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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김봉래 국세청 차장

마지막 한줌까지 불태우다…국세청이 운명이었던 그 사람, '김봉래'

  • 보도 : 2017.07.03 09:50
  • 수정 : 2017.07.03 12:21

'영문학도'의 꿈을 꾸던 젊은이가 있었다.

희망했던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준비하던 어느 날 집에 놀러온 친형의 친구가 두고간 몇 권의 책을 집어든 것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가 무심결에 집어든 책은 헌법, 행정법, 행정학 공무원 수험서였다.

단박에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1978년 19세 젊은이는 7급공채 시험에 합격했고 이듬해인 1979년 부산진세무서 법인세과에 배치, 국세공무원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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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세종시 나성동 국세청사에서 명예퇴임식을 갖고 38년 국세공무원 생활의 마침표를 찍은, 김봉래 국세청 차장(사진)의 이야기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가깝고도 먼 위치에서 그를 보면서 느낀 한 가지는 '정말 이 사람이 어떻게 국세공무원으로서 성공했을까' 였다.

부드러운 인상, 나긋나긋한 말투에 거짓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고 자신을 낮추는데 익숙한 그는 드센 국세청 조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형이다.

그러나 그는 곧 '국세청'이나 다름없었다.

뼛속까지 국세맨... 본청 근무기간만 '24년'

27세였던 1986년 김 차장은 본청에 입성했다. 당시에는 지방국세청 근무경력도 없는 새파란 7급 직원이 본청에 발령받는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24년이라는 긴 시간을 고된 본청 근무로 하얗게 불태울 줄은.

시작도 빨랐고 워낙 오랜 시간을 본청에서 근무하다보니 행정고시 출신도 아닌데, 행정고시 출신들도 적어넣기 힘든 이력들을 국세공무원 김봉래 이력서에 채워넣었다.

세무조사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기획, 세법해석, 조세불복, 국제조세, 인사 등 국세행정의 모든 것을 거쳤다. 발만 살짝 담근 정도가 아니라 그 어디서든 '찐하게' 일했다.

업무능력도 능력이지만 무엇보다 '성품'이 일품이었던 그를 상사들은 중한 자리에 기용했다.

높이 날아오를 수록 끌어내리려는(?) 인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국세청 조직에서 그는 기어코 살아남았다. 주변 상하 동료들이 '적(敵)이 없는 인물'로 꼽는 이유는 자신을 낮추고 주변인들과 어우러져 모든 일을 풀어나가는 것을 선호하는 그의 열린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가.

그가 국세청 조직에 남긴 업적들도 상당하다.

본청 법규과장 재직시절 '과세기준 자문제도'와 '세법해석 사전답변제'를 안착시켰고, 본청 운영지원과장으로 일하면서 숙직 및 일직 체제를 '재택근무제'로 바꾸는 등 국세청 직원들의 복지향상을 위한 제도개선을 주도했다.

수도권 대기업 세무조사를 총괄 지휘하는 막중한 자리인 서울청 조사1국장 재직시절도 눈에 띈다. 그가 지휘하던 시절 조사결과에 대한 불복청구가 줄어드는 등 합리적인 조사행정을 펼쳤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그를 잘 아는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정말 많은 일을 했던 분인데, 이상하리만치(?) 드러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힘든 일도 조용하게 처리하고 자신보다는 주변을 치켜세우는 그의 인간성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전현직을 통틀어 '김봉래', 하면 엄지손가락부터 척 내미는 이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국세청 차장 3년, 마지막 한 줌까지 불태우다

김 차장은 2014년 8월 국세청 개청 이래 최초의 7급공채 출신 국세청 차장으로 발탁,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카리스마가 강하다'는 말을 공직생활 하면서 지겹도록 들었을 임환수 전 국세청장이 국세청 인사의 오랜 관행을 깨고 본청 국장 경험이 없었던 김 차장을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에서 차장에 발탁한 것 또한 그가 능력과 평판, 내공과 소신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세청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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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김.봉.래' = 김봉래 국세청 차장이 3일 세종시 나성동 국세청사에서 명예퇴임식을 갖고
정든 국세청을 떠났다. 평소 '직업공무원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국세청을 떠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주변인들에게 이야기 했다는 김 차장. 그는 꿈을 이루었고, 이날 후배 국세공무원들의 뜨거운 환송을 받으며 또 다른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말그대로 김 차장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불태웠다.

국세행정 개편과 관련한 굵직한 사안들을 떠 맡아 진두지휘, '직업이 추진단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고.

'너무 고생하는 것 아니냐'는 동정의 눈길을 받아가며 일해 온 그는 오히려 '김봉래야 말로 국세청 조직에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주변에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전언이다. 지난 3년 동안 그 많은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는 그 누구에게도 쉽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차장은 학구열이 대단한 인물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주경야독으로 대학 졸업장(방송통신대학)은 물론, 석사학위는 물론 최근에는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가 작성한 논문은 모두 국세행정 현장에서 체득한 것이 토대가 됐다고(석사학위-디지털포렌식 세무조사 연구, 박사학위-세법해석 사전답변제도의 도입효과에 관한 실증연구).

'국민이 세금을 공평하게 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진짜 선진국'이라는 소신을 갖고 있는 그는 원칙을 중시하는 대쪽같은 인물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상급자가 원칙에 어긋난 행보를 보일 경우 얼굴 하나 붉히지 않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직언'을 아끼지 않는다.

평소 사석에서 시적인 표현을 멋지게 구사하는 그는 집무실에 늘 잔잔한 음악을 깔아놓고 시간이 날 때면 아내와 영화, 연극을 찾아다니며 보는 '낭만파'이기도 하다.

3일 그가 전국 2만명 국세공무원들에게 남긴 퇴임사는 한 편의 시를 연상케 한다.

이제 다시 돌아갑니다

내일 한바탕 꿈에서 깨어나면
그냥 국세청이 보고 싶을 겁니다.
그냥 국세가족이 그리울 겁니다.
해질녘 길을 걷다가
또 생각날지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꽤 멀리 왔기에,
또 오래 머물렀기에
자랑스러운 추억다발 안고 떠납니다.
여러분이 주신 꽃신 신고
왔던 길을 찾아서 이제 다시 돌아갑니다.
그런데 받은 것은 넘치는데
드릴 것은 작은 마음 뿐이라 미안합니다.
바람 불고 눈비 내려도
우리 국세청,
우리 국세가족은
더 신뢰받고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멀리서 가만히 바라보면서
'국민을 위한 국세청'을
마냥 응원하겠습니다.
함께 동행해 준 국세가족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사람은 떠나도 국세청은 남는다.

떠나간 사람이 남겨놓은 흔적은 곧 지워질 것이다. 하지만 떠나간 사람이 남겨놓은 진한 '사람 냄새'는 오래도록 기억되고 또 그리움으로 자극할 것이다.

국세청이 운명이었던 그 사람, '김봉래'가 아마도 국세청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그리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약력]

▲1959년 ▲경남 진주 ▲배정고-방통대-고려대 석사, 가천대 박사 ▲일반공채(7급)
▲부산진세무서 법인세과, 국세청 국제조세담당관실, 동울산세무서 법인세과장, 도봉세무서 소득2과장, 국세청 조사3과5계장, 전산조사1계장, 총무과 인사1계장, 제주세무서장, 서울국세청 조사1국2과장, 국세청 통계기획팀장·법규과장·세원정보과장·운영지원과장, 서울국세청 세원분석국장, 서울국세청 조사1국장, 국세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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