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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정글의 강자들⑧ –무한경쟁시대:전문직의 성공DNA-

좌장(座長) 노릇(?), "No! 나는 호가호위한다"

  • 보도 : 2020.01.02 16:43
  • 수정 : 2020.01.0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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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楚)나라 선왕(宣王)이 말했다.

"내 듣자 하니, 북방 오랑캐들이 우리나라 재상 소해휼을 두려워하고 있다는데 그게 사실인가?"

그러자 대신(大臣) 강을이 말했다.

"북방 오랑캐들이 어찌 한 나라의 재상에 불과한 소해휼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여우가 호랑이에게 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여우가 호랑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의 명을 받고 파견되어 온 사신으로 백수의 제왕에 임명되었다. 그런데도 네가 나를 잡아먹는다면 이는 천제(天帝)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될 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너는 뒤를 따라오며 모든 짐승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을 확인하라.' 이 말을 들은 호랑이는 여우를 앞장세우고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러자 과연 여우가 눈에 띄기만 하면 모든 짐승들이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앞장선 여우 때문이 아니라 뒤에 오는 자신 때문인지를 호랑이 자신도 몰랐던 것입니다. 지금 초나라는 그 땅이 사방 오천리에 백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오랑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재상 소해휼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대왕의 나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찌 여우를 호랑이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 고전 <전국책>과 <사기>에 나오는 고사이다.

조직의 보스(Boss)들은 자신을 과신(過信)하거나, 자기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상은 최고위 보스보다는 중간보스들이 더 심하다. 최고위 보스는 이미 최상의 자리에 와 있기에 그런 충동을 덜 느낀다. 그러나 조직의 중간 보스들은 모든 것을 자기들이 다 챙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부하들에게 위임하면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힘든 시험을 어렵게 통과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과신 내지 자만심은 이들 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자만(自慢)이 자기 조직의 사활이 걸린 거래의 체결이나 사건에서 조직에 치명적 손해(fatal damage)를 입히는 경우가 있다.

실제 사례를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가자.

미국의 대형은행 A가 한국의 한 은행에 대한 M&A(인수합병)를 계획하고 있다. A 은행은 한국의 모든 법적 자문을 위하여 한국의 대형 로펌을 선정하고자 한다. 이에 A 은행의 대규모 임원단이 미국의 변호사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Law Firm Shopping(다수 로펌을 방문하여 어느 로펌을 선정할 지 탐색하는 것)을 하려 한다.

A 은행은 갑로펌과 을로펌을 방문대상자로 선정하였다.

그럼 두 로펌의 회의 준비 및 진행 장면을 보자.

<갑로펌>
갑로펌의 금융그룹장에게 A 은행의 방문일정이 통보되었다. 금융그룹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M&A는 대형 로펌이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일감이다. 금융그룹장은 즉시 대표에게 보고를 했다. 대표는 사건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고 그룹장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였다. 그룹장은 철저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는 은행 M&A 관련 법규, M&A의 핵심 이슈 및 전략 연구, 회의 일정, 참석자 명단, 발표 자료준비, 발표 리허설(rehearsal) 등에 혼신의 힘을 다 한다.

그룹장은 은행, 조세, 노동, 회사, M&A, 금융 인허가 등 각 분야의 법률전문가들을 대거 소집하여 이슈를 점검하여 정리하고, 다시 전원을 집합시켜 발표 자료를 하나하나 점검하였다.

그리고 관련 변호사들을 전원 고객회의에 불렀다. 은행규정이나 인수합병 관련 조세문제 등 실무에 밝은 전직 관료들(전직 주사, 사무관, 과장 등)도 팀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전 금융감독원장, 재경부 차관, 국세청장 등 고위직 출신들은 회의에서 예우하기도 쉽지 않고 실무나 영어능력도 부족하므로 제외시켰다.

이 사람 저 사람 끼어들면 회의가 지리멸렬해질까 염려해서, 자기가 직접 일사분란(一絲紛亂)하게 회의를 이끌어 나가기로 하였다. 비록 영어로 하는 국제회의지만, 자신이 영어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기에 더욱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국제회의이니 함께 일하는 미국인변호사를 앞에 내세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미국변호사는 한국의 법을 잘 모르니 실수를 할 가능성도 있어 옆에 배석만 시키기로 하였다.

마침내 미국손님들이 들이 닥쳤다. A 은행 부사장은 수하 임원들과 사내변호사 대표(General Counsel)을 포함한 사내변호사(in-house counsel)들, 재무담당부사장(CFO/Vice President ), 그리고 미국 로펌의 변호사 등 많은 인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그룹장은 자기도 대규모 팀을 데리고 입장해서, 일일이 인사를 한 다음, 자신이 전문가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난 후, 끝까지 발표를 하고 discussion을 이끌었다.

그룹장의 영어도 아주 훌륭했고 회의도 잘 이끌어 손님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그룹장도 자신이 이 큰 국제회의를 영어로 주재하였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웠다. 회의를 잘 해냈다는 소문이 갑대표의 귀에도 들어가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을로펌>
을로펌의 금융그룹에 똑같은 A 은행 email이 들어왔다. 그룹장은 즉각 대표에게 직보했다. 대표는 이 건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하면서 자기가 직접 준비단을 구성하고, 그룹장에게 철저한 준비를 지시하였다.

이어서 그룹장은 M&A관련법, 은행법, 조세법, 노동법, 인허가법, 회사법 등등 관련전문가들을 대거 불러 모았다. 전직 관료에는 실무직뿐만 아니라 전직 금융위원장, 재경부차관, 국세청장과 같은 고위관료에게도 참석을 부탁하였다.

그리고 각 분야별 이슈를 점검하고 큰 표에 정리하였다. 발표자로는 노련한 미국인변호사를 선정하였다. 그룹장 자신도 영어에 능통하지만 사양했다. 그리고 미국인변호사에게 밤새워 발표 자료를 숙지하게 하였다. 또한 참석자들을 미국식으로 재미있게 소개하고, 각 이슈를 미국 뉴욕 로펌 방식으로 설명을 하고, 이슈가 바뀔 때마다 참석 전문가의 개별 comments를 유도하도록 하였다.

그룹장 자신의 역할은 개회 인사와 회의 순서 설명으로 한정하였다.

또한 미국인 변호사에게 정부관련 이슈가 나오면 반드시 고위관리들의 comments를 유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방문단이 들이 닥쳤다. 그룹장은 간단한 첫 인사를 하고 바통을 미국인 변호사에게 넘겼다. 미국인변호사는 우선 핵심이슈와 전략을 발표하고 discussion을 이끌어갔다. 실무적인 이슈가 나오면, 참석자 중 전문가가 comments를 하게하고, 정부관계 이슈가 나오면 전직 고위관료에게 행정경험이나 느낌을 말하게 했다.

두 로펌 중, 어느 로펌이 선정되었을까?

여러분은 물론 이미 짐작했을 것이다. 을로펌이 승리했다. 

갑로펌의 그룹장은 자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소위 좌장 노릇을 했다. 그리고 자기의 영어로 했다. 문제는 자신이 제 아무리 영어에 능통하다 해도, 미국인 변호사와는 비교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전직 고위관료들의 중량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들의 생생한 현장경험 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했다.

반면 을로펌의 그룹장은 달랐다. 첫째 상대가 미국인들이기에 발표자로 미국인을 내세웠다. 둘째 외국인들에게 법인 내에 포진한 고위 관료들의 중량감을 보여 주고, 그들의 오랜 행정경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록 영어는 부족하더라도 고위관리들의 말 한 두 마디로 일반 전문가의 수 백 마디보다 더 인상깊은 조언을 제공했다. 셋째 자신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모든 참석자가 각각 역할 수행(role play)을 하게 하였다는 것 등이다.

즉, 자신은 좌장 역할은 하되 최소한으로 하고, 그 외의 모든 역할을 미국변호사와 전직 고위관료에게 넘김으로써, 을로펌의 위상을 훨씬 드높인 것이다.

일종의 호가호위(狐假虎威) 전략이 아니겠는가? 요즘은 조직의 팀플레이(team play)를 강조한다. 각자의 장점을 조화롭게 혼합하여 팀이 발휘할 수 있는 최강의 실력을 보여 주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하여 모든 팀원의 장점(위력)을 발휘하게 하는 마력이다.

갑로펌 그룹장의 자만심이 결국 갑로펌에 치명타(致命打)를 입힌 것이다.

또 하나의 예를 보자. 을로펌의 을대표는 변호사업계에서 널리 추앙 받는 변호사다. 능력이나 덕성 모두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는 어느 곳에 가든 가급적 좌장 노릇은 피하려 한다. 타고난 겸손 때문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그는 기업의 고위인사 등을 만날 때 전직 고관들을 자주 대동한다. 그리고 회의에서는 그 고관들에게 좌장석을 양보하고 대화도 그들이 주도하게 한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쉽지 않은 처신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를 업신여길까? 그렇지 않다. 전직 고관들을 거느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 대표이니까. 그는 자신의 장점도 많지만, 다른 팀원의 재능과 위상을 띄워줌으로써 팀 전체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다.

물론 자기 자신의 위상도 저절로 올라간다. 생각해 보면, 남들이 자기보다 뛰어난 분야가 얼마나 많겠는가?

신판(?) 호가호위이랄까?

법무법인 광장
이종열 고문

[약력] 서울대학교(경영학과) 졸, 세종대학교경영대학장·경영대학원장, 안건(현 안진)회계법인대표, 김&장법률사무소(부문)대표, 미국UC HASTINGS 법학대학원 방문교수,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조세분과 회장, 미국 및 호주회계법인 간부 등, 현 법무법인 광장 고문(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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