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전문직의 자금세탁보고 입법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은 금융전문직에 대하여 자금세탁의 의심되는 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제대로 보고하지 않으면 과태료 1000만원 이하, 거짓 보고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정부는 이러한 보고의무를 금융전문직이 아닌 법률, 세무전문직 및 귀금속상, 부동산증개업자 등 비금융종사자에도 확대하려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현행 변호사법, 공인회계사법, 세무사법은 공통적으로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이를 위반하면 형법상의 업무상 비밀누설죄 혹은 해당 법률 위반으로 징역형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자금세탁의 당사자는 외환관리법 위반 뿐아니라 사안에 따라 조세포탈, 국내재산 도피죄로 엄중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법률·세무전문직이 그 업무처리 과정에서 알게 된 자금세탁 의심 사실을 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하여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가?

고객이 세무전문직 등에게 사무를 위임하였다가 비리로 고발당하여 처벌된다면 서로에게 생명과 같은 신뢰가 깨진다. 그렇게 되면 그 직역이 주어진 직무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자금세탁은 국제간에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 수법도 진화하고 있어 금융, 과세당국으로서는 묵과할 수 없는 비리이다. 각국은 이에 공동대응하기 위하여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l Task Force)를 설립하였고 우리나라도 가입국이다.

비금융전문직에 대한 보고의무는 가입국의 국제기준 이행을 위한 5대 과제의 하나로 되어 있다. 국제 법제 동향을 보면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 및 미국, 아시아권의 국가들이 이들 전문직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다. 고객의 비밀보호보다 자금세탁방지의 법익이 우선하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의 입법추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문화와 법의식에 비추어 그 도입은 면밀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각국 과세당국 사이의 과세정보교환협정이 확대되고, 해외계좌신고 의무 신설과 그 위반에 대한 과징금, 형사처벌 등의 강력한 방지 입법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

특히 이들 대상 전문직중 변호사 직역까지 확대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있다. 헌법상의 자기부죄금지 원칙 및 형사재판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형사소송법이 변호사가 업무상 위탁을 받아 소지 또는 보관하고 있는 물건이나 의뢰인 등 타인의 비밀에 관한 것은 수사기관의 압수까지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그렇다.

변호사에 대한 보고의무에 대한 입법례는 각국의 변호사 지위에 대한 역사나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르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국가 및 아시아권의 일본에서는 이를 인정하지만 미국, 캐나다 및 중국 등은 변호사를 보고의무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세무전문직을 포함한 비금융직종에 자금세탁 의심거래 신고의무를 신중한 고려 없이 확대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자금세탁방지에 대한 행정적, 제도적 노력이 앞서야지 고객에 대한 비밀유지가 있는 전문직종에 신고의무를 부과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은 안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