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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일의 시간여행]

화투와 고스톱… 대통령 이름과 고스톱

  • 보도 : 2019.06.14 08:20
  • 수정 : 2019.06.14 08:20

그림

◆…사진=클립아트코리아

화투는 대략 120여 년 전 이 땅에 들어온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일본의 닌텐도 회사가 화투(하나후다)패를 생산하여 일본 전역에 보급시켰으며, 쓰시마 무역상들을 통해 국내에도 흘러 들어왔다는 게 통설입니다. 화투 각 장의 그림에서 일본문화를 엿 볼 수 있는데, 간략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1월의 넉 장에 솔과 학이 보이는데, 일본에서 솔은 복의 의미를, 학은 무병장수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1월의 화투에는 한 해의 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2월 꽃은 매화이고, 앉은 새는 꾀꼬리로 초봄을 상징하는 새입니다. 봄맞이 기쁨을 그려냈습니다. 3월 벚꽃 즉 사쿠라는 일본인에게 축하, 당선, 합격, 계약, 진급 등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꽃이라 귀히 여깁니다.
 
4월 화투를 '흑싸리'라고 부르지만 등나무입니다. 등나무처럼 가문이 뻗어 나감을 기원하며 동시에 비둘기의 화목함을 닮고자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화투의 5월에 난초를 그려 놓지만 실제 일본 화투에는 창포가 그려져 있습니다. 5월 단오에 우리도 창포로 머리감듯이 창포는 일본에서도 5월의 꽃이라 부릅니다. 6월은 모란, 일본발음으로 '보탄'이라 하며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7월, 곱게 물든 홍싸리와 멧돼지가 보입니다. 홍싸리는 일본 전역에 자생하는 싸리로 수확의 풍요로움을 나타내고, 멧돼지는 새끼를 많이 낳는 다산의 상징을 뜻합니다. 8월은 원래 일본 화투에는 보름달과 갈대가 그려져 있어서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그림이었는데 많이 바뀐 모습입니다. 9월 그림 속에는 국화와 목숨'수'가 적힌 술잔이 보입니다. 국화 밑의 푸른색은 국화의 이슬을 모은 국수(菊水)로 이를 마시면 장수 한다는 뜻풀이가 됩니다. 이 달이 오면 국화주를 서로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10월, '단풍잎이 비에 떨어지는 산속의 저녁, 가을비에 짝을 잃는 수사슴이 홀로 있구나.' 일본의 유명한 와카에서 나온 시구를 현상화한 그림입니다. 막상 사슴을 다시 보니 애처로운 생각이 드는군요. 11월 그림속의 봉황은 왕권을 상징하는 상상속의 동물이며 검은색 이파리는 벽오동으로 고귀함, 품위, 절도의 표상으로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12월 우산 쓴 사람은 일본의 유명한 서예가 '오노도후'인데 비 맞은 버드나무에 개구리가 수십 번 튀어 올라 결국은 성공하는 것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화투 그림을 통해 일본 문화를 엿보았습니다만, 일본에서 건너온 화투는 놀이와 도박의 두 기능을 가지고 있어, 그 편의성으로 인해 종래의 윷놀이나 투전을 밀쳐내고 우리 사회 깊숙이 파고 들었습니다.

넉 장을 한 달로 하여 열두 달을 나타내는 화투는 놀이 방식도 다양합니다. 보통 민화투라 불리는 화투놀이가 가장 대중적이며, 이것은 난초·풍약·비약 그리고 홍단·청단·초단으로 약을 정해, 점수가 많은 사람이 이기는 놀이입니다. 민화투보다 조금 복잡한 '육백'이란 놀이도 먼저 600점을 내는 게임으로 역시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외에도 '뽕(나이롱 뽕)'과 심심풀이 재미로 하는 '재수보기', '운수 띠기'도 적적함과 무료함을 달래는 데 그만이었습니다. 이처럼 화투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좋은 도구지만, 반면에 도박의 수단이 되어 늘 사회문제가 되곤 했습니다.

가을걷이를 하고 다소 한가한 겨울날 남자들은 은밀히 삼삼오오 모여 내기 도박을 즐겼는데, 화투가 보급되기 전만해도 투전이나 수투 그리고 드물게 마작이 이용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화투가 들어오면서 종래의 것들은 차츰 자취를 감추고, 화투가 도박의 전형으로 토착화 되었습니다. 1960년대 말까지 화투는 '섰다', '도리짓구땡', '삼봉' 등의 도박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몇 년 전 크게 히트 쳤던 영화 '타자'를 보신 분이라면 '섰다'가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게 만드는 가를 공감하셨을 것입니다.

한편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서양카드(일명 포커) 놀이가 국내에 급속히 전파 되는데, 서양카드는 돈을 걸고 시작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놀이의 건전성은 현격히 떨어지고 도박의 사행성으로만 남아 '섰다'와 더불어 민간도박의 양대 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포커는 화투와 달리 도시의 일부 젊은 층이 선호했고, 판돈이 상대적으로 커서 즐기는 수도 제한적이었습니다.

1970년대에 들어서 화투놀이는 일대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이른바 '고스톱'이란 신종 화투 놀이가 등장하여, 기존의 방식은 물론 도박의 으뜸이었던 '섰다'까지 평정합니다. 특히 경제개발에 몰두하던 이 시기에 희생의 산물로 나타난 소외계층이나 도시 빈민층, 심지어 대학생까지 가세하여 '고스톱'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습니다.

고스톱은 본래 일본 화투놀이의 하나였던 '고이코이'에서 응용된 놀이인데, 왜 하필 이 당시에 번졌는지 또한 용어도 고이코이가 아닌 고스톱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그 파급력은 충격적이라 80년대에는 우리 사회를 '고스톱 공화국'으로 불리는 불명예도 얻게 됩니다. 어찌되었건 정치 격변기에 휩쓸린 80년대에, 정치 상황이나 사회적 이슈 등을 반영하여 풍자한 갖가지 고스톱이 나타납니다. 대표적인 예로 '전두환 고스톱', '최규하 고스톱', '이민우 고스톱', '영삼이 고스톱', '삼풍 고스톱(삼풍백화점 붕괴이후)', 'DJ 고스톱'이 그것입니다. 삼풍 고스톱을 제외한 나머지 것에 국가원수의 이름을 붙여, 고스톱을 통해 당시 정치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려 한 것이지요.

요즘도 한국은 고스톱이란 화투놀이를 여전히 즐기고 있습니다만, 정작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망 후 종적이 희미해졌습니다. 그리고 한 때 '고스톱 망국병'이라는 오명도 들었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대중오락의 으뜸으로 한국인 특유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우리의 고스톱이 한류와 함께 외국으로 전파되고 있다는데 기분 참 묘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풍처럼 번졌던 고스톱도 이제 몇 십 년 가지 못할 것입니다. 인터넷 게임에 길들여진 젊은 층에게 화투는 더 이상 흥미로운 놀이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당분간 중장년층이나 혹은 노인 분들의 '10원짜리 고스톱'에서 소일거리로 동고동락 하다가 어느 즈음에 자취를 감춰버릴 것입니다. 놀이문화는 늘 젊음에서부터 변해 왔기 때문입니다. 홍남일 한·외국인 친선문화협회 홍보이사

홍남일 한·외국인 친선문화협회 홍보이사

[약력] 한국외국어대 졸업, MBC애드컴 카피라이터, 한국전통문화진흥원 자문교수, 수필가, 문화칼럼니스트 [저서] 이야기가 있는 인천 관광 가이드, 시간이 담아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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