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국법인(內國法人)이란 국내에 본점이나 주사무소 또는 사업의 실질적 관리장소를 둔 법인을 말한다."
지난 2006년 1월1일 시행된 개정 법인세법 제1조1항은 당시 '먹튀 논란'이 한창이던 론스타 펀드 사건의 재발 방지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국세청이 론스타 펀드가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타워)를 팔면서 올린 소득에 세금을 과세한 논리는 론스타 펀드의 국내 자회사인 론스타코리아를 '고정사업장'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론스타 펀드는 론스타코리아가 고정사업장이 아니며 실질적인 매각과 관련한 의사결정 등은 조세회피 목적으로 벨기에 현지에 세운 '스타홀딩스'에서 결정한 것(수 년 뒤 외환은행 지분 매각 논란이 촉발됐을 때도 유사한 형태의 논리 대결이 벌어졌다)이라는 논리로 과세에 반발했다.
개정 법인세법은 제2, 3의 론스타 펀드가 한국 시장을 유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정사업장 개념에 더해 사업의 실질적 관리를 국내에서 했다면 법인격이 어느 나라에 소재하든 상관없이 내국법인으로 보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외국기업, 한국기업 여부를 가리지 않고 벌어들인 부(富)를 세금 한 푼 없이 해외로 빼돌리는 '악덕기업'들을 차단할 목적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국세청이 카타르와 오만 소재 LNG 개발 사업 참여를 위해 한국가스공사와 6개 국내 종합상사들이 만든(이하 가스공사 컨소시엄) 코라스와 코엘엔지에 세금폭탄을 투하하면서 들이댄 과세논리는 법인세법 제1조1항이었다.
코라스와 코엘엔지가 조세회피처인 버뮤다에 법인격을 두고 있지만 현지(버뮤다) 법인에 파견된 임직원이 없고(코라스와 코엘엔지는 LNG 개발을 통해 발생한 소득을(배당) 온전히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 만든 '도관회사'에 불과했다) 사업상 필요한 중요 의사결정은 국내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가스공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확인, 법인세법 제1조1항을 적용해 두 회사를 '내국법인'으로 간주해 버린 것이다.
가스공사 세무조사 직후 국세청은 배당을 통해 단 한 푼의 수익도 남지 않은 코라스와 코엘엔지에 세금 무신고에 따른 7년의 부과제척기간을 적용, 법인세와 가산세 등을 추징했다(2008년 귀속분, 이하 1차 과세분).
국세청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코라스와 코엘엔지가 내국법인으로 간주된 이상, 컨소시엄 참여 기업들이 그동안 받은 해외자원개발투자 배당소득 법인세 감면 및 해외자원개발투자 세액공제는 코라스와 코엘엔지가 받아야 할 혜택이라는 논리로 과세자료를 파생시켜 가스공사 컨소시엄에 참여한 6개 종합상사들에 대해서도 감면 받은 세금을 몽땅 추징 결정했다(2010년 귀속분, 이하 1차 과세분).
◆…법인세법 개정 촉발한 문제의 '스타타워 매각' = 론스타 펀드의 스타타워(현 강남파이낸스센터) 매각 차익에 대한 세금 논란은 법인세법 제1조1항 개정의 도화선이 됐다. 정부는 본점이나 주사무소가 해외에 있더라도 국내에서 중대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경우라면 '내국법인'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을 내국법인 판단기준에 추가했다.
국세청은 지난 2011년 '(탈세)왕' 시리즈의 창시자나 다름없는 권혁 시도상선 회장의 초대형 역외탈세를 적발하는 과정에서고 개정법인세법 조항을 활용했다.
권 회장은 버뮤다, 케이만군도, 홍콩 등 10여개 조세회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후 용선사업 등으로 국내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세금 한 푼 없이 빼돌린 혐의가 국세청에 꼬리를 잡혔다.
국세청은 그가 사업에 필요한 중대한 결정(실질적 경영)을 모두 국내에서 했다는 정황을 포착, 홍콩에 세워진 시도상선의 자회사 시도카캐리어서비스(CCCS)를 내국법인으로 간주해 법인세 및 가산세를 부과했다. 권 회장 개인에 대한 소득세 등을 합쳐 총 과세액은 4100억원에 달했다.
법 규정과 실제 운영 현황만 따지고 보면 코라스와 코엘엔지를 내국법인으로 볼 여지가 크다. 즉 국세청이 가스공사 컨소시엄 업체들에 대한 과세는 정당성을 확보한 듯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는 '과세권 남용' 소지가 다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선박왕 과세 케이스의 경우처럼 명확한 '탈세시도'가 있었느냐 여부다.
선박왕 사건의 경우 국내에서 벌어들인 소득 대부분을 조세회피 목적으로 세운 정황이 다분한 해외 자회사로 흘려보내, 소득 자체를 국내에 남겨두지 않는 방식으로 탈세를 한 케이스.
그러나 가스공사 컨소시엄의 경우 사업상 필요로 인해 조세회피처(버뮤다)에 도관회사(페이퍼컴퍼니)를 만든 후 소득을 모두 배당형태로 국내에 들여왔다. 외국에 세금을 내고 올 경우 국부가 줄어들기 때문에 사업 추진 과정에서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이러한 '유입루트'를 만든 것이다.
버뮤다가 이를 문제삼았다면 몰라도 한국 국세청이 그동안 조용히 있다가 법이 개정됐다는 이유로 불쑥, 문제를 삼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세회피 목적의 악덕기업들을 때려 잡으라고 만들어 준 법 규정을 조세회피 목적이 없는 선량한 내국기업들의 사업활동을 규제하는데 활용한 것 자체가 국세청의 과세권 남용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컨소시엄 참여 업체들의 세금감면 혜택을 부인하고 코라스와 코엘엔지가 세금감면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국세청의 논리도 '궤변'이라는 지적이다. 단 한 명의 직원도 없는 버뮤다 소재 법인이 국내 세법상 세금감면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엉뚱한 판결문 손에 쥔 채 '고집' 꺾지 않는 국세청, 왜?
국세청이 이 과세사건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 2015년 11월27일 대법에서 최종 선고된 현대상선 사건 판결이다.
지난 2006년 현대상선은 똥위앤국제유한공사(이하 똥위앤)와 손 잡고 중국 국영 석유회사의 원유를 운송하는 사업을 공동영위하기 위해 버진 제도에 합작회사인 HDY Shipping Ltd(이하 HDY)를 세웠다. HDY 운영과 관련한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현대상선 한국 본사에서 이루어졌다.
두 회사의 밀월은 중국 정세가 변하면서 2010년 6월말 중단됐고 이듬해 1월 HDY는 이사회를 열고 그동안 쌓아놓은 수익의 99.02%를 배당하기로 결정, 현대상선과 똥위앤이 각각 540만 달러의 배당을 받았다.
2011년 현대상선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한 국세청은 HDY를 법인세법 제1조1항 규정에 따라 내국법인으로 규정하고,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을 부과했지만 이미 소득을 모두 배당한 채 영업활동이 중단된 HDY는 담세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에 국세청은 HDY가 영업활동을 중단한 상태에서 자산을 모두 배당한 것은 국세기본법상 해산 및 청산에 해당, 지분 50%를 가지고 있던 현대상선을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해 HDY에 부과된 법인세를 납부하도록 고지했다.
이후 현대상선이 국세청과 벌인 소송전에서 1심과 2심은 HDY 운영과 관련한 실질적 의사결정이 현대상선 한국 본사에 있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HDY를 내국법인으로 인정했다.
국세청도 이 판결을 인용, 코라스와 코엘엔지를 내국법인으로 판단한 것에 대한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상선 소송의 결과는 납세자 승소(현대상선)로 종결됐다.
쟁점 자체가 HDY의 내국법인 여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HDY는 배당금을 안정적으로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루트에 불과한 도관회사인 코라스, 코엘엔지와 달리 실제 사업을 영위한 법인인데다 벌어들인 수익을 국내로 들여오지 않은 채 상당기간 쌓아놓고 있었다.
즉 국세청은 실질 내용상으로 전혀 관련 없는 사건에 대한 1심과 2심 법원의 판단(내국법인 판단 여부)만 도려내 코라스와 코엘엔지 과세근거로 밀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세무대리 업계의 한 관계자는 "HDY 사건과 가스공사 컨소시엄 사건은 실질이 완전히 다르다. 최종 판결도 'HDY가 내국법인이니 과세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국세청이 이 판결에서 재판부가 인정한 사실 중 과세에 유리한 사안만 뽑아내 과세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격"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