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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세청법' 제정 캠페인]

①세풍(稅風) 사건, '1997년 12월' 그 때 그 사람들

  • 보도 : 2018.05.08 07:54
  • 수정 : 2018.06.05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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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여름 즈음, 아마도 그들의 거래는 은밀하게 태동되고 있었을 것이다. 결코 영원할 수 없는 권력에 대한 '탐욕'은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도록 종용했을 것이다.

'세풍(稅風)사건'.

국세청 역사는 물론 대한민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잘못 쓰여진 '국세청의 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김대중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맞대결 구도가 형성됐던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 이 후보의 낙선은 곧 정권교체(보수→진보, 영남→호남)를 의미했다.

당시 여당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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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총풍사건과 안풍사건, 그리고 세풍사건이었다. 만약 당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다면 땅 속에 묻혀버렸을 수도 있었을 이 사건들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과 함께 세상에 알려졌다.

이중 정경유착의 결정판, 세풍사건은 단연 '최악'이었다.

세풍사건의 전모가 확정적으로 밝혀진 시점은 1999년 6월이었다.

당시 대검 중수부는 1998년 8월부터 진행해 온 세풍사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한나라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기업들로부터 대선 자금을 조달한 '국기문란사건'이라 규정했다.

사건을 주도한 인물들은 서상목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 김태원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 이회창 전 한나라당의 친동생인 이회성 그리고 임채주 전 국세청장과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 주정중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등이었다.

특히 임 전 국세청장과 이 전 국세청 차장, 조세부과권 및 세무조사권 등을 매개로 기업들을 겁박해 총 24개 기업으로부터 166억7000만원의 자금을 불법모금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이 이 막대한 돈을 뜯어내는데 2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세풍사건 수사는 검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직전 핵심혐의자였던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미국도피로 늘어지다가 중간수사 결과 발표 후 3년6개월이 흐른 지난 2003년 3월 이 전 국세청 차장이 미국 현지에서 체포되어 국내 송환되면서 마무리 단계를 밟을 수 있었다(2004년 4월 대법 최종 유죄 판결).

세풍사건의 원인은 이회창 전 총재를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그와 개인적 인연(고교 및 대학 선후배)이 엮인 인물들의 '권력욕'이 빚어낸 사건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이는 정치역학 측면에서 규정한 이유에 불과하며, 문제의 본질을 가려버리는 요인이다. 

세풍사건의 본질은 '국세청'이라는 국가기관의 막강한 권한이 청차장, 국장 등 고위층 몇 사람에 의해 조자룡 헌 칼 마냥 휘둘렸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정치권력이 국세청 공직자들로 하여금 가지고 있는 권한을 부정하게 사용하도록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 시켜주는 사건이었고, 검찰과 국가정보원 그리고 국세청 등 이른바 권력기관을 이끌어 가는 공직자들이 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지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세풍사건이라는 치욕적인 역사를 새겨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틀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은 변했지만 체계는 변하지 않았다.

사람의 욕심은 믿을만 한 것이 못된다.

따라서 그 사람의 욕심을 통제할 강력한 장치(법)이 필요하다.

만약 그 당시 공직자들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하고 있는 국가공무원법보다 더욱 정교하고 강력한 '국세청법'이 있었다면, 그러한 행위에 대한 이중, 삼중의 체크가 가능한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법의 테두리 아래 감히 엄두를 낼 생각조차 못할 상황이었다면 세풍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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