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드업계가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해 외국 카드업계와 겨루기 위해서는 핀테크 발전이 시급한 상황이지만 관련법이 뒷받침되지 못하거나 업계 실정에 맞지 않는 규제정책으로 발목을 잡히고 있다.
카드업계는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고객서비스를 개선할 경우 카드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관련법 개정작업이 지연되면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빅데이터를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의 개정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국회의 딴지에 걸려 2년 뒤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카드 핀테크 성장을 내걸고 펼친 규제완화 정책이 카드업계와 보조가 맞지 않아 겉돌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빅데이터 핀테크, 법개정 늦어져 지연
금융당국은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해 신용정보법 시행령을 개정할 예정이었으나 국회가 제동을 거는 바람에 관련법 자체를 개정키로 하고 빅데이터 활성화 계획을 기약없이 미뤘다. 카드업계는 다가올 총선 이후에 개정법안이 제출될 예정이어서 빨라야 2017년에나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당초 시행령을 다듬어 비식별정보를 좀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끔 함으로써 빅데이터를 활성화 하겠다고 지난 6월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국회는 시행령을 이용해 제도를 바꾸는 것은 법 보다 하위인 시행령으로 법을 고치는 꼴이라며, 형식논리를 앞세워 제동을 건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빅데이터 핀테크를 활용한 서비스 개선에 몰두하고 있다"며 "하지만 관련법의 뒷받침이 늦어지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한상규 백승법률사무소 변호사는 "현행 신용정보법은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처럼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식별정보를 뺀 나머지인 비식별정보를 활용하더라도 개인의 동의를 매번 구하도록 해 사실상 빅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우혁 법무법인한중 미국변호사는 "금융당국은 비식별정보조차 법으로 보호돼야 할 것으로 간주한 듯 하다"며 "비식별정보의 보호여부에 관한 논쟁은 핀테크 성장을 더디게 만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빅데이터에 포함되는 비식별정보도 엄연한 개인정보"라며 "정보의 활용과 정보의 보호는 '상호교환' 관계에 놓여 있으므로 신중히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은 오는 10월 중 빅데이터 활성화를 위한 법 개정을 끝낼 계획이며 미국은 빅데이터 R&D 정책을 이미 펼치고 있다. 또 글로벌 빅데이터 시장은 연평균 27%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7년에는 그 규모가 324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 핀테크 특성 살릴수 있는 유연한 규제완화 절실
카드업계는 금융당국이 공인인증서 사용의무를 폐지하는 등 핀테크 육성을 위해 각종 금융규제를 풀었지만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정책을 추진해 핀테크 발전에 차질을 준 측면도 있다고 주장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공인인증서 사용의무 폐지의 경우 핀테크‧간편결제 열풍과 맞물려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라면서도 "아직까진 공인인증서를 뛰어넘는 보안기술이 확보되지 않아 업계는 공인인증서를 완벽히 대체할 만한 보안기술이 개발되기 전까지 몸을 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고가 발생할 경우 전자금융거래법에 따라 1차적 책임을 금융회사가 지기 때문이다.
여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카드업계 금융사고 발생율은 공인인증서 사용시 0.001%였던 반면 알리페이, 페이팔 등 해외 간편결제 플랫폼 업체들의 금융사고 발생율은 1%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카드사들은 이 정도 사고 발생율을 감안하면 간편결제 도입을 적극적으로 적용하길 꺼릴 수 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또 카드업계는 금융당국이 보안과 관련된 세세한 부분까지 가이드라인을 정해 업계를 일정한 틀 속에 가두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며 볼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3차 금융개혁회의'를 열고 비대면 실명확인 방식을 도입하면서 안정성이 검증된 4가지 방식을 우선 허용하되 이 중 2가지 이상을 채택해 더블체킹 할 것을 권고했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4가지 방식 외에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된다"며 "금융당국이 작은 요소 하나하나 핀테크 방향성을 제시하려 들면 창의성은 오히려 저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핀테크 발전을 위한 금융당국의 규제완화 의지는 환영하지만 창의적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핀테크 환경에 알맞은 유연한 정책이어야 실효성이 높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4가지 방식 중 2가지를 고르라고 한 것은 예시적 차원"이라며 "어느 정도 기본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 카드업계, 자기 '핀테크' 꼬리 물다
카드업계가 핀테크가 발전할 경우 카드시장에 비금융사 등이 진출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을 우려해 핀테크의 적극적 도입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였던 것도 카드 핀테크 발전을 저해한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카드업계가 외국보다 뛰어난 결제 인프라와 환경을 갖췄다는 지나친 자신감과 기존 카드시장이 가져다 주는 안정적 수익에 대한 미련으로, 핀테크 발전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면서 핀테크 성장판이 반만 열리게 됐다는 것이다.
금융학계 관계자는 "핀테크 성장을 더디게 한 책임소재는 카드업계에도 분명 있다"며 "외국에 비해 선진화된 카드결제 시장이 한동안 카드사들에게 안정적 수익을 안겨줬고 이것이 카드사들을 안이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10년 한국에서 모바일카드 시장이 가장 먼저 꿈틀댔다"며 "하지만 카드사들은 모바일카드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 경우 기존 카드업계의 파이가 작아질 것을 걱정해 속도를 늦춰온 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영미권의 주요 금융기관들이 비금융사들과 손잡고 핀테크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글로벌브랜드 카드사인 마스터카드와 아멕스는 대형은행, 벤처투자펀드와 협업해 핀테크 업체 투자에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마스터카드는 웰링턴 매니지먼트와 함께 지불결제 개발업체인 Mozido에 4억달러를 투자했으며 같은해 아멕스는 산탄데르 은행과 공동으로 POS(판매시점관리)단말기 업체인 iZettle에 6140만달러를 쏟아 부었다.
또 마스터카드는 작년 뉴욕에 '테크허브'를 설립한 후 핀테크 스타트업의 육성과 협업을 위한 팀을 꾸렸고 비자는 핀테크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비자 유럽콜랩'을 5월에 만들었다.
정훈 KB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신용카드 보급률과 사용률은 전 세계 1위"라며 "한국 신용카드 결제시장은 연간 약 700조원으로 경제규모에 비해 매우 큰 편이어서 카드업계의 핀테크 발전으로 인한 파급효과는 그만큼 크다"고 말했다.
카드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금융거래액 중 신용카드 결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60%로 세계 1위이며 미국은 20%, 일본 18%, 중국 8%를 차지한다.
금융학계 관계자는 "한국의 카드 핀테크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소비생활의 편의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입법과 정책리스크를 최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