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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행복상속]

분재기(分財記)에 담긴 지혜-상속자의 의무부터 생각하라㊦

  • 보도 : 2019.07.03 08:20
  • 수정 : 2019.07.03 08:20

"의무가 같다면 권리도 같다"

따지고 보면 효(孝)를 앞세우는 점만 다를 뿐, 조선의 상속 문화도 상속자의 책임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유럽과 별다르지 않은 듯싶다.

조선 초기에는 평분(平分), 즉 모든 자손들이 공평하게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당연했다. 자손들은 치러야 할 의무도 똑같이 나누어 받았다. 아들 딸 가리지 않고 제사도 돌아가며 맡았다. 이른바 윤회봉사(輪迴奉祀)다.

짊어져야 할 의무와 책무가 같다면 권리도 같이 누려야 공평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맏이가 상속받는 몫이 점점 커져갔다. 왜 그럴까?

1669년(현종 10년) 부안 김씨 가문의 문서에는 딸들에게 재산을 적게 나눠주는 이유를 이렇게 적었다.

"(사위나 외손자에게 제사를 맡긴 다른 집안의) 사례를 살펴보았더니, 서로 미루면서 제사를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제사를 모셨다 해도 제수(祭需)에 정성이 부족하여 아니 지냄만 못하다.......심정적으로는 아들딸의 차이가 왜 있겠는가. 그러나 시집 간 딸은 생전에 부모를 봉양하는 법이 없고, 부모 돌아가신 후로는 제사를 모시는 사례가 없으니 어찌 재산을 아들딸에게 공평하게 나눠줄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딸들은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 부모 제사라는 '의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제사는 오롯이 사내들이 맡아야 한다. 제사를 모신다는 '의무'와 함께 그만큼의 권리도 남자 형제들에게 넘어왔다. 더 많은 몫의 유산을 받게 되었다는 의미다.

시간이 갈수록 제사를 모셔야 하는 의무는 맏이에게 집중되었고 상속받는 몫도 크게 늘어났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상속을 많이 받았다 해서 장자의 마음이 흡족하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종갓집의 분위기를 떠올려 보라. 종갓집 맏며느리는 예나 지금이나 손꼽히는 '3D 업종(?)'이다.

죽은 조상을 잘 모시기 위해서는 살아있는 조상, 부모부터 극진히 보살펴야 한다. 제사와 함께 부모 봉양의 의무 또한 함께 짊어지는 셈이다.

게다가 4대 봉사(奉祠)에 따라 부모, 조부모, 나아가 증조부모와 고조부모까지 제사를 모셔야 하는 처지에서 때마다 끊임없이 일가친척을 만나야 한다. 이 가운데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인척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Great power always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는 영화 <스파이더맨>의 대사는 많은 몫을 상속받은 맏이의 처지에 잘 들어맞는 말이다.

이를 잘해내지 못할 때는 상속권을 빼앗기던 옛 유럽의 농부들만큼이나 힘겨운 비난과 질타에 시달릴 터다.

"상속이 '횡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예나 지금이나 유산이 집안의 화목을 낳는 경우는 흔치 않다. 친척과 자식들 간의 분란과 반목을 낳는 수준을 넘어, 상속받은 재산을 허세와 탐욕으로 하릴없이 날려 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반면,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이 무거운 의무도 같이 내려 받는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에도 불공평하다며 눈을 부릅뜨는 친척과 형제들이 많을까? 상속자의 의무는 권리만큼 무거워야 문제가 없다. 

평등을 강조하는 시대분위기에 발맞추어 우리 사회도 자녀균분상속제도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이에 걸맞게 후손들이 조상과 부모에 대한 의무를 '공평하게' 다하고 있을까?

오히려 제사를 모시는 가정은 점점 사라지고 외롭게 노후를 보내는 부모들만 점점 늘어나는 듯싶다.   

조상과 부모에 대한 의무가 담겨 있지 않은 유산은 상속자에게 '횡재'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 경우에는 당연히 상속을 둘러싼 분란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의무가 없는 권리는 탐욕만 일깨우기 때문이다.

제사 문화는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러나 효(孝)의 가치가 무너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녀균분상속시대, 상속에 어떤 사명과 의무를 담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철학박사
안광복 박사

[약력]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크라테스 대화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철학, 역사를 만나다』,『처음 읽는 서양 철학사』,『우리가 매혹된 사상들』,『열일곱 살의 인생론』,『철학자의 설득법』,『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등 10여 권의 철학 교양서를 펴내며 30만 명이 넘는 독자를 철학의 세계로 안내한 대표적 인문 저자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다양한 대중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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