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법감시위, 5일 1차 회의 진행…운영규정, 방안 논의
'노조 이메일 삭제' 이슈는 보도자료 제외
◆…공식 출범한 삼성그룹의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5일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사옥에서 첫 회의를 열고 운영규정을 제정하고 향후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삼성그룹의 윤리·준법경영을 감시하는 외부 기구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공식 출범해 지난 5일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에서 노동조합 가입 홍보 이메일을 삭제한 부분에 대해선 회의 뒤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언급하지 않았다.
위원회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삼성생명 사옥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주요 운영 방안 및 향후 일정 등에 대해 논의했다.
회의에는 대법관 출신인 김지형 위원장(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과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고계현 소비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김우진 서울대 교수, 대검 차장검사 출신인 봉욱 변호사,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 6명의 외부 위원이 참석했다. 삼성에선 이인용 CR 담당 사장이 내부 위원으로 참석했다.
이날 회의는 1~2시간 동안 진행될 것이란 예상을 깨고 6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사들의 준법감시 프로그램 현황에 대해 보고를 받는 부분이 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이메일 삭제' 이슈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선 회의 중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보도자료에는 담기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6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노조 측이 사내 계정을 이용해 사원들에게 보낸 '노조 가입 독려' 이메일을 모두 삭제한 것으로 알려져 '노조 활동 방해' 논란이 일었다.
삼성전자 측은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통신망을 업무 외적인 용도로 사용해선 안 된다는 사규가 있어 조치했다"고 밝혔지만 노조 측은 "정당한 노조 활동"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삼성 측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이상훈 이사회 의장과 강경훈 부사장이 '노조 와해'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법정 구속되자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삼성 측은 사과문을 통해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혀 '무노조 경영' 원칙을 버린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이메일 삭제 이슈에 대한 위원회의 입장은 이날 외부에 밝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9일 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준법감시 분야에 예외를 두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서울시 한 노무법인의 A노무사는 "사내 전산망을 이용한 노조의 이메일 홍보 활동을 금지하는 부분은 회사의 의지만 있으면 해결이 되는 부분"이라며 "윤리경영을 감시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준법감시위원회에서도 법률적 문제 등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위원장 진윤석)의 조합원들이 지난해 11월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노조 출범을 알리고 가입을 독려하는 선전전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을 제정하고 계열사들의 준법감시 프로그램 현황을 파악하는 등 논의가 이뤄졌다.
위원회는 계열사가 대외적으로 후원하는 돈과 계열사의 내부거래에 대해 사전 또는 사후에 통보받아 모니터링할 예정이다.
또 위원회는 합병과 기업공개를 포함해 계열사들과 특수관계인 사이에 이뤄진 거래와 조직변경 등에 대해 보고를 받고 자료제출 요구를 통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최고경영진의 준법의무 위반이 인지됐을 때에는 이사회에 직접 위험을 고지하고, 계열사 준법지원인이 이사회에 이를 보고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고경영진이 준법의무를 위반하면 위원회는 계열사의 준법지원인 등에게 해당 사안에 대한 조사 및 조사결과에 대한 보고와 시정조치를 요구할 수 있고, 조사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위원회가 해당 사안을 직접 조사할 수 있게 된다.
위원회의 권한에 대한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계열사들이 위원회의 요구나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그 사유를 위원회에 통지해야 하고, 위원회는 재권고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계열사가 재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시 그 사실을 홈페이지에 게시할 수 있다.
준법감시위는 삼성 계열사 외부에 독립적으로 설치된 기구로 지난해 10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을 맡은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가 준법체계를 감시할 제도 마련을 요구하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의 실효성을 '전문심리위원'을 통해 점검해 양형 판단에 고려할 뜻을 밝히자 일각에선 이 부회장의 '감경 명분'을 만드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위원회의 다음 회의는 이 부회장의 5차 공판 전날인 오는 13일 열릴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