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

<화제의 신간> 김경호 제2시집 '길을 놓다'…인간을 향한 따스한 시선 '눈길'

  • 보도 : 2018.12.15 07:43
  • 수정 : 2018.12.15 07:49

<사진: 두엄>

◆…<사진: 도서출판 두엄>

심성의 결이 순도 높고 시어의 결이 밀도 높다. 아침에 꺾은 들꽃의 향기가 저녁까지 이어진다. 언어의 시니피엥과 읽는 이의 가슴에 새겨지는 시니피에가 일치한다. 햇빛을 받아도 반짝이지 않는 겸허함과 수더분함을 간직한 시인. 서술의 지향과 비유의 방식이 한층 성숙해져 읽는 이의 가슴에 뚜렷한 낙관으로 남는다. 전작에서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던 '살아갈수록 상처에 손이 간다'('몸')던 묘사가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대구 사는 김경호 시인이 제2시집 '길을 놓다'(도서출판 두엄)를 펴냈다. 이번에 발표된 시편들은 전작보다 한결 단단해져 '먼 길 가다 만난 한 구절 풀어놓아야 핏빛 노래가 되는 것', '산다는 것은 때로는 지나간 낙타의 발자국을 허리 굽혀 혼자 찾아야 하는 일'이라는 인식에 이르렀다. 고저와 장단, 강약이 갈마드는 사유의 바다는 더욱 연장되고 확장됐다. '구부러진 벚나무 우듬지에서 그리움으로 저무는 길 떠나는' 시인의 발걸음따라 행간 속으로 깊이 들어가봤다.

지상에 없던 말
캄캄한 감옥 같은 말
먹구름 위에서 천둥치는 말
빙하 속에서 백만 년을 견딘 말
땅속을 흐르는 붉은 광맥 같은 말
쓰러진 홍련 꽃대에 걸린 말
함께 별똥별 바라보며 하고 싶은 말
고향집 마당 새벽에 내린 감꽃 같은 말
먼 새벽 나서는 시린 손 맞잡으며 하는 말
어둔 골목 걷다가 뒤돌아보며 해주고 싶은 말
그름밤 반딧불이 같은 말
우체통 옆에 서 있으면 생각나는 말
수도암 앞마당 먼 산 실루엣 보며 되뇌는 말
그대 섰다 간 빈 자리 해국 지기 전에 하고 싶던 말
어미 배에 등 기댄 아기 혹등고래가 부르는 노래 같은 말
세상에서 가장 힘든 말
세상에서 가장 아픈 말
세상에서 가장 긴 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그리운
그 말('그 말' 전문)
    
당진, 벌천포, 월천리, 사문진, 고모진, 정라진, 겨울 월포를 찾은 그에게 숙명처럼 따라다니는 외로움이 씨줄로, 인간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날줄로 엮여 있다. '어눌하고 말이 많았다'는 자서에는 태생적으로 겸손한 삶의 태도가 묻어 있고 '풀쐐기처럼 아린 시 한 구절 찾아 다시 만 리를 헤맨다'는 대목에서는 시업에 대한 무한한 열정이 느껴진다.

겨울 새벽하늘 끝까지
물결무늬로 저어가는
저 철새들의 궤적
뼛속까지 비워 낸
타는 심장 앞에 놓인
울렁이는 그대는
닿아서 혼절하고 싶은
거대한
한 잎의 바다('또 다른 사랑' 전문)

닿아서 혼절하고 싶다는 말.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 설사 세상 모든 것을 다 잃는다해도 그 어떤 것도 그리움을 방해할 수 없다는 절대적 명제가 아니던가. 혼탁한 세상살이에 찌든 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레토릭이 애절하고도 슬프다.

그러한 시인이여. 그대는 노자의 위대한 성찰 '生而不有'처럼, 장성한 자식을 집에서 내보내듯 시집의 '출가'를 허락해야 하리라. 조만간 '신간'의 유효기간이 다하기 전에 소유하지 말고 잊어버려야 하리라. 그때 막걸리 잔 앞에 놓고 피붙이 산고를 정화(靜化)하는 엄숙한 의식을 치뤄야 하리.

주요기사

  • 출생 :
  • 소속 :
  • 학력 :
  • DID :

상세프로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