롤스가 말하는 기회 균등의 예로 들 수 있겠다.

공정한 상속에는 재산보다 가풍(家風)이 중요하다

이제 다시 상속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상속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언제나 정당한 몫을 받아야 한다는 자신의 논리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상대도 마찬가지로 자기 생각이 옳음을 확신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롤스의 충고대로 "내가 최소 수혜자라면 어떤 상속을 바랄까?"라는 물음에 답을 해보라.

'내가 받기 싫은 대접을 상대에게 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은 인류사회 어디에서나 통하는 황금률(Golden Rule)이다. 나의 지위와 처지를 모두 가리는 '무지의 장막'을 쓴 채, 가장 불리한 자의 입장에 서 보라. 그 위치에서도 "받아들일 만하다"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주장이라면, 내 논리에는 확실하게 설득력이 실릴 터다.

다음으로 "어떤 미래를 보여주어야 '차별'을 받아들일까?"라는 질문을 곱씹어 보라.

이 물음에는 롤스의 차등의 원칙이 담겨 있다. 기계적 평등이 공정함은 아니다. 똑같은 몫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오히려 분란을 낳기도 한다. 상속의 몫에 차이가 있다 해도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면 분쟁은 잠잠해 진다.

물론, 이 모두는 이해 당사자 모두가 '공동체'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야 의미 있다. 롤스가 말하는 공정의 원칙들은 사회를 지키기 위해 갈등을 잠재울 때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속한 공동체를 지킬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낄 때는, 누구도 공정함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내가 가져갈 몫에만 매달릴 뿐이다.

상속에서는 재산의 공정한 배분보다, 식구들 모두가 소중하게 여기며 지키고자 하는 가풍(家風)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가풍이 서 있는 집안에서는 공정함에 대한 감각도 살아있다. 분란 없는 상속을 바란다면 이 점을 꼭 명심해야 한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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