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수년 동안 세무사 시험에 매진한 뒤 합격해 올해부터 모 세무사무소에 소속, 수습세무사 생활을 시작한 A세무사는 새로운 출발선에 서자 마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전문자격사'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월 80만원에 불과한 급여를 받으며 수습세무사 생활을 상당기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시험을 준비한 동안 한 두 발짝 먼저 세무사 생활을 시작한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양 피부로 느끼지 못했던 이야기가 이제는 피부와 가슴으로 아프게 느껴졌다.
한술 더떠 국내에서 알아준다는 중대형 세무법인에 '근무세무사'로 취업한다고 한들 3000만원에 불과한 연봉을 초봉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동안 시험을 준비했던 시간들을 허송했던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소기업 초봉보다 못하거나 또는 유사한 수준의 급여를 받으려고 생고생을 했다는 생각에 A세무사는 억장이 무너졌다.
# 2. 최근 개인사무소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 2년차 B세무사도 고민에 휩싸였다.
시골인 고향에 내려가서 개업을 하자니 확보할만한 우량 거래처들이 너무 없고, 그렇다고 연고가 없는 서울에서 개업을 하자니 거래처 확보가 막막한 것이었다.
그는 차라리 서울에 있는 일선 세무서에 들어가 수습을 하며 고객을 확보하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 생각을 접한 주변 지인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20년차 세무공무원도 아닌 수습세무사가 잠깐 세무서에서 근무했다고 해서 고객이 굴러들어올리가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개업준비를 한답시고 마이너스 통장 5000만원도 다 써버린 상태에서 B세무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 3. 이제 막 세무사 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C세무사는 지난 6월 있었던 세무사회장 선거과정을 유심히 지켜보게 됐다. 회장이 누가 되든 큰 관심이 없었지만 각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은 자신의 밥벌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관심있게 본 것이다.
하지만 특정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던 C세무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습 세무사들은 기존 월 50~80만원을 받고 일하고 있는데 이들의 수습기간을 기존 5~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겠다는 공약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공약 상 명분은 '세무사시험합격자에 대한 실무수습교육기간을 1년으로 연장해 실무수습 내실 강화' 였지만 결국 수습을 고용하는 기존 세무사 및 세무법인들의 부담을 줄인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수습 급여로는 도무지 생활이 불가능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할 지경이지만, 이를 6개월이나 더 하도록 만든다는 공약을 본 그는 울화통이 터졌다. "수습기간이 6개월 길어졌으니 그 안에 개업준비, 고객확보를 더 철저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친구의 실없는 말에 C세무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겉과 속 다른 시장의 현실
정확성 여부와 관계없이 드러나 있는 수치적 측면을 볼 때, 세무사 시장의 상황이 그닥 나쁘다고 보기는 힘들다.
세무사 1인당 매출액은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세무사회 예산안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세무사회에 소속된 개업회원(법인 소속 세무사 포함) 수는 6485명에서 11082명으로 70% 가량 증가했다.
회원 증가에 힘입어 세무사들의 총 매출도 늘었는데, 2004년에 1조2400억원이던 것이 2014년에는 2조8000억원으로 무려 125%나 증가했다.
세무사 1인당 평균 매출은 1억9100만원에서 2억5200만원으로 6100만원이 늘었다.
10년 동안 1인당 평균 매출이 32%(연 평균 증가율 2.7%)나 증가한 것이다. 회원수 증가폭보다 매출이 더 크게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 5년 동안으로 기간을 축소해 보면(2010년~2014년) 1인당 매출액은 2억3200만원에서 2억5200만원으로 8% 증가하는데 그쳤다(연 평균 증가율 1.6%). 매출 증가율이 눈에 띄게 둔화된 것이다.
이 같은 수치는 세무사회가 매년 회원들의 매출액에 일정액을 부과하는 '실적회비(신고매출액의 1/400)' 납부실적을 토대로 뽑아낸 것으로 100%까지는 아닐지라도 세무사들의 '벌이'를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주는 수치다.
하지만 여기에 '맹점'이 존재한다. 인당 평균으로 계산했다는 측면에서 현실적인 매출의 고저는 매우 크게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간과된 것이다. 특히 젊은 세무사들은 이 수치를 절대로 믿지 않는 눈치가 역력하다.
서울지역에서 개인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30대 중반의 한 젊은 세무사는 "세무사들의 총 매출액은 2조8000억원, 1인당 2억5200만원이나 되지만 소수가 많은 매출을 내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이에 한참 못미치는 매출을 내고 있다"며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내 전체 파이가 커지거나 업계 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영세하게 사무실을 운영하는 세무사들의 수익구조가 개선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위 아래 다른 시장의 현실
개업 10년차 이상 중진 세무사들은 세무사회 차원에서 '기장료 현실화(인상)'를 추진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십 수년 동안 세무사들의 주요 수입원인 기장료는 10~20만원 수준에서 변동이 없었다. 오히려 '덤핑'을 통해 실질적인 평균 단가는 더 낮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장료 덤핑은 궁극적으로 세무사 업계의 '공멸'을 야기할 주범으로 꼽히고 있지만 덤핑을 통한 싼 기장료 전략은 상대적으로 영업력과 실무능력이 부족한 신규 개업 세무사들이 그나마 고객에게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장료 문제에 있어서 세무사들이 목소리는 하나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일 뿐, 시장의 온도차는 계층에 따라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그 다름이 겉으로 표출되지만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세청이 세무조사 무마를 대가로 세무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세무대리인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침에 대한 입장 또한 개업 10년차 이상 중진 세무사들과 신규 개업 세무사들이 상반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중진 세무사들은 국세청의 방침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지만 국세청 인맥이 없어 이를 활용할 수 없는 신규 세무사들은 기존 관(官)출신 또는 대형법인들의 손발이 묶일 것이라며 환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무사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세무공무원들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관(官) 출신이 아닌 세무사들이 세무공무원을 만나기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온 사무장들이 더 관과의 관계는 물론 거래처와의 관계가 유연하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나온다.
"오죽했으면 실질적으로 사무장들에게 '고용'된 세무사가 많다, 는 이야기까지 나오겠는가. 이게 현실이다."
시험 합격 후 시장에 뛰어든 신규 개업 세무사들은 현재의 시장 체제가 혁파되지 않는 한 오랜 시간 동안 악전고투 상황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돌파구'는 없다?
이처럼 세무사 업계가 어렵다는 이야기는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
그런대로 먹고 살만큼 기반을 닦은 중진 세무사들 조차 시장 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져가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오히려 이들의 목소리가 더 도드라진다.
먹고살기 위해 사방팔방 뛰느라 목소리를 낼 시간조차(?) 나지 않는 절대 다수의 젊은 세무사들의 사정은 표면에 드러난 것 이상으로 더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새롭게 당선된 세무사회장의 공약 또한 시장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지난 6월30일 세무사회 정기총회에서 새 세무사회장에 당선된 백운찬 회장.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관세청장을 역임한 그는 자신이 세무사들의 업역을 지키겠다는 공약을 앞세워 다수 회원들의 선택을 받아냈다.
그의 출마 공약은 정부로부터 납세협력비용 축소정책에 따른 외부조정계산서제도 폐지를 막아내고, 타 자격사들의 업역 침해를 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세무사 선발인원을 현행 630명에서 500명 수준으로 축소해 과잉공급의 파이프라인을 틀어막겠다고 밝혔다.
그가 내놓은 약속들이 얼만큼 현실화되고 지켜질지,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모두 지켜지고 현실화된다 해도 이미 팍팍해질대로 팍팍해진 시장의 상황을, 세무사들의 살림살이를 확 바꿔놓기는 힘들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