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료는 세금 아닌 세금, 보험료 아닌 보험료

지난 4일부터 개정 국민건강보험법 개정법률이 시행되어 법인이 사업주 부담 건강보험료를 체납하는 경우 법인의 과점주주가 그에 대한 제2차 납부의무를 지게 되었다.

사업주의 건보료를 개인이 책임지게 되는 것이다. 조세에 있어 법인의 과점주주가 제2차 납세의무를 지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러면 건보료는 세금인가? 결론적으로 세금은 아니지만 세금과 다를 바 없고, 보험료이기는 하지만 여느 보험료와 다르다.

건강보험은 사회복지의 중요한 축으로서 사회적 보험의 대표격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국제적으로도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되어 많은 나라가 경험을 배우고자 한다고 들었다. 불과 수 십 년 전만 하여도 약 한 첩, 병원 한 번 못 가보고 생애를 마감하였던 국민이 태반이었다. 오늘 모든 국민이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의료복지를 누리고 있는 것은 건강보험제도 덕분이다.

건강보험은 의료보험이라는 이름으로 1977년 500인 이상 직장의료보험제도를 시작해 1989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로 확대되었다. 그 동안 보험제도의 틀도 본래와는 많이 달라졌고 그 사이 의약분업 대립 등 사회적 갈등도 격심하였던 과정을 거쳤다. 건강보험의 발전 추이는 건보료의 조세화와 맞물려 있다.

보험은 원래 불의의 보험사고에 대비하여 보험사가 제시하는 보험이익과 보험료 정도를 가입자가  골라 임의로 선택하는 것이다. 사회적 보험은 국가나 고용주의 지원은 있으나 국가에 의하여 가입이 강제되어 개인에 선택권이 없다. 그리고 각기 내는 보험료가 다르지만 그 혜택은 보험료에 비례하지 않는 구조로 틀이 되어 있다.

의료보험은 초기에는 대상자나 보험료 산정 등에 있어 보험이라는 틀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이름만 보험이지 세금과 다름없는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법체계에 맞는 것일까? 다들 그러려니 하지만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먼저 건강보험은 강제적이고 보험료에 혜택의 차등화가 없다. 가입자는 물론이고 의료기관도 아무런 선택권이 없고 건강보험제도의 틀에 맞추어야 한다.

건강보험료는 직장과 지역으로 나누어지고 직장 즉 사업주는 따로 건강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한다. 직장인은 소득에 따른 요율에 의한 건강보험료를 낸다.

지역가입자는 재산과 소득에 따라 건강보험료가 책정된다. 건강보험료의 요율은 보건복지부장관 소속 건강보험심의정책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정한다. 건강보험료를 내지 않으면 국세 체납의 예에 따라 강제징수된다.

이제 법인의 과점주주에게는 제2차 납부의무까지 부과된다. 사업주가 내야 할 건강보험료액을 개인재산으로 부담하게 되었다. 1만원의 보험료를 내는 국민이나 수 천 만원을 내는 국민이나 동일한 보험 혜택을 받는다.

고액 체납 시 명단까지 공개하여 사회적 지탄을 가한다. 조세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모든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를 일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정하는 셈이다.

만일 세금이라면 그 부담액은 조세법률주의에 따라 엄격한 절차를 거쳐 국회의 통과를 얻어내야 한다. 명목이 세금이 아니다 보니 국회의 결산심사도 없고 감사원의 감사도 다르다.

보험료 징수의 효율성을 위하여 국세 등과 통합징수도 논의되었으나 무산되었다. 건강보험제도가 나름의 권력이 되어 힘을 발휘한 것이다.

명목이 보험에 불과하니 그 효율적 운용이나 적정한 보험료 책정은 세금과는 달리 투명성이 떨어진다. 국회예산처는 건강보험료가 최근 과다징수됨으로써 국민부담을 가중시켰다고 지적하면서 보험료 인상권을 행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회의록과 회의자료 공개를 주장하였다.

이러한 상황이고 보니 국민은 어떻게 보험료가 오르는지 잘 알 수도 없다. 세금이라면 턱도 없는 일이다.

2014년 건보료 수입액은 48.5조 원에 달한다. 같은 해 국가예산 수입액은 357.7조 원의 13%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다. 실질이 세금임에도 건보료의 옷을 입었다 하여 조세법률주의를 벗어나는 것은 편법이다. 개선되어야 한다.

국민복지의 가장 중요한 축인 건강복지를 위하여서는 차라리 특별목적세인 의료보장세로서 조세화하여 그 장기계획, 보장세율과 그 집행을 국회의 통제와 감시 하에 두는 것이 옳다.

그래야 낭비 없이 튼실한 의료복지를 이루어 낼 수 있다. 아울러 기본보장 이외에는 의료인과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의료보험을 허용하는 것이 헌법정신에 부합한다.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조세법의 기본원칙이 회피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틀을 바꾸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고 하여 본질이 바뀌어 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