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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따라 역사 따라]

조선 망국과 재정권

  • 보도 : 2019.08.27 09:00
  • 수정 : 2019.08.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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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전투에서 자결한 이충순공 순국표지석 (사진촬영 문점식 회계사)

임오군란이 발생한 이후 청 상인들의 조선 진출이 활성화 되고 청의 간섭이 거세지자 고종과 개혁파 신하들은 일본에 기대게 되었다.

개화파 지도자 김옥균은 일본 정한론의 이론적 지도자이었던 후쿠자와 유키치를 만나면서 혁명의 꿈을 키웠다.

청이 베트남전쟁으로 프랑스와 싸우기 위해 조선 주둔 청군 1500명을 베트남으로 보낸 틈을 타서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낙성식 날에 김옥균과 개혁파 지도자들은 혁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3일 만에 청군 책임자 위안스카이가 1500명 군대를 이끌고 진압한 후 청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다. 위안스카이는 진수당의 후임이 되어 더 높은 직책인 주찰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駐紮朝鮮總理交涉通商事宜)라는 직책에 임명되어 이후 10년간 조선에서 고종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일본은 갑신정변의 사후처리를 하는 협상을 한 후 1885년 4월 18일 텐진조약을 맺어 조선에서 양국군대를 철수하고 이후에 조선에 군대를 파견할 때는 상대방 국가에 통보하기로 청국과 합의 했다.

갑신정변이 청에 의해 진압되고 정한론을 실현하려는 일본의 기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에서는 조선에서의 실패를 깊게 연구하고 청나라와 전쟁을 하자는 주장이 높아갔다. 이후 10년간 일본은 해군과 육군의 군사력을 확대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어 청을 압도할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1894년 조선에서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일본군 8천명이 조선에 파병되어 7월 23일에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을 개혁한다는 명목으로 대원군을 앞세워 내정개혁을 조선에 요구했다.

일본은 동학혁명을 계기로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청의 북양함대를 궤멸시키면서 승리했다.

1894년 10월 27일 공사로 조선에 부임한 이노우에 가오루는 청의 영향력이 없어진 공백상태에서 공사이자 고종의 자문관이지만 실질적인 통감이 되어 조선의 보호국화를 추진했다.

이후 조선 내각도 이노우에 가오루의 영향력 아래 임명되게 되었다. 이노우에 가오루는 고종에게 20개 개혁안을 시행하도록 요구했고 일본의 조선 지배를 위한 갑오경장의 속도를 높였다. 그 중에 일본인 고문관채용 건이 포함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 각 부서에는 47명의 일본인 고문관들을 배치해 모든 조선정부 부서를 일본인이 장악하도록 했다. 이로써 조선이 1895년에 일본의 실질적인 보호국이 되었다.

특히 재정을 담당하는 탁지부는 중요한 부서라 탁지부대신 어윤중 밑에 니오코레시게(仁尾惟茂) 일본 전 대장성 주세관을 고문관으로 임명했다. 이들 고문관들은 높은 봉급을 받았으므로 조선 정부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다.

1895년 4월 17일 시모노세키조약에서 청의 굴복과 2억냥의 배상금을 받고 랴오뚱반도, 타이완, 펑후열도를 할양받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막을 나라가 없게 됐다. 그러자 일본은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것을 청으로부터 확약 받고 본격적인 조선점령계획을 구체화했다.

1896년 10월 8일에 경복궁에 재차 난입하고 명성황후를 살해한 후 대원군을 앞세우고 내각을 장악했다. 고종은 일본의 위협과 통제 하에 거의 유폐된 상태에서 통치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되자 주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

그는 그 곳에서 국왕의 권리를 보존하였는데 이것이 1896년에 있었던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아관파천 직후 개혁파 김홍집이 처단되고 정권은 다시 수구세력으로 돌아갔다.

한편 일본은 청 베이징에서 1900년 5월에 의화단 사건이 발생하자 영국이 군대를 많이 보내지 못할 형편이었으므로 1만2천명의 대군을 보내서 3만2천명의 8개국 연합군의 주력부대가 되어 베이징을 점령하고 베이징조약을 체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전쟁을 통해 일본의 군사력 청의 군사력을 넘어서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의 실질적인 조선 보호국 시대가 청일전쟁 때부터 1905년까지 지속되었는데 1904년 2월에 발생한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하고 만주에서 러시아 육군에 승리해 러일전쟁을 마무리 졌다.

일본은 1904년 10월 14일에 조선에 하버드대학 로스쿨 출신의 메가타 다네타로를 탁지부 고문으로 보내 조선의 재정권을 장악하고 미국인 스티븐스를 외교고문으로 두어 조선의 재정권과 외교권을 실질적으로 빼앗고 각 부서는 일본인 고문관들이 장악해 조선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일본은 불편한 고문관제도를 끝내고 1905년 을사조약(원명: 한일협상조약)을 맺어 이토 히로부미가 초대 통감이 되어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하고 조선을 통치했다.

일본은 1907년 7월19일 고종을 퇴위시키고 7월31일 야밤에 조선군대 해산령을 내리자 대한제국 군대는 서소문전투에서 장렬하게 싸우다 전멸했다. 3년 후 일본은 1910년 8월 29일 자정을 넘긴 시간에 대신들을 협박감금한 후 서명을 받아 조선을 병합했다.

정조 이후 세도정치와 정권을 잡은 척족들의 부패와 세정의 문란으로 조선은 세금금징수권을 포함한 재정권을 넘기는 것을 넘어 끝내 국가가 무너지고 일본에 병합된 것이다.

인덕회계법인
문점식 부대표

[약력] 현)인덕회계법인 부대표, 공인회계사
전)아시아태평양회계사회 이사, 전)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 전)한국세무학회 부회장
[저서]“역사 속 세금이야기”
[이메일] jsmoon@baruna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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