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별 시간당 최저임금(2015년 기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는 과연 현실화 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조기대선 출정을 알린 대선주자들이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내걸어 현실화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6470원. 월급으로 계산하면 135만2230원이다.
지난해 서울 구의역에서 일하다 숨진 19살 청년의 월급은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144만6000원이었다. 한 달에 100만원씩 저축해 대학갈 계획을 세웠던 그였다.
1986년 제정된 최저임금법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 꾀함으로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1조)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법 시행 31년이 지난 지금도 '최소한의 삶' 조차 유지하기 힘든 금액이다.
□ OECD최하위 수준, 임금불평등 심화→소득불평등 악순환 = 최저임금이 매년 상승한다 해도 구매력을 감안하면 '쥐꼬리' 수준이다.
실질 최저임금 수준(2015년 기준)은 프랑스의 절반에 그친다.
구매력평가지수(PPPs)를 이용해 시간당 실질최저임금 수준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는 2015년 5.45달러였다. 프랑스는 10.90달러로 우리보다 두 배 차이가 난다. 1시간을 똑같이 '알바'를 해도 그 대가로 누릴 수 있는 실질 구매력은 프랑스의 절반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1990년대 이래 어느 나라 보다 임금 불평등 심화 속도가 가파르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경우 1980년대부터 임금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됐지만 한국은 1990년 초반까지 감소하다가 1990년 중반 이후 IMF금융위기, 글로벌화, 노동유연화 등에 따라 임금 불평등이 급속히 심해졌다.
현재의 소득불평등 악화의 주된 동인은 임금 불평등이다. 최저임금은 월급생활자들인 다수 국민들의 임금 협상의 기준이 되어 심화된 소득불평등을 푸는 근본 해법이기도 하다.
노동계는 그동안 '시간당 1만원'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해왔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사용자(기업)측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기업부담 증가를 내세운다.
또한 영세한 자영업자들의 인건비 가중 역시 풀어야할 숙제다.
소득불평등 악순환의 첫 고리인 '최저임금' 문제는 선거 때마다 핵심적으로 내놓는 '정책이슈'다. 지난 해 4.13 총선에서 야권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제시했고 여당인 (당시) 새누리당은 8000~9000원을 내걸었다.
□ 대선주자들 '최저임금 1만원' 공약, 소득불평등 심화 공감 = 특히 대선주자 대부분이 '최저임금' 인상을 외치고 있다. 노동계 표심을 의식한 공약일 수 있지만 심각한 소득불평등과 열악한 노동현실을 감안하면 차기 정부에서 개선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소득불평등으로 '헬조선'을 외치는 시대.
문제 해법의 출발이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데 여야 공감대를 이룬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일자리 공약 발표 당시 "최저임금의 점진적 인상"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를 줄이는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1만원에 이르기까지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문 전 대표의 '점진적' 단어 사용은 자영업자 등의 여론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주자 중 가장 선명한 정책을 내놓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3년 내(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공약했다. 이 시장은 국토보유세를 신설해 기본소득 43조원을 마련,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영세자영업자의 매출이 올라가고 노동자의 임금상승도 가능하다는 논리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국민월급 300만원 시대의 실현방안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심 대표는 "평균 월급 300만원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다"라며 "절실한 만큼 정치권의 의지가 실려야 한다. 정부가 정책 우선순위를 조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 대표는 '최고임금법'을 도입해 임원들의 과도한 임금을 제한하고, 남는 재원을 노동자에게 돌려주면 재원 마련은 문제없다는 주장이다.
◆…대선주자별 최저임금 공약
□ 文 "점진적 1만원"…이-심-유 "2020년 1만원 인상" = 특히 보수진영인 바른정당 대선주자 유승민 의원도 '3安 노동공약'을 발표하면서 "3년 내 최저시급을 1만원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현재 6470원인 최저시급을 2018년부터 연평균 15%씩 인상해 2020년에 최저시급 1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유 의원은 "최저임금 인상이 빠르게 올라가는 향후 3년 동안 영세업체 근로자의 4대 사회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보완장치를 강구하겠다"고 대안도 제시했다. 또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는 사업주에게는 징벌적 배상을 물릴 방침이다.
보수진영 내에서 지지율이 올라가는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은 더 올려줘야 한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은 서민이다. 최저임금을 아껴서 사업을 하겠다고 하는 기업은 한계에 불과하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 뜻을 내비쳤다.
국민의당 천정배 전 대표도 향후 5년간 단계적으로 최저임금 1만원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천 전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부담까지 덜어줄 수 있는 지원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 '이명박근혜 9년' 사측 의견 반영, 한 자릿수 인상 = 문제는 최저임금 인상 공(公)약이 '공(空)약'으로 그칠 위험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 역대 대선 주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말하며 노동계에게 손짓했지만 노동계가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받은 대통령은 드물었다.
특히 참여정부 이후 이명박-박근혜 보수정부 9년 동안 최저임금 인상률이 한 자릿수에 그치면서 소득불평등은 더 심화됐다.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웠던 이명박 정부와 대기업 친화적 정책을 폈던 박근혜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을 억제해왔다. 이명박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금융위기(2008년)를 제외하면 연평균 5.0%에 불과했고 박근혜 정부는 7.4%로 두 정부 모두 한 자릿수 인상률이다.
김대중 정부 연평균 11.1%(1999년 제외), 노무현 정부 10.6%포인트씩 최저임금을 올렸다.
한해 15% 이상 오른 적은 2001년(16.6%) 뿐이다.
정부는 매년 기업과 영세자영업자 등의 인건비 부담으로 인한 경영악화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사용차 측 의견에 힘을 실어 매년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노사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로 최저임금제도가 시행된 1989년 이후 30년간 법정시한 내 양측의 합의로 최저임금이 결정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난해에는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9명이 최저임금 결정방식 개선을 촉구하며 전원 사퇴서를 제출해서 파행을 빚었고, 2014년과 2015년에는 사용자측 위원들이 인상폭을 문제 삼으며 표결에 불참했다.
□ "영세자영업자 인건비 부담 보완책 마련해야" = 대선주자들이 소득불평등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면서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내세우자, 경영계나 자영업계가 입는 손실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건국대학교 최배근 경제학과 교수는 조세일보(www.joseilbo.com)와의 통화에서 "최저임금의 빠른 인상은 영세업자 및 소상공인들에게 폐업 등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면서 "정부는 임대료를 내려주거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거래 및 단가인하 규제 등을 병행해 숨통을 트일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EITC(일정소득 이하의 근로 소득자를 대상으로 소득에 비례한 세액공제액이 소득세액보다 많은 경우 그 차액을 환급해 주는 제도) 등의 장치를 마련해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수백만 명의 임금 보전을 보완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곧 내수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만만찮다.
□ "최저임금 인상, 내수 활성화" 경제선순환 '마중물' = 민주노총 김은기 정책국장은 "최저임금이 낮은 것은 맞고 임금이 인상되더라도 하청업체들은 임금에 대한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경영자 입장에서는 당장 임금이 지출되기 때문에 (임금 인상이) 부정적일 수 있지만 근로자는 임금 대부분을 시장에 소비하고 있어 결국 임금인상은 경제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2020년 이전에 실현될 수 있도록 더 서두를 필요가 있다"면서 "단순 공약에 그치지 않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핵심은 정권의 의지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최저임금 인상'만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동참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동시에 임대료 상승 등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 악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 관계자는 "최저임금 1만원도 다른 나라에 비하면 사실 많은 게 아니다. OECD 평균 노동시간을 한참 웃도는 우리나라가 임금수준은 최하위"라며 "벼랑 끝 삶에서 다들 아우성인데 이제 정권교체가 되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측을 설득해야 한다. 특히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문제는 지원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저임금위원회 노동계 위원으로 협상에 참여한 청년유니온 김민수 위원장도 "최저임금 인상을 정책 목표로 삼고 공약한 건 의미가 있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생가는 문제들, 물가인상이나 자영업자 부담, 기업의 불이행 등에 대한 대책 마련까지 포괄적으로 말해야 한다"며 "그래야 국민들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