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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따라 역사 따라]

부패로 청의 속국인 된 조선의 재정권

  • 보도 : 2019.08.13 09:00
  • 수정 : 2019.08.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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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시 일본공사관원 기념촬영. 1882년 촬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1910년 8월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치욕의 달이다. 1910년 22일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조선총리대신 이완용에 의해 조인된 '한국 병합에 관한 조약'이 8월 29일에 발표되고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해 정밀하게 제도화 되었고 유교라는 사상적 틀 속에 전제 왕의 절대적인 권위 속에 영구적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조선도 서구 문명을 일찍 받아드리고 메이지 유신으로 강국이 되어 서양 제국주의 길을 따라 갔던 일본의 침략에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조선의 재정권이 어떻게 박탈되었고 국가가 멸망했을까? 그 멸망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8월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고종이 20세가 되어 직접통치를 하게 되자 고종은 아버지 대원군의 영향력을 벗어나고자 명성황후의 친족들을 대거 핵심관료로 중용 하면서 대원군의 개혁은 물거품이 되었고 다시 정부 및 관료들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특히 선혜청 당상 민겸호와 실세 민영준 등 민씨 척족의 부패가 심했다. 부패한 정부 관료들은 전정, 군정, 환곡제도를 자신의 부를 키우는데 사용했다.

1882년 7월 19일 구식군대 군사들이 13개월이나 밀린 봉급으로 받은 곡식에 모래와 겨가 많이 섞여있자 신식군대 별기군 때문에 정리대상이 될 염려가 있던 구식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신식군대 훈련담당 일본인 교관을 죽이고 일본공사관을 파괴한 후 민씨 친족과 주요 요인들을 살해 했다. 이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해 고종은 대원군에게 정권을 넘겼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의 체결로 일본의 위협이 거세지는 과정에서 청나라 이홍장의 권고에 따라 조선은 1882년 미국과 수호조약을 체결했다. 미국 및 서구 열강을 끌어드려 일본을 견제하려는 때였다.

임오군란이 발생하자 일본은 1500명의 군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조미수호조약 체결을 위해 청나라에 가 있던 조선의 김윤식은 이홍장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홍장은 북 양함대 제독 정여창(丁汝昌, 딩루창)과 프랑스 유학생 출신으로 이홍장의 심복으로 일하고 있던 마건충(馬建忠, 마젠종)을 조선에 보내 사태를 파악했다. 이후 청 군대 3000여명을 조선에 보내 대원군을 임오군란 주동자로 보아 납치한 뒤 청국 보정부로 데려갔다.
 
임오군란이 진압되면서 조선은 일본과 제물포조약을 1882년 8월 30일에 체결한 후 일본 유족에게 5만엔, 일본정부에 55만엔을 배상하기로 했다. 이 금액은 조선 1년 예산의 1/3을 넘는 금액이었다. 일본은 임오군란을 계기로 일본공사관 보호를 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주둔할 수 있게 되었고, 조선을 정복하려는 정한론(征韓論)의 첫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다.

청은 조선에 주둔중인 청나라군 3000명을 배경으로 1882년 11월 27일에 조선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을 맺고 청이 속국을 우대하는 것이라고 조약의 성격을 규정했다.

이에 조선이 청의 속국임을 명확하게 하고 조선에 청의 관리를 상무위원으로 파견하며 조선도 청에 관리를 파견하기로 했다. 이후 상무위원 진수당(陳樹棠,천수탕)이 파견됐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총영사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임오군란 직후 이홍장의 명령으로 김윤식, 위안스카이와 함께 조선에 왔다.

그는 한성에 상무위원공서(商務委員公署)를 설치하고 인천, 부산, 원산에 상무분서를 설립, 청국 상인들의 조선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와 청 상인들의 진출이 매우 활발하게 되었다.

진수당은 청과 조선의 통상문제 뿐만 아니라 조선의 속방화 정책 실무를 맡았으며 조선과 일본, 기타 서양 열강들과의 교섭에도 영향력을 행사해 청의 조선 간섭이 심해졌다.

이렇게 청의 압력이 거세지자 아직은 경륜이 부족한 고종(당시 30살)은 일본의 영향력에 기대면 조선의 입장이 펴질 것으로 생각해 개화파 인사들을 수신사로 일본에 보냈다.

하지만 청은 재정측면을 진수당, 외교고문으로는 주청 독일영사 경험이 있던 묄렌도르프를 조선에 보내 세수와 항구 관리를 담당하게 하는 등 주요 외교정책에 간섭하도록 했다. 또 그에게 서양 각국이 청에 침략했을 때 영국이 썼던 방법을 모방해 해관(海關)설치임무가 주어졌다.

이로서 청이 조선에 파견한 진수당과 묄렌도르프의 영향력 아래 조선이 놓이게 되었다. 묄렌도르프는 이홍장의 지시를 받아 독일,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와 통상우호조약을 체결해 서구 열강을 끌어들여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는 한편, 청의 속국으로서 조선을 유지하려는 정책을 폈다.

조선은 정조 이후 세도정치와 척족들의 부패가 대원군의 개혁정치로 일시 회복되었다가 고종이 명성황후 계 친족들을 대거 끌어드려 또 다시 부패정치를 폈다. 그 결과 발생된 임오군란으로 청의 속국이 됐고, 재정권을 포함한 통치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문점식 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회계법인 바른
문점식 회계법인 바른 부대표

[약력] 현)인덕회계법인 부대표, 공인회계사
전)아시아태평양회계사회 이사, 전)한국조세연구포럼 학회장, 전)한국세무학회 부회장
[저서]“역사 속 세금이야기”
[이메일] jsmoon@barunac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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