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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

존 롤스 "최소수혜자 입장에서 생각하라"㊤

  • 보도 : 2020.02.26 08:21
  • 수정 : 2020.02.2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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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를 공정하게 나누는 법

피자를 공정하게 나누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 자른 피자를 분배 할 때는 먼저 조각을 집는 사람이 유리하다. 크고 좋은 몫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 손해 보는 이는 누구일까? 마지막에 남은 것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크고 맛있는 부위는 남들이 먼저 가져가는 탓이다.

그렇다면 공평하게 피자를 나누는 방법은 무엇일까? 피자를 누가 자를지를 먼저 정하고, 그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남은 피자를 갖도록 하면 된다. 이러면 칼을 쥔 사람은 최선을 다해 똑같은 크기로, 맛있는 부위가 골고루 나뉘도록 피자를 자를 것이다. 조금이라도 좋은 몫이 생긴다면 남들이 먼저 차지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렇게 하면 굳이 도덕윤리를 들먹일 필요가 없다. 양심에 호소하지 않아도 피자는 누구에게도 유불리가 없도록 똑같은 조각으로 나눠지는 까닭이다. 이 때 모두는 '공정'하게 똑같은 양과 질의 음식을 먹게 된다.

이렇듯 피자를 나누는 방식은 미국의 사회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가 말하는 '공정함(fairness)'을 설명할 때 흔히 예시로 소개되곤 한다.

무지의 장막을 써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다. 상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늘 억울하고 분하다. 상대가 부당하게 나보다 더 많은 몫을 차지하는 듯싶어서다. "길을 막고 물어봐!"라고 외치고 싶을 만큼 속에서 열불이 끓어오를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내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법관들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야 한다. 논쟁에서 나에게 설득력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남들도 내 말에 납득할 수 있는지가 문제일 뿐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세상살이에서 언제나 진리다. 왜 나의 주장이 먹혀들지 않는지를 상대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이때 존 롤스가 말하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은 큰 도움이 된다.

커다란 장막으로 내 생각을 모두 덮어버린다고 상상해 보라. 내 이성에 장막이 씌워진 순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떤 지위에 있고 어느 정도 재산이 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장막을 쓰고 나면 나에게는 내 이익을 더 많이 챙기고 싶은 본능만이 남는다.

남들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이 없어진다. 사람들과 얽혔던 기억이 사라졌기에 특별히 누구를 챙기고 싶은 생각도, 누구를 미워해서 해를 끼치고 싶다는 욕망도 품을 리 없다.

한 마디로 오직 이기적으로 내 욕망만 좇는 상태다. 존 롤스는 이런 상황을 '원초적 상태(Original Position)'라 부른다. 내 주장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는 이런 상태에서만 제대로 가려질 수 있다. 무슨 말일까?

최소 수혜자 입장에서 생각하라

앞서 피자를 자르는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내가 먼저 조각을 고르는 상황이라면, 나는 피자가 균등하지 못하게 잘리는 상황을 방치(?)할 것이다. 큰 몫을 차지할 나에게는 그 편이 더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어떨까? 과연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일까? 그럴 리가 없다. 내가 힘이 세고 높은 지위에 있다면 대놓고 말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속에서는 불만이 끓어오를 테다. 한마디로 '공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렇게 분배된 몫은 두고두고 뒤끝을 남긴다. 큰 몫을 차지한 나에게는 '치졸한 자', '자기 밖에 모르는 놈'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따라다닐 지도 모르겠다.

이럴수록 나는 억울하기만 하다. 나는 정해진 규칙에 따라 나의 몫을 '정당'하게 차지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내가 욕을 먹는단 말인가? 그래서 비난이 두려워 스스로 작은 조각을 선택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이때도 분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했다는 아쉬움,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에게 충분히 고마워하지 않는다는 섭섭함 등이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그렇다면 '공정'하게 몫을 나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물음에 대한 존 롤스의 답은 분명하다. "최소 수혜자(The Least Advantaged)의 입장에서 생각하라." 무지의 장막을 쓴 채 모두가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처지에서조차, 가장 적은 몫을 차지할 사람마저 고개를 끄덕일만하게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에야 비로소 '공정 배분'이 이루어졌다고 할 만하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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