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세청장 인선에 있어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외부 수혈' 가능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외부인 출신을 국세청장 자리에 밀어올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과 함께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된 문 대통령은 당시 관세청장으로 재직하던 이용섭 전 의원을 국세청장으로 추천, 실제 발탁으로까지 이어지게 만들었다(문 대통령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이와 관련한 뒷이야기를 적어놓았다).
최근 국세청 안팎에서 외부 수혈 가능성에 대한 여러 전망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군사정권 시절이후 재임했던 15명의 국세청장 중 달랑 2명에 불과한 외부 수혈 국세청장 중 1명이 만들어진 과정에 문재인 대통령이 깊숙이 관여했고, 하필이면 그 1명이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이용섭 전 의원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출간된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 중 이용섭 전 국세청장 임명 배경에 대한 부분. 문 대통령은 저서에서 외부인이던 이용섭 전 관세청장을 신임 국세청장으로 발탁한 것은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밝히고 있다.
새 국세청장 인선 관전포인트-'외부 수혈' 이루어지나
실제 현재 국세청 주변에서는 외부 수혈 국세청장 인선 가능성과 관련한 별의 별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다.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그의 당선을 위해 뛴 전직 국세청 고위직들 중 일부가 재기를 노리고 있다는 설부터 시작, 이미 민간인 신분이 된 지 오래된 전직 기획재정부, 국세청 고위직 출신들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는 설(현직 기재부 고위직들 중 발탁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최근 부상하고 있다), 심지어 현직 교수 중 한 사람이 발탁될 것이라는 설까지 더해지고 있다.
특히 이용섭 전 의원이 국세청 상급기관인 기획재정부 장관 자리에 유력하다는 이야기들이 파다하게 퍼지면서 외부 수혈 국세청장 출신인 그의 '입김'이 국세청장 인선 방향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성을 꼼꼼히 따져보면 이 설들은 논리가 굉장히 빈약한 측면들을 안고 있다.
캠프 출신 발탁설의 경우 지목된 인물 중 상당수가 '평판' 측면에서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 또 일부는 국세청장 보다는 '금뱃지'를 노리고 캠프에 합류했다는 분석도 있다.
전직 기획재정부, 국세청 고위직 출신 발탁 가능성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국세청장에 퇴직자들을 끌어다 앉힌 경우도 없을 뿐더러 이들 대부분이 민간인 신분으로 경제활동을 하면서 만들어 놓은 것들로 인해 잔뜩 눈높이가 높아질 인사청문회를 통과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능력과 평판, 경륜을 모두 갖춘 몇몇 인물들의 이름이 세간에 떠돌고는 있지만 막상 선택하기에는 거북스러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민간인 신분이었던 전직 기획재정부 고위직 출신을 국세청장 후보자로 발탁하기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 등 문제에 봉착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기재부 고위직 중 발탁될 것이라는 설은 나름 구미를 당기지만, 정작 거명되는 인물들의 직급을 감안할 때 2단계 위인 차관급으로 고속승진시키기는 공직인사의 관례상 현실적으로 무리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이용섭 역할론'도 마찬가지다.
2년 동안(2003년 3월24일~2005년 3월14일) 국세청장으로 재직하며 국세청 조직의 생리 및 외부 수혈 국세청장에 대한 조직 내부의 반발여론, 그리고 한계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자신에게 원망이 돌아올 수도 있는 국세청장 인사에 영향력을 선뜻 행사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용섭 역할론은 그가 어디까지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된다는 전제가 깔려야 성립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국세청 안팎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미묘한 상황들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외부 수혈 국세청장 가능성을 '대세'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측면이 많다는 이야기다.
국세청은 지금 흔들리고 있는가?
사실 이용섭 전 의원이 국세청장으로 발탁되던 시절, 특수한 상황이 존재했다. 문 대통령도 자서전을 통해 얼추 적어놓긴 했지만 당시 국세청 내부승진 후보자 2명이 지나친 경쟁을 벌이면서 인사권자의 눈밖에 나 방향이 급선회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만약 그 2명이 서로 물어 뜯지 않고 페어플레이를 했다면 아마도 외부 수혈 국세청장 선택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외부 수혈 국세청장이 나온 2009년 상황을 지금과 비교할 필요성도 있다.
당시 국세청은 6개월 동안 차장 대행 체제가 가동되고 있었다. 전임 국세청장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거나 정치 스캔들에 엮여 낙마하면서 국세청에 대한 국민신뢰가 땅바닥으로 추락한 상황이었다.
집권 중반기였지만 이러한 상황 때문에 국세청 개혁이 화두로 떠올랐고 이명박 정부는 긴 고심 끝에 국세청이라는 조직과는 전혀 관계가 없던 장관급 인물(공정거래위원장)을 차관급으로 낮춰 국세청장에 임명하는 강수를 둔다.
제18대 백용호 국세청장이었다(당시 내부승진 후보도 저울질 됐었는데 만약 그 인물을 발탁했다면 훗날 크게 낭패를 볼 뻔했다).
당시 백 국세청장의 인선 명분은 국세청의 개혁이었다. 즉 현 시점에서도 외부 수혈 국세청장 발탁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국세청 개혁'이라는 명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지금, 국세청 조직의 개혁 필요성이 존재하느냐다.
최순실 국정농단 전개과정에서 국세청이 모종의 역할을 한 흔적은 드문 드문 보이지만 권력형 비리의 시녀로 본격 동원된 명확한 정황이 없다.
2009년 이후 이런 저런 비리에 연루된 전직 국세청장들도 없었고 박근혜 정부 초반 고전은 했지만 지난해 10조원에 가까운 초과세수를 만들어 내는 등 상당히 안정적으로 조직이 운영되고 있어 '개혁이 필요하다'고 달려들기가 애매한 상황이다.
거대한 사고를 쳤다면 몰라도 굳이 현 시점에 국세청을 개혁 대상으로 점찍고 외부 수혈 국세청장이라는 인위적인 충격파를 안겨 국세청 조직을 흔들고 사기를 떨어뜨려 놓을 필요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손쉬운 개혁의 방법은 인사겠지만 이 보다는 국세청장과 국세청 조직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껏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진짜 국세청의 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