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이희호 여사 빈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장례에 조문단 대신 조전과 조화만 전달하기로 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일부는 12일 "북측은 오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고 전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통지문에서 "6월 12일 17시 판문점 통일각에서 귀측의 책임 있는 인사와 만날 것을 제의한다"며 "우리측에서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인 김여정 동지가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에서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호 통일부 차관, 장례위원회를 대표하여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민주평화당 의원) 등이 나가기로 했다.
북한이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전례 대로 조문단을 파견하리란 관측이 있었지만 빗나갔다.
북한은 2001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별세 당시 조문단을 처음 파견하면서 이후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남측 인사들의 장례에 조문단을 파견해왔다.
그간 이희호 여사의 대북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을 고려하면 북한의 조처는 아쉬움이 남는게 사실이다.
이 여사는 남북 첫 정상회담이었던 2000년 6·15 정상회담 영부인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왔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으로서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더욱이 이 여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지난 2011년 12월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 위로했고, 지난 2014년 12월에 김정일 위원장 3주기에는 북한의 요청을 수락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과 함께 개성공단을 찾기도 했다. 이 여사는 우리 측에선 김정은 위원장을 처음 대면한 인사인 셈이다.
이같은 북한의 결정에는 지난 2월 하노이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우리 정부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간 문재인 대통령의 북-미 중재 노력을 '오지랖이 넓다'며 힐난하는가하면 한미연합 훈련을 비난하기도 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현재 소강국면인 남북관계 기조를 유지하면서 도의적 차원을 고려해 친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을 파견해 조의문과 조전을 전달하는 등의 형식을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조문단을 파견할 경우 당국 간 접촉이 불가피해 남북 현안에 대한 논의를 피하려는 의도도 읽힌다. 실제 지난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방한했던 북한 대표단은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하며 남북관계 현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009년 북한은 조문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 조문 사절단으로 명칭을 바꿨다"며 "조문하는 기회에 남북관계를 논의하겠다는 의지였다"고 설명했다.
북한으로선 문재인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 중인 상황에서 주요 인사를 만날 수 없어 별다른 실익이 없다고 봤을 수 있으며, 조문단 파견이 화해의 메시지로 잘못 읽히는 것을 경계한 것으로 관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