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클립아트코리아.
정부와 각 당, 개별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조세법 개정안들에 대한 정기국회 논의를 앞두고 정부와 정치권 간 물러섬 없는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쟁점은 '증세없는 복지'에 대한 재검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정비하거나 지하경제 양성화 사업 등을 통해 복지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권에선 법인·소득세 등 직접적인 세율인상을 통해 세수를 창출해야만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고 맞서고 있다.
야당은 일찌감치 대대적인 증세안이 담긴 자체 세법개정안을 발표했으며 내주 예정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차원의 세목별 공청회(26일-법인세, 27일-소득.부가가치세)를 통해 '증세 있는 복지' 기조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할 태세다.
본격적인 세법개정 심의를 앞두고 '세금 전쟁'의 전초전 성격이 될 공청회에서 '대야'의 힘으로 무리한 추진보다는 긍정적인 여론을 결집시켜 입법화를 성공시키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수의 조세전문가들도 복지 확대 등을 위한 증세 필요성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그 '시기'가 적절하지 못하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법인세율을 올릴 경우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세율인상분만큼 세수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는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추세다. 야권으로서도 무작정 세율인상에 나서기에는 현재로서는 명분이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법인세율 올려도 세수 더 걷히지 않는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법인세 과세표준 '5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25%의 세율을, 국민의당은 과세표준 200억원 초과 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율을 24%로 적용하는 당론 차원의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조세전문가 A는 법인세율 인상에 대해 "법인세율 인상으로 인해 내국기업 경쟁력이 약화되어 법인의 과세소득이 줄어든다면 법인세율을 인상하더라도 법인세수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특정국가가 법인세율을 인상한다는 것은 내국기업의 경우 본사를 외국으로 옮길 가능성과 외국기업이 국내진출을 꺼려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3%p 인상됐을 땐, 순 자본유출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또한 법인세가 인상되면 그 부담은 근로자와 소비자들까지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들이 근로자에게 가야할 복지혜택을 줄이거나,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리는 방법으로 법인세율 인상에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조세전문가 B는 "법인세율을 인상할 경우 결국은 그것이 법인이 부담할 것인지 개인이 부담할 것인지의 문제가 불거지게 될 것이다"라며 "법인세율을 올렸을 경우 결국 어떤 형태로든 상품과 서비스에 반영, 소비자가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금이 초과되어 걷히고 있는 이 시점에 굳이 법인세율을 올려야 하는 이유가 없다. 복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것은 인정은 하지만, 추가적인 논의를 통해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세전문가 C는 "세수 상황에 여유가 있는데, 이 시점 법인세율을 인상하자고 하면 그 누가 수긍을 하겠는가. 대단히 적절하지 않다"며 "법인세는 반드시 현행 세율을 유지하거나 낮게 유지해야 한다고는 할 수 없으나, 주변상황을 고려한 신중한 세율 인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세전문가 D는 "세율 인상을 섣불리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철저하게 세원을 관리하고 조세지출 부분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운영하는 것이 선행이 돼야 한다"며 "법인세율 등 인상은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국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법인세율을 내리는 국제적 추세와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세전문가 E는 "법인세는 이미 공제감면 정비 등을 통해 세율인상 효과를 봤고, 다른 나라도 각국별로 자국경쟁력 강화 측면에서 (법인세를)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조세전문가 F는 "외국회사들이 우리나라를 투자국으로 선정할 때 법인세율 수준을 중요하게 판단하고 있다"며 "이런 면에서 정치권이 법인세 인상을 너무 쉽게 생각해 접근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금 더 쥐어짤수록 지하로 숨는다"
야권을 중심으로 종합소득세 과세대상 중 '고소득자'를 쥐어짜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더민주는 연 소득 5억원이 넘는 고소득자에게 41%의 세율을, 국민의당도 '3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10억원 초과' 고소득자에게 각각 41%와 45%의 세율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오히려 '탈세'를 더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복지수요 증가로 의무지출이 해마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부분을 감안해, 세율을 올리는 인위적인 증세가 아닌 고소득자의 탈루 세원을 포착하는 등 세입 기반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세전문가 B는 "무조건 세율만 올리면 탈루만 늘어날 수 있다"며 "세율을 올리기 보다는 고소득자의 세원 탈루를 막는 것이 좋다. 세원 탈루를 바로 잡고, 이 부분에 대해 가산세 등으로 제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특히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을 더 내는 '누진구조'인 소득세 과세체계를 바꾸기엔 이미 높은 세부담을 지고 있어 오히려 최고세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세전문가 D는 "소득상위·하위 세부담 비율을 보면 다른 나라는 2~3배 되는데, 우리나라는 10배 정도 된다"며 "이미 소득세 누진세율이 높은 편이라 더 높일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세전문가 C는 "재정지출 수요를 고려해 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이 50% 가까이 올라와 있기 때문에 여기서 더 올리는데도 한계가 있다"면서 "최고세율을 낮추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관리재정수지는 8년 연속 적자 행진을 보이고 있고,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복지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재정건전성, 복지 부담을 위해 소득세율을 올리는 증세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찬성론도 상당수 존재한다.
조세전문가 E는 "재정학회 등의 여론조사를 보면 국민들의 다수가 추가 세부담을 지지하고 있다"며 "원칙적으로 개인소득세율 인상을 찬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소득계층, 소득종류별 세부담 수준이 과세형평성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히 고려해 반발이 최소화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세전문가 F는 "최근 야당에서 예전에 내린 법인세 부분을 다시 올려야 된다고 주장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직접세 중 소득세 부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흐름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세부담엔 형평을…"
소득이 적은 근로자들의 세금 문제도 시끄럽다.
현재 각종 감면으로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자가 48%에 달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조세부담에 형평을 위한 증세에 대해선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었다. 최소한 일정액 이상의 세금을 내도록 하는 '최저한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세전문가 E는 "면세자 비율을 축소해 세원확대, 공평한 세금분담을 통해 세제를 정상화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면세자 비율을 OECD 평균으로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세전문가 A는 "국민개세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서민들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는 한도 내에서 법인세법에서 운용하고 있는 최저한세 도입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조세전문가 D는 "근로소득자 중 세금을 내는 사람이 절반 밖에 안 된다는 것은 다른 나라와 놓고 봤을 때 우리나라가 제일 높은 수치"라면서 "(세금을) 어떻게든 낼 수 있도록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해서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거센 '임대소득 과세 유예안'을 두고선 엇갈린 목소리가 나왔다. 앞서 정부는 연간 2000만원 이하 월세 임대소득에 대한 세금부과 시기를 2년 더 미루도록 하는 세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조세전문가 D는 "소액 주택임대소득 과세는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측면에서 옳다고 본다"며 "기존에 어떻게든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십시일반 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조세전문가 B는 "소액 주택임대소득 과세는 유예하는 것이 맞다. 현실적으로 근로자소득 2000만원 미만의 경우 세금을 안 내고 있는데 과세하는 것 자체가 행정빙요이 더 들 것 같다"고 말했다.
조세전문가 C 또한 "소액 주택임대소득이라고 해도 과세는 해야 한다"면서도 "건보료 같은 부담을 적절하게 하는 조치가 선행되지 않으면서 소액임대소득을 과세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