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일각에서 '종교인 과세'를 유예하려는 움직임이 나오자 마자 마치 기다려 왔다는 듯이 종교계가 힘을 보태고 나섰다.
내년 1월1일 종교인 과세제도가 본격 작동할 예정인 가운데, 그동안 산발적인 반발만 있었을 뿐 잠잠했던 종교계를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과세유예 법안을 제출하면서 흔들어 깨운 꼴이다.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린 것과 다름 없는 셈이다.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벌어들인 소득에 대해 십원 한 장 세금(소득세)을 내지 않았던 종교인들은 내년부터 소득 수준에 따라 6~38%의 세율로 세금을 내야 한다.
그러나 종교계는 정부가 종교인들의 소득내역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해괴한 논리로 과세기준을 명확히 마련할 시간을 더 두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과세 대상 소득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하고, 이에 대한 협조와 협의를 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한 채 '과세 유예'만 외치는 종교계의 태도는 '위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납세의무 미루자는 것이 환영할 일인가요? = 한국교회연합은 지난 14일 '종교인과세 시행유예 관련 법률안 발의 환영'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논평에선 "앞으로 2년 간 정부와 종교계가 문제점을 보완해 시행에 들어가게 되길 바란다"고 밝히고 있다.
불과 수 개월 후면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제도의 앞길을 막고 나선 것은 정치권이다.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종교인 과세제도 유예 법안은 제도 시행시기를 2020년으로 2년 더 늦춘다는 내용이다.
더불어민주당 기독신우회장과 수원중앙침례교회 장로인 김 의원이 입법안을 제출하자 대번에 여론이 들끓었다. 애초 김 의원을 포함해 총 28명의 국회의원들이 공동발의했지만, 논란이 불거지자 일부 의원(박홍근, 백혜련, 전재수)들이 이탈하는 등 볼썽 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김 의원 등이 제기한 제도 유예의 명분은 시행 메뉴얼에 '과세 대상'에 대한 세부 내용이 정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종교계도 '집단행동'에 나서는 등 과세제도 유예 법안에 힘을 싣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등이 '한국교회와 종교 간 협력을 위한 특별위원회 TF'를 조직, 이를 통해 과세 유예 및 소득세법 시행령 보완 등을 주장하고 나선 상황이다.
최근 한국교회연합이 내놓은 논평을 보면 종교계(특히 기독교계)가 과세제도에 불편한 속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논평 제목에 유예 법안 발의를 '환영'한다는 문구까지 써가며 "과세당국이 준비하고 있는 종교인 소득 과세를 바로 시행할 경우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같은 종교집단 내부에서도 종단과 종파 간 각각 다른 수입구조, 비용(필요경비) 인정 소득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과세 기준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특히 종교단체들이 영리·비영리법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도 비영리법인에만 과세 칼날을 들이댔을 때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일부 개신교 단체들은 정부가 제도 시행에 따른 세부사항을 공개하지 않고 종교계와 소통도 없이 곧바로 시행에 들어가겠다는 것을 두고 정부와 종교 간 마찰을 피할 수 없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2년 후 세금 내긴 할 겁니까?"
하지만 종교계의 이 같은 주장은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대세다.
정부가 제도 시행에 앞서 문제가 되는 부분을 개선하고자 손을 내밀었지만 이를 뿌리친 것은 종교계다. 실제로 지난 6월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7대 종단(천주교·불교·원불교·유교·천도교·개신교·민족종교)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과세대상 종교인 소득을 정리하기 위해 구체적인 소득 내역 등을 제출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종교계가 선교활동 등을 목적으로 지급되는 비용을 세법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개 자체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세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며 유예를 주장하면서 종교계는 현재까지도 종교인에게 지급되는 소득과 관련한 자료를 한 건도 제출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입장에서는 과세 대상이 명확해지지 않을 경우 제도 실효성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약점'이 존재한다.
현재 설계된 종교인 과세 제도는 종교단체가 소속 종교인에게 소득을 지급하면서 원천징수를 하는 방법과 1년에 한 차례 종교단체가 소득을 자진신고하고 세금을 내는 방식을 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
특히 종교인 과세제도를 얻어내기 위해 세금납부와 관련한 후속적인 간섭(세무조사 등)을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방침을 정부가 정해 놨다는 측면을 고려할 때 현재 상황이 계속된다면 내년 1월1일 이후 제도가 시행되어도 '껍데기 제도'에 머물 가능성이 큰 형편이다.
종교계가 현재 2년 유예를 주장하며 정부와 소통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전개과정을 감안하면 2년이 지난 2020년에도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즉 제도 시행까지 남은 기간 동안 종교계가 정부 방침에 협조, 내년 1월1일 이후 제도가 안정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쉽게 말해 이 시기를 놓치면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한 조세전문가는 "애초 제도를 만들 당시 소득수준에 따라 필요경비율(최저 20%~최고 80%)을 적용키로 한 이유는 종교인의 소득 내역이 천차만별이라는 지적을 해소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특히 일반 근로자들처럼 학자금과 식비, 교통비 등 실비변상액을 비과세 소득으로 적용하기 때문에 과세 대상 소득 내역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종교계의 논리는 근거가 대단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과세 대상 소득 내역을 정하려면 그동안 자기들끼리만 알고 있던 소득 내역을 종교계가 정부에 알려주는 것이 순서다"라며 "이에 대한 협조도 없이 무턱대고 과세 대상 소득 내역이 불분명하니 제도를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놀부심보나 다름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부 개신교 단체에서는 종교인 과세가 '종교전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종교인 과세가 시행될 경우 이른바 '이단'으로 지목되어 있는 종단들도 대상이 될텐데 차후 이들도 세금을 납부하는 합법적인 종교단체라고 주장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종교계 내부의 문제를 과세 유예 명분으로 삼는 것 또한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정부는 종교인 과세 시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비영리법인이 아닌 경우에는 과세 대상 소득 등을 정해주는 등 일종의 '메뉴얼'을 만들어 구체적인 과세 체계를 제시하겠다는 방침이다. 국세청은 이르면 오는 10월 중 최종 메뉴얼을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