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현충일 추념사에 40만 명 기리면서 '약산 김원봉' 언급
새민련 대표시절 "마음 속으론 최고 독립유공자 훈장드리고 싶다"
文정부, '臨政 100주년=건국 100년'…'김원봉 발언'과 무관치 않아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서울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의 공적을 기리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더 팩트)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을 직접 언급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여론의 논란이 진행되는 가운데, 대한민국 적통을 상해임시정부에 두고 본격적으로 역사 재해석 작업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은 6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 64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일제시대 무장독립운동 후 해방 정국에서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김원봉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언급했다.
◆ 대중매체 단골 된 '김원봉'…文대통령도 4년 전 '극찬'
김원봉은 1919년 일제에 맞서 의열단을 조직해 무장 독립운동을 했다. 1938년 조선의용대장,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 1944년에는 임시정부 군무부장과 국무위원을 지냈다.
김원봉은 자신이 따르던 1947년 여운형이 암살당하자 조선공산당 창당 주역 박헌영 등과 함께 월북했다. 북한 정권 수립에 투신, 국가검열상(相. 장관급)에 임명됐고,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등 고위직을 지냈다.
김원봉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대중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대중에 노출됐다.
영화 '암살'은 물론 '밀정'에서도 일제 강점기 무장 독립운동단체를 이끈 인물로 조명됐다. KBS는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그의 공적을 다뤘고, 최근에는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MBC 드라마 '이몽'이 방송 중이다.
MBC 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도 설민석 역사강사가 출연해 김원봉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에서 설명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8월15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영화 '암살'을 관람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제는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되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잔 바치고 싶다"고 적기도 했다.
◆…김원봉의 외조카 김태영 씨가 국내에 머물던 지난 3월 6일 밀양시 해천항일운동테마거리에 설치된 '조선의용대'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씨 오른쪽에 색으로 부각된 인물이 김원봉이다. (사진=더 팩트)
◆ 현충일에 김원봉 독립운동 공적 기린 文대통령
현충일은 대한민국이 1953년 휴전 협정 3년 뒤인 1956년 4월 이승만 초대 정부에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으로 지정됐다. 물론 현충일은 6·25 전쟁 순국 장병만을 기리는 날은 아니고 나라를 위해 희생된 모든 국군과 일반인까지 그 대상으로 한다.
다만 제정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6·25 전쟁으로 순국한 40만 명 이상의 국군 장병들과 일반인 희생자의 혼을 기리는 것이 주된 목적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특수성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이 훗날 북한 정치인이 된 김원봉의 독립운동 활동을 언급한 것은 과거 정부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 중에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며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스스로를 보수 혹은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상식 선의 애국' 차원에서 보면 광복 후 북한의 기습침략에서 가까스로 나라를 지켜낸 국군 장병과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기리는 날에 북한 정체(政體)를 만든 북한 정치인을 추도하는 진의에 대해 궁금증이 들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현충일에 굳이 김원봉을 자세히 소개한 것이 향후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서훈을 염두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지난 3월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에 대해 "지금 현재 기준으로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의견 수렴 중이며 가능성은 있다"고 밝혀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청와대는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대통령의 언급과 서훈 추서와의 상관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해 "별개의 문제"라며 "보훈처가 할 부분"이라고 했다.
◆ 임정 단일 법통론과 무관치 않아
문 대통령은 이전에도 기성 사학계의 통념을 뒤엎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지난 2월 육사 졸업식에서 "육군사관학교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라고 했으며,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엔 "건국 100년"이라는 발언을 했다.
정부는 올해 들어 상해임시정부 100주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임정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됐지만 '건국 백년'이라고 선언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 많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수립됐고, 1948년에 재건됐다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논리였고, 현재 한국 정치·법·사학계의 통설이기도 하다.
즉, 임정이 선언적인 의미가 있을지언정 실질적인 국가 정부 형태는 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되면서 만들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임정 띄우기는 결국 해방전후사 재해석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이같은 사관은 수십년간 진보 진영에서 있어왔기에 새로운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진보 사관의 바이블이 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감명깊게 읽었고, 정치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한 적도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지난 4월 11일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임정에 몸담았던 독립운동가들은 광복 후 노선분열을 거쳐 이승만 초대 임시 대통령 계열이 대한민국 건국의 길로 나갔고, 김구 주석 계열은 분단을 막고자 민족주의로 분파했다. 박헌영, 여운영 등 적지 않은 세력이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북한 정권에 투신했다.
결국 임정을 유일한 대한민국 법통으로 보면 북한을 만든 사회주의자들이 '적'이 아닌, 단지 생각이 조금 달랐던 인물들이 되는 셈이다. 문 대통령의 현충일 발언은 이같은 인식 틀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보수와 진보(보혁)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지만 유독 사회주의자에 대해서 관대함을 보이고 있는 점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진보계열에서 끊임없이 지적하는 '이승만-친미주의자·박정희-친일파'라는 프레임을 완화하거나 수정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임정을 띄우면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작업도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의 김원봉 발언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귀를 의심케 한다"며 개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념공격은 진중치 못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의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무정부 무장투쟁 활동을 한 분들에 대해서도 평가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현충일은 6·25전쟁 이후 각종 북한 도발로 순직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날인데, 꼭 김원봉을 언급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