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억새 나부끼는 다랑쉬·용눈이 오름…슬프도록 아름다운 사연 간직

제주 창조의 여신인 설문대할망이 치맛폭에 흙을 날라 쌓아 만든 것이 한라산이고 나르던 흙이 여기저기 떨어져 오름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한라산의 새끼들이라 표현하는 368개의 오름은 저마다 긴 역사와 이야기를 갖고 있다. 

제주사람들은 오름자락에 터잡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고 죽어서 다시 오름에 뼈를 묻었기에  아픔과 슬픔이 동그랗게 그려지는 곳이다. 

◆…한라산 아래 펼쳐지는 동쪽의 오름들

하지만 가을이면 제주 오름왕국은 문을 활짝 열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은빛 억새 옷으로 갈아입은 오름들이 파란 하늘 아래 넘실거리는 계절에는 저절로 노래가 나오고 시가 나온다. 

가을 오름 여행은 혼자여도 좋다.

오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나누는 한 잔의 차, 다정한 인사와 정겨운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가을이 주는 풍요가 사람의 마음도 넉넉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집에서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고 쓰레기를 다시 모아 가방에 넣어 가는 모습도 아름답다.

그 마음이 아름다운 제주도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보물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은빛 억새의 유혹에 빠지고 싶다면 작은 등 가방에 물 한 병과 간식거리 그리고 스마트폰에 배터리를 충분히 채운 후 길을 떠나보자.

◆…다랑쉬 오름 탐방 안내소

제주도의 동쪽 구좌읍 세화리 산 6번지는 다랑쉬오름이 있다.

분화구의 모습이 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도랑쉬, 달랑쉬, 월랑봉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우리의 옛 말인 달수리가 변화한 말로 봉우리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랑쉬오름 안내표지판

먼저 다랑쉬오름 입구의 탐방 안내소에 들러 다양한 사진과 정보를 챙기자.

아이들과 함께 오름을 오른다면 사전에 탐방해설사에게 미리 예약 후 이야기가 있는 탐방을 즐길 수도 있다.

다랑쉬오름 바로 앞에는 아끈다랑쉬 오름도 있다. '아끈'은 제주어로 '작다'라는 말이다.

◆…멀리 우도가 보이는 다랑쉬오름 오르는 길

다랑쉬오름을 오르면 덤으로 자그맣고 동그란 아끈다랑쉬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다랑쉬오름을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른 편이다. 처음 20미터는 나무계단으로 되어 있고 그 다음부터 정상까지 곧바로 오르고 옆으로 돌아 오르는 길이 반복된다.

◆…오름에 피어있는 들꽃

◆…멀리 성산 일출봉과 바로 앞의 작은 다랑쉬오름

멀리 성산 일출봉에서 우도까지 한눈에 펼쳐지는 동쪽의 크고 작은 오름들과 들판은 이미 가을의 오색찬란한 빛깔로 칠해져 있다.

오름 끝을 오르면 분석구가 보인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분석구는 억새숲을 안고 있다.

◆…용눈이 오름이 보이는 정상

가만히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억새와 바람의 무대를 만끽한 후 분석구 둘레길을 걸어보자. 제주 동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과 그 아래 오름부터 멀리 동쪽 바다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까지 눈을 호강시킨다.

◆…아름다운 들꽃

내려오는 길에는 아름다운 들꽃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문득 눈에 띄는 보라색 쑥부쟁이, 오이풀, 물매화, 노랑개자리, 미역취, 물봉선, 솔채….

시인이 되지 않아도 시가 절로 나올 오름 꽃길이 펼쳐진다.

◆…용눈이 오름 안내판

다랑쉬오름에서 용눈이 오름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용눈이는 용이 누운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용눈이 오름 전경

봄, 여름엔 초록빛과 들꽃들이 어우러져 아이들의 놀이동산이 되어 주고 가을엔 은빛 억새가 능선을 따라 움직이며 겨울이면 하얀 눈에 쌓인 곡선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다른 오름과 달리 능선이 마치 여러 곡선으로 겹쳐져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곳이 바로 용눈이 오름이다. 신이 만든 자연은 감히 어떤 작가도 흉내 낼 수 없음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사진기 하나를 품고 밀항해 들어와 매일 굶주림에도 사진만 찍다 간 작가 김영갑 작품 속 용눈이 오름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용눈이 오름

멀리 동쪽 끝으로 우도와 성산일출봉, 서쪽으로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 특유의 구불구불한 밭담으로 둘러싸여 노랗게 때로는 붉게 익어가는 농작물이 풍요로움보다 잔잔한 슬픔으로 다가오는 까닭은 뭘까.

넓은 면적과 평평한 땅이 아니라 자그마한 경지들이 오목조목 모여 울퉁불퉁한 곳에 바람과 싸우며 버티고 있는 듯해 가슴이 저려오는 것일까?

◆…용눈이 오름

주변에 주택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구불구불한 밭담이 지금은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옛 제주도민의 애환과 한숨 그리고 땀방울이 저기에 스며들어 있다. 그런 제주도의 혼이 함께 들어 있어 지금 더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용눈이 오름뒤로 보이는 크고 작은 오름들

어린 아이도 거뜬히 오를 수 있는 이 오름은 높이도 247미터 정도로 나지막하며 여러 화산이 기생하고 있어 능선을 따라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곳이다.

정상에 오르면 바로 정면에 숨을 헐떡이며 올라야 했던 다랑쉬오름의 나지막한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제주의 오름은 오르면 오를수록 또 다른 오름을 오르게 만드는 묘미가 있다.

◆…능선이 아름다운 용눈이 오름

작가와 내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름 하나를 오르고 내리는 시간은 여유 있게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세상 어디에도 누릴 수 없는 자연이 주는 선물 오름 산행. 제주도에 살면서 느끼는 또 하나의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