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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전쟁 품은 포르투갈 수도원

  • 보도 : 2018.05.14 09:21
  • 수정 : 2018.05.14 09:21
우지경의 포르투갈 대발견 (5) 수도원 도시, 알쿠바사와 바탈랴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이 잠든 곳,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
포르투갈 구한 승리의 상징물, 산타 마리아 드 비토리아 수도원

여성스러운 우아한 매력을 지닌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

모든 수도원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알쿠바사의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에는 포르투갈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리는 동 페르두 왕과 이네스 왕비의 애절한 사랑 얘기가 서려 있다. 바탈랴의 '산타 마리아 드 비토리아 수도원'은 전쟁과 승리에 대해 들려준다. 두 수도원을 거닐다 보면 마치 다른 세기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못다 이룬 꿈과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하여. 

수도원의 도시, 알쿠바사를 가다 

포르투갈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의 보고다.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 포르투 역사지구, 코임브라 대학 외에 등 유네스코의 기준에 따라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곳이 15곳에 이른다. 그중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 산타 마리아 다 비토리아 수도원은 중세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고색창연한 유적이다. 두 수도원이 있는 알쿠바사와 바탈랴 두 도시는 거리도 가깝다. 그래서 알쿠바사와 바탈랴를 오가며 즐기는 '중세 수도원 건축 투어'가 인기다.

200년에 걸쳐 지어져 고딕과 르네상스, 마누엘 양식이 혼합된 바탈랴의 산타 마리아 드 비토리아 수도원

수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지 순례지로 자리매김한 두 수도원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알쿠바사 수도원이 여성적인 우아함을 뽐낸다면, 산타 마리아 비토리아 수도원은 탄탄한 골격의 남성미를 물씬 풍긴다고나 할까. 건축미도 빼어나지만 그 안에 깃든 역사적 배경을 알고 보면 더 흥미롭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당일치기로 빠듯하게 다녀오기보다 알쿠바사에 머물며 두 도시를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좋다. 

알쿠바사는 수도원에 의한 수도원을 위한 도시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돼 있다. 광장 한가운데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이 꼿꼿이 서 있다. 포르투갈 건국과 함께 세워진 수도원이다. 아폰수 엔리케 왕이 포르투갈에서 무어인(이슬람교도)들을 쫓아내는 데 도움을 준 시토 수도회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 수도원을 헌정했다. 198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해서 알쿠바사에서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 찾기만큼 쉬운 일도 없다.

알쿠바사의 도시 규모는 작지만,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은 광대하게 느껴진다. 거대한 고딕 양식의 수도원 규모에 비해 입구가 좁다. 흡사 수도사 외 출입 금지라고 엄포를 놓는 모양새다. 그도 그럴 것이 건립 당시 수도원은 오직 수도사들의 공간이었다. 999명의 수도사가 교대로 기도를 해, 24시간 내내 미사가 이어졌다. 

여전히 잘 정돈된 정원, 군더더기 없는 기숙사 등이 얼마나 검소하고 엄격한 생활을 했는지 짐작하게 한다. 수도사들의 식사를 책임지던 주방에는 20m가 넘는 거대한 굴뚝과 조리대, 수로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식당 옆에는 아주 좁은 문이 하나 있는데,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한 수도사는 문을 빠져나갈 만큼 살이 빠질 때까지 굶어야 했단다. 단, 그 크기를 가늠해 보려다간 문에 끼일 수도 있다. 역대 포르투갈 왕의 입상을 전시한 왕의 홀도 볼거리다. 왕의 홀과 식당 사이에는 침묵의 회랑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수도사들이 예배당이나 식당으로 이동할 때 거쳐 가던 회랑인데, 이곳을 지날 땐 묵언 수행하듯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기에 '침묵의 회랑'이라 불린다.

19세기 저택을 개조한 샬레 폰테 노바

포르투갈판 '로미오와 줄리엣'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 내에서 관람객이 가장 몰리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예배당에 놓인 동 페드루 1세와 도나 이네스 왕비의 석관 앞이다. 성당 양쪽 익랑에 천사에 둘러싸인 왕과 왕비의 조각을 새긴 관이 서로 마주보고 놓여 있다. 나란히 놓지 않은 이유는 사망한 자가 모두 부활하는 심판의 날, 두 사람이 깨어나 가장 먼저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라고 전해진다.

알쿠바사 수도원에 있는 도나 이네스 왕비 석관

대체 페드루 1세 왕과 이네스 왕비는 어떤 사랑을 했기에 이렇게 잠들어 있을까? 아폰수 4세의 아들 페드로 왕자는 14세기, 아버지의 강요로 스페인 콘스탄자 공주와 정략결혼을 했다. 정작 그가 마음을 뺏긴 여인은 공주 말고 공주 옆의 갈리시아인 시녀 이네스였다.

콘스탄자 공주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페드루 왕자는 이네스와 결혼하려 했다. 하지만 갈리시아인과 혼사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세력 다툼을 우려한 아버지의 철벽같은 반대에 부딪혔다. 아폰수 왕은 이미 페드루 왕자와 이네스 사이에는 남몰래 낳은 자식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하들에게 암살을 명했다. 결국 이네스는 코임브라로 추방당해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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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수의 칼날을 간 페드루 왕자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잔혹한 계획을 행동에 옮겼다. 이네스 시해에 가담한 신하들을 살해하고 심장을 도려냈다. 관에서 이네스의 시신을 꺼내 왕관을 씌우고 왕비임을 선포했다. 이후 평생 이네스 왕비를 그리워하며 살았다. 사망하기 전 이네스 왕비와 자신을 똑같은 석관에 묻어 마주 보게 놓아달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유언에 따라 페드루 왕과 이네스 왕비는 산타 마리아 드 알쿠바사 수도원에 함께 묻혔다. 

    알쿠바사의 명물 요리 '프랑고 나 푸카라'

    한편 알쿠바사에서 수도원만큼 유명한 것이 항아리 닭요리 '프랑고 나 푸카라(Frango na Pucara)'다. 알쿠바사의 명물 음식으로 수도원 주변에 프랑고 나 푸카라를 파는 식당이 많다. 그 가운데 안토니우 파데이루는 1938년 문을 연 이래 80년째 성업 중인 식당이다. 이곳에 자리를 잡고 요리를 주문했다. 항아리에 닭, 토마토, 감자, 당근, 마늘, 겨자, 월계수, 브랜디 등을 넣고 뭉근히 끓인 프랑고 나 푸카라는 한국의 닭볶음탕과 비슷한 맛이 났다. 낯선 곳에서 맛보는 익숙한 맛이 정겨웠다. 항아리 바닥이 보일 즈음 마음마저 온기가 차올랐다.

    전투의 도시에서 만난 승리의 수도원 

    전투라는 뜻을 품은 도시 바탈랴에는 '성모 마리아의 승리'라는 이름의 수도원이 있다. 산타 마리아 다 비토리아 수도원(Mosteiro de Santa Maria da Vitoria)이 그 주인공이다. 1385년 8월14일, 스페인과의 알주바로타(Aljubarrota)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주앙 1세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준 성모 마리아에게 그 영광을 돌리며 수도원 건립에 착수했다. 

    전쟁의 내막은 이렇다. 포르투갈의 페르난두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직계 후계자로 딸 베아트리스만 남았다. 그러자 베아트리스의 남편인 카스티야(스페인)의 왕 후안은 포르투갈을 흡수하겠다는 야욕을 드러냈다. 나라를 뺏길까 두려워진 포르투갈 귀족들은 페르난두 1세의 서자 주앙에게 힘을 실어줬다. 주앙은 영국을 등에 업고, 프랑스를 배후에 둔 후안과 전쟁을 시작했다. 수년간 긴 교전 끝에 마침내 주앙이 이끈 아비스 기사단이 카스티야와 프랑스군을 모조리 내쫓았다. 주앙은 조국을 지킨 영웅으로 추앙받았고, 얼마 뒤 포르투갈의 왕이 됐다.

    그렇게 포르투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아비스 왕조가 시작됐다. 주앙 1세 사후 첫째 두아르테 왕자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두아르테 왕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산타 마리아 드 비토리아 수도원을 건립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수도원을 완성하지 못한 채 사망하고 말았다. 수도원의 예배당 일부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다. 한편 두아르테 왕의 동생 엔리케 왕자는 포르투갈의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일부가 아직 미완인 바탈랴 수도원의 주앙 1세 예배당

말로만 듣던 산타 마리아 다 비토리아 수도원 앞에 선 순간 압도되고 말았다. 600년이 넘게 흘렀는데도 수도원의 웅장한 자태는 여전했다. 200년에 걸쳐 완성한 덕에 고딕 양식에 르네상스 양식과 마누엘 양식이 켜켜이 더해져 있다. 천사, 성인, 예언자들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은 정문으로 들어서면 창립자의 예배당, 주앙 1세의 회랑, 무명용사의 방, 알폰소의 회랑이 꼬리를 물고 연결된다. 차례로 둘러본 뒤 밖으로 나가 수도원의 미완성 예배당을 관람으로 동선을 잡으면 좋다.

대서사시의 첫 문장 같은 입구를 지나 수도원을 창립한 주앙 1세의 예배당으로 들어섰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오후 햇발이 스며들어 오색영롱한 빛 그림자가 쏟아졌다. 예배당을 나서자 마누엘 양식의 장식이 돋보이는 주앙 1세의 회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냥 걷고 싶을 정로도 근사한 회랑이었다. 회랑 옆 무명용사의 방에는 근위병들이 미동도 하지 않고 마네킹처럼 꽃으로 장식된 묘지를 지키고 있다. 

회랑 끝자락에는 수도사들이 식사 전 몸과 마음을 경건히 하는 의식으로 손을 씻던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를 지나 미완으로 남겨진 예배당에 들어섰다. 솟아오르다 기둥 위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비록 천장은 없어도 예배당은 7개의 예배실로 이뤄져 있다. 아치형 예배실 중 한 곳에는 두아르테 왕과 그의 아내 레오느로 왕비의 관이 나란히 안치돼 있다. 왕과 왕비가 조각된 관 가까이 다가섰다가 흠칫 놀랐다. 왕이 내민 손을 왕비가 지긋이 붙잡고 있는 모습의 조각이었다. 마치 죽어서도 함께하자는 듯이. 수도원 완성의 꿈은 못 이뤘다 해도, 서로 아낌없이 사랑했으리라. 이토록 아름다운 무덤이 있을 수 있는 거냐 싶을 정도로 멋진 무덤이었다. 

▶여행메모 

포르투갈 중부의 두 도시 알쿠바사와 바탈랴는 수도 리스본에서 버스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다. 리스본의 세테 리우 버스 터미널에서 알쿠바사까지 직행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알쿠바사와 바탈랴 간은 시외버스로 약 30분 걸린다. 1박2일 여행을 계획한다면 도시 규모나 교통의 편의성을 고려해 알쿠바사에 묵으며 바탈랴에 다녀오길 권한다. 특히 머무는 곳이 여행의 품격을 좌우한다고 믿는 여행자라면 19세기 저택을 개조한 '샬레 폰테 노바'를 추천한다. 아침이면 수도원 종소리가 알람이고, 지저귀는 새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는 아름다운 숙소다. 알쿠바사=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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