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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락의 세무사합격 'Step by Step']

[세무사 시험을 시작하는 이들에게]②내가 세무사 시험을 시작한 이유

  • 보도 : 2017.09.11 07:03
  • 수정 : 2017.09.1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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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1(-지인·=송세무사)

- "그 말 들었어요?"

= "무슨 말?"

얼마 전 다녀온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있던 일이다.

- "OO형이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신청하셨나 봐요"

= "그 형님 아직 40대 후반밖에 안 됐잖아. 지난번 만났을 때는 별 얘기 없더니 갑자기 그렇게 되었나보구나"

- "회사에서 갑자기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나 봐요. 제가 알고 있기로는 그 형님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데"

= "그랬구나. 요즘 경기가 안 좋아 경력직 채용도 쉽지 않을텐데"

- "요즘엔 40대 이상 퇴직자들은 재취업은 힘드니까 자영업 많이 하나봐요"

= "그런데 그 형이 대학졸업하고 금융권에만 있었는데 따로 자영업 준비할 수 있었을까?"

- "그러게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저도 걱정돼요. 제가 다니는 회사도 언제까지 더 다닐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 "회사라는 것이 결국 지금 나갈거냐, 아니면 몇 년 뒤에 나갈거냐의 차이지 답은 정해져 있어"

- "그래도 형은 좋겠어요. 회사다니면서 세무사시험 합격했으니 적어도 짤리진 않을 것 같네요"

= "세무사 시험 합격했다고 내가 다니는 회사 평생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언젠가 회사를 그만둘 때 남들보다 준비된 상황에서 나갈 수 있다는 정도지" 

- "부럽습니다. 아무래도 뭔가를 준비해야겠어요. 형처럼 관련 자격증을 준비하든지 아니면 좋은 아이템 발굴해서 장사라도 알아보던지 해야겠어요"

= "그래 뭐든 준비하는게 답이다. 그런 말 있잖아. 회사는 가장 팔팔할 때 데려와서 가장 힘없을 때 내보낸다고"

장면2(-송세무사·=지인)

내가 세무사시험에 합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다.

- "선배님 오래간만입니다. 오늘 시간 되시면 한번 뵐까요?"

= "그래, 내가 지금 아이들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사무실 들어갈 거니까 1시쯤 만나자"

나는 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다른 직장인들은 이미 오전 업무가 한창일 시간에 아이들 어린이집에나 데려다주고 있고. 세무사가 좋긴 좋군. 난 시간에 맞춰 강남의 번듯한 위치에 자리 잡은 선배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선배는 나에게 다짜고짜 한마디 던진다.

= "너 개업할거냐?"

- "아직이요.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어서 생각중입니다"

= "개업할 거면 현재 너의 금융부채를 다 청산한 다음 진행해라. 얼마 전까지 3년이라고 했는데 요즘 세무사 개업시장에서 최소 손익분기점을 5년이라고 본다. 그때까지 버틸려면 기존 금융부채가 많으면 힘들다. 결국 누가 버틸 수 있느냐의 게임이다"

= "그리고 두 번째는 자신만의 특화된 노하우나 능력이 있어야 된다. 그냥 국내 중소기업들 기장대리만 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물론 아직도 많은 세무사들이 그 시장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치열한 타 자격사들과의 업역싸움과 전산화 등으로 인해 점점 위축될 전망이라고 하니까"

장면3(-아버지지인·=송세무사)

- "거기 송씨 있나?"

= "안계신데요"

- "어 그래 이따 송씨 들어오면 나한테 전화왔다고 해라"

수화기 너머 상대는 계속 아버지를 '송씨', '송씨'라 한다. 맘이 확 상한다.

위의 대화는 초등학교시절 이야기인데 전화를 거신분은 아버지와 같이 근무하고 계신 우리반친구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젊어서 농사를 지으시다가 30대 후반에 철도노무자로 시작해 말단공무원으로 퇴직하셨다. 어린시절부터 우리 아버진 송00씨가 아니라 그냥 송씨였다. 

철도 요충지의 지방 도시에서 자란 나는 어린시절 철도 관련 회사에 다니시는 아버지를 둔 친구가 많았다. 친구들 아버지는 누구 기관사님, 수장님, 역장님이라고 불리는데 비해 우리 아버지는 그냥 송씨라는 것이 창피하고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래서 어린시절 내 꿈은 나이들어서 '송씨'로 불리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세무사 시험을 시작하는 이유

세무사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주위 분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세무사도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고 하더라 괜히 고생하지 말고 남들처럼 살아라'였다.

장면2에도 나와 있지만 자격증을 취득한다고 미래가 보장되진 않는다. 세무사만 그런가? 다른 전문자격사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그것을 알면서도 도전하고 버텨냈던 이유가 있다.

'이렇게 살다보면 미래가 뻔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내가 그렇게도 듣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어이 송씨!'라는 우리아버지의 호칭을 그대로 내가 들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젊은 시절을 조직과 함께 성장했지만 어느덧 퇴직을 앞둔 나이든 임원을 조직에선 '뒷방늙은이'라고 표현한다고도 한다.

20년전 대학시절 내 꿈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것이었고 버킷리스트도 그 당시 만들었다.

스페인 아람브라궁전을 보면서 기타치기, 몽골고원에서 말타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마주보이는 카페에서 차마시기, 핀란드에서 한밤중 오로라보면서 음악듣기 등.

하지만 집안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꿈을 잠시 유보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짐했다. 꼭 다시 그 꿈을 펼쳐 보리라고.

그리고 난  30대 후반에 새로운 삶으로의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금처럼 살면 나의 미래는 지금에서 조금도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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