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국세행정 방향을 설정할 때는 납세자 중심 행정체계를 설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고, 국세청 또한 늘상 그렇게 해왔다. 업무 부담이 극심하더라도 '서비스 기관'을 표방한 굴레로 인해 직원들의 희생이 불가피했다.
북대구세무서의 혁신적 실험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직원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면서도 고품질의 납세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종료된 2018년 제2기 부가가치세 확정 신고 납부의 최고 히트작인 '셀프납부'는 직원들의 업무량이 대폭 경감시키는 한편 내방 납세자들의 대기시간도 크게 줄였다.
납세자가 신용카드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 또한 물건 구매 후 신용카드 결제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 그동안 직원들이 신용카드 납부 기계 앞에 서서 납세자의 고지서와 신용카드를 건네받아 대신 결제를 해 오는 '관습'이 자리잡고 있었다.
신용카드 납부는 고지서의 QR코드를 POS 스캐너에 갖다대기만 한 뒤, 안내대로 '다음' 버튼만 클릭하면 결제가 되지만 기존에는 이를 6단계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하는 현수막을 게재해 납세자들이 지레 겁을 먹고 직원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혼잡한 시간대인 1월25일 오후 4시51분에도 셀프 카드납부를 하는 곳은 한산하다. (사진제공 북대구세무서)
낚시법 알려주니 "납세자가 더 좋아해요"
북대구세무서 징세팀 직원들은 납세자들의 인식부터 좀 바꿔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셀프주유보다 쉬운 셀프납부'라는 모토 아래 신용카드 납부 POS 위에 적힌 복잡한 설명은 '셀프 카드납부'라고 크게 써 붙이고 '납부서 그림 부분을 센서에 인식 후 안내에 따라 터치하면 일사천리'라는 안내문구 하나만 넣어놨다.
납세자들의 원활한 이용을 위해 3대에 불과했던 신용카드 납부 POS를 10대로 대폭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기계를 제공하는 금융결제원이 "대량으로 가져간 전례가 없다"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지만, 대구지방국세청이 적극 나서 10대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기존 POS 1대당 1명씩 배치하던 직원도 과감하게 없애고 셀프수납창구를 총괄하는 직원 1명만 배치해 문제가 생긴 납세자를 도와주는 형식으로 운영했다.
새로운 것도 아닌, 기존의 것을 조금만 바꾸었는데도 효과는 대단했다.
많은 대기인원으로 붐비게 되는 부가세 신고·납부 마지막날인 지난달 25일 오후 시간대 세금을 납부하기 위해 대기하는 인원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한산한 모습으로 지난해 1월25일 비슷한 시간대 대기인원만 100명이 넘어갔던 것과 비교해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납세자들이 스스로 카드납부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였다.
옆에서 신용카드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납세자를 본 다른 납세자가 그것을 보고 따라하는 선순환 효과가 나오면서 오히려 총괄 직원이 굳이 대기하고 있을 이유마저 사라진 것. 실제 직원이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해도 "혼자 하겠다"며 거절하는 납세자가 많았다는 후문이다.
실제 셀프 카드납부 건수는 지난해 1월25일 543건에 불과했지만 올해 1월25일 1029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북대구세무서가 가장 혼잡한 때인 지난달 24~25일 셀프카드납부 이용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200명 중 97%가 대기시간이 줄었다고 응답했으며 다음에도 셀프납부를 이용하겠냐는 질문에는 92%가 그렇다고 답했다.
셀프 카드납부와 셀프주유 중 어느 것이 더 쉬웠냐는 질문에는 88%가 셀프 카드납부가 더 쉬웠다고 응답했다.
◆…'셀프납부' 신화를 만들어낸 징세팀. '셀프납부' 도입으로 납세자의 대기시간이 대폭 축소되고 직원들의 동원률도 떨어지면서 직원들이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왼쪽부터) 서장은 조사관 윤혁진 운영지원과장, 오형주 조사관, 최지안 징세팀장, 진민혜 조사관, 노은미 조사관, 김현희 조사관 (사진제공 북대구세무서)
직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카드납부를 도와주는 직원들의 경우 신고·납부기간에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다 신용카드 한도 초과 납세자라도 나오면 결제시간이 길어져 직원은 물론 대기하는 납세자들도 힘들 수밖에 없었지만 셀프납부가 성공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싹 해소됐다.
원정재 개인납세1과장은 "예전에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 직원이 '신용카드 주세요, 비밀번호 눌러주세요' 하는 등 다 해줬는데 이제는 바코드만 갖다대면 쉽게 하니 납세자들이 더 좋아한다"며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고 납세자의 수준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북대구 세무서에 마련된 신고지원센터도 직원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매년 1월, 국세청 직원 인사이동에 부가세 신고·납부, 부가세 면세사업자 사업장 현황신고, 연말정산 문의 민원 등으로 개인납세과는 비상이 걸리지만 북대구세무서가 지난해 8월 오픈한 신고지원센터에서 민원업무 부담을 같이 나눠지면서 부가세 신고·납부 업무 부담도 대폭 감소했다.
신고지원센터는 개인사업자의 부가세와 소득세 신고, 근로·자녀장려금 신청, 양도소득세 신고와 관련한 업무를 한 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민원실로 민원인이 일일이 해당과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어 점심시간에도 개인납세과 직원들은 사무실 불을 끄고 휴식을 취하는 등 휴게시간을 보장받는다.
고영일 북대구세무서장은 "신고기간 내내 악성민원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개인납세과와 징세팀, 업무지원팀이 머리를 맞대고 협업한 결과, 성공적으로 부가세 신고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며 "1분만 하면 카드납부를 할 수 있던 일인데 그동안 관행을 이유로 납세자들을 오래 기다리게 만들고 직원들에게 그 불만을 다 듣게 만들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