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페이' 강요받는 수습세무사들

지난 10월 제 52회 세무사 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습니다.

총 630명의 합격자들은 수험기간 동안 쏟아부은 각자의 인내와 노력의 결과를 '합격'이라는 두 글자로 보상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습세무사로 본격적인 세무전문가의 길을 걷게 된 세무사들은 6개월간의 수습기간동안 받게 되는 급여에 당혹감을 느끼며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게 되는데요.

일반적으로 새내기 세무사들은 세무사무소에서 수습기간 동안 월 평균 70~100만원의 급여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수습세무사들은 수습기간 동안 월 100만원 미만을 받고 일하는 것이 업계의 관행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식대와 교통비 등을 별도로 지급하는 곳도 있지만 2015년 기준 최저임금(시간당 5580원)의 월급 환산 금액이 116만원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수습세무사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무급 또는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월급을 주면서 청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행태를 비꼬는 신조어 '열정페이'.

아무리 어려운 취업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사회초년생들의 열정을 빌미로,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정페이를 강요받는 현실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더구나 전문 자격사인 세무사가 열정페이를 받는다는 사실은 세무사 업계의 전체적인 위상에도 타격이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시각입니다.

한 수습세무사는 "아무리 수습이라지만 최저임금 선은 지켜줘야 한다"며 "최저임금을 한 달 기준으로 계산하면 120만원 조금 안 되는데 회사에서 월 100만원 이상은 줘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이어 "선배 세무사들 얘기를 들어보면 수습기간 때 받는 급여로는 밥값, 차비 등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돼, 신규 세무사들은 세무사 합격 후 마이너스 통장을 이용하는 것이 부지기수"라고 전했습니다.

다른 세무사는 "수습기간동안 식대를 별도로 제공 받기로 하고 월 급여 70만원 받기로 했다"며 "사실 현재도 급여가 너무 적은 수준이지만 면접을 봤던 다른 곳은 식대포함 70만원인 곳도 있었고 심지어 50만원도 있었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아울러 한 새내기 세무사는 "대표들은 돈에 연연 하지 말고 일을 배우러 왔으니 최소한의 식대나 교통비만 받고 일하라고 하는데, 이런 문화가 팽배해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최소한 하루 8시간 근무에 대한 대가는 정당하게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득권 세무사들은 세무사 시험 합격생들의 수습기간을 현행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자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시험합격자에 대한 실무수습교육기간을 1년으로 연장해 실무수습의 내실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은 현 세무사회장 선거 공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하지만 청년세무사들은 수습기간을 늘리는 것에 대해 고용주들이 수습세무사를 싼 값에 고용해 장기간 이용하겠다는 속셈이라고 주장합니다.

한 새내기 세무사는 "수습기간을 1년으로 늘리자는 것은 세무사무소를 수습세무사들만 가지고 운영하겠다는 소리다"며 "수습기간이 1년이면 이제 근무세무사도 안 뽑고 1년 단위로 계속 수습세무사만 뽑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수습세무사들은 현재의 수습 급여 시스템은 기득권의 잇속만 차리는 것이고 청년들의 피를 빨아 먹는 행태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실 세무사들의 수습기간동안 과도한 노동 착취를 겪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처음 나온 것이 아닙니다. 비슷한 자격사인 회계사는 수습기간이 2년으로 세무사보다 길지만 수습기간에도 세무사와는 다르게 적당한 보수를 지급받습니다.

세무사의 경우 수습기간 급여의 본질적 문제는 세무사들이 수습기간 동안 제공하는 근로용역을 수습과정 중 진행되는 '직무교육'에 필연적으로 따른 것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실제 '근로제공'으로 볼 것인가의 구분이 불분명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수습세무사들이 다른 일반직원들과 다르게 고객들과의 컨설팅 자리에 동석하는 기회를 얻는 것에서부터 '교육'은 시작되니 급여가 적은 것은 당연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수습세무사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은 교육보다 실제 업무와 부가적인 일이 많아 근로제공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전합니다.

한 수습세무사는 "고용주들은 우리가 교육을 해주니 적은 급여지만 많이 배우라고 하지만 사실 그렇게 직무에 대해서 배우지는 못하는 현실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세무사들은 프로그램만 기본적으로 사용할 줄 알면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할 수 있다"며 "복사 같은 허드렛일도 많이 하는데 분명한 것은 교육보다 근로제공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