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회 전 관세청장(왼쪽)과 천홍욱 현 관세청장.
전·현직 관세청장이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을 동원, 특정 업체에게 혜택을 준 정황이 감사원 감사 결과 확인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감사원 감사 결과 한 방에 '비리집단'으로 낙인 찍힌 관세청 직원들은 전·현직 수장들의 불미스러운 소식에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다닐 수 없는 형편이 됐다는 전언이다.
관세청 일각에서는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의구심, 특히 위에서 시키는대로 일한 하위직 직원들에게 최고 해임(2명) 징계를 통보한 감사원의 조치가 과도하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다만 이 문제는 결국 검찰의 수사를 통해 제대로 된 처벌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현재 민간인 신분인 김 전 관세청장과 자료 파기를 지시한 천홍욱 현 관세청장에 대한 처벌은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 감사원의 입장이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12일 이 사건 수사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국회도 가만있지 않을 태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2일 성명서를 내고 두 전·현직 관세청장을 고발하는 한편, 국정조사 등 진상규명을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밝히는 등 이번 사태를 '게이트' 수준으로 키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부정의 몸통, 김낙회·천홍욱
2014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관세청장으로 재직했던 김낙회 전 청장은 면세점 평가 점수를 조작, 특정 업체에 특혜를 부여하거나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11일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관세청은 지난 2015년 7월(1차 면세점 대전)과 11월(2차 면세점 대전)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서울 시내면세점 선정 당시 관세청이 특정 기업에 대한 심사 점수를 고의로 낮게 평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일부 기업은 점수를 과도하게 부여 받아 수혜을 얻었다는 것이 감사원의 지적이다.
그 결과 1차 대전에서 HDC신라, 한화갤러리아, SM면세점(중소·중견), 2차 대전에서 신세계DF, 두산, 롯데 소공점이 각각 면세점 사업권을 획득했다.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한화갤러리아와 두산의 특허권 취득이다.
두 회사는 관세청을 상대로 한 로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관세청이 심사과정에서 계량항목 점수를 잘못 부여해 두 회사가 사업자로 선정된 사실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 사실이다.
실무 직원의 착오나 고의에 의한 문제였다고 결론지어 질 수도 있지만 김 전 청장은 한화갤러리아가 사업자로 선정된 지 2개월 뒤 열린 2015년 국정감사에서 면세점 선정 작업이 진행되는 도중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를 만나 식사를 한 사실이 밝혀져 유착의혹을 받기도 했다.
한화갤러리아의 주가가 면세점 사업자 발표 직전 급격히 올라, 정보유출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던 때였다. 로비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에는 수상쩍은 대목이 한 두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김 전 청장은 지난해 엄청난 논란 속에 진행됐던 제3차 면세점 대전에서도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신규 특허 4개 발급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기초자료를 왜곡하는 등 부정행위를 주도했다.
지난해 5월 김 전 청장이 사퇴하고 천홍욱 현 청장이 관세청장에 올라 롯데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을 신규 면세점 사업자로 선발했다.
선정 과정에서의 부정행위는 김 전 청장이 주도했지만 천 청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면세점 선정 과정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관세청이 보관하고 있는 관련 서류 파기를 지시하는 등 졸지에 검찰 수사 대상(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이 됐다.
아울러 윗선의 지시를 군말 없이 따른 하위직원 3명도 징계대상(경징계 이상)으로 만들었다.
관세청 내부 분위기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다.
한 관세청 관계자는 "관세청에 수십 년을 근무했지만 이렇게 시끄러웠던 적이 없었다"고 운을 뗀 뒤 "관세청 직원으로서 너무 부끄럽다. 현장에 나가도 관세청에서 왔다는 말을 하기가 꺼려질 정도"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직원은 "최순실 여파가 차츰 옅어지고 있는데, 관세청만 반대로 점점 커져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면서 "직원들 입장에선 사태가 빨리 마무리돼 모든게 정상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관세청에 대한 대대적인 쇄신이 필요한 것 같다"면서 "이번 사태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관세청이 되기 위한 기회라 생각하고 관세청 직원들 스스로도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