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돈키호테'…시작하면 끝내주는 '남자(男子)'

줄탁동기(啐啄同機)가 배어든 삶…국세행정 업그레이드

50년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 국세청의 행정수준이 지금은 해마다 외국 국세청 여러 곳에서 '벤치마킹'을 하려고 찾아올 만큼 선진기법의 세정과 제도를 자랑하지만, 국세청 세정기법이 처음부터 이처럼 뛰어나게 갖춰지지는 않았다.

반백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전·현직 국세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닥치며 쌓은 경험을 통해 국민인 납세자들의 불편사항 해소를 위해 노력했고, 미래를 향해 지속적으로 혼(魂)을 담아 각종 개선을 했기에 현재 모습을 갖게 된 것.

이런 국세청 직원 중에는 특히 "어느 개인 혼자가 아닌 여러 사람이 모여야 큰 성과를 낼 수 있으며, 개인이 가진 조각 정보가 모여야 완전한 정보가 성립된다"는 '융합이론(融合理論)'으로 무장, 각종 제도개선으로 국세행정수준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놀라운 인물이 있다.

이달 말 서인천세무서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하게 된 임병호 서장(사진)이 바로 그 주인공.

40년 가까운 공직생활 내내 국가에 대한 사명감이 남달랐던 임 서장은 언제나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의 신동력이 무엇일까 고민해 왔으며, 새로운 제도에 대한 끝없는 제안으로 '국세청 제도개선 아이디어맨'의 아이콘으로 각인됐다.

1957년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난 임 서장은 통진종합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76년 총무처에서 실시한 9급 공채시험에 응시해 합격했고, 학업의 길을 살리기 위해 곧바로 경기대학교 행정학과(야간)에 입학했다.

대대로 농사를 지어왔던 고령의 부모님은 4녀2남의 다섯째로 태어났지만 장남이었던 그에게 대학진학대신 대를 이어 농사를 지을 것을 바랬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공무원을 권유하면서 스스로 돈을 벌며 배우는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험한 길을 걷게 된 것.

1977년 3월 평택세무서 간접세과에서 약관도 되지 않은 19세의 앳된 나이로 농가를 찾아다니며 밀주단속을 하는 업무로 국세청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40년에 가까운 38년 4개월 동안 오롯이 국세청에서만 근무하며 국세행정 발전에 이바지 했다.

■ 미래의 신동력을 고민하는 사람…제도개선 '제안(提案)의 왕'

 
천성이 적극적이고 화통한 성격의 그는 매사에 긍정적인데다 깔끔한 일처리로 관리자들의 눈도장을 받았고, 용산·중부·송파·개포·삼성세무서 등에서 법인세과에서 일하며 '법인세통'으로 처음부터 싹수를 인정받았다.

국세공무원으로서의 공직생활 초기 10년가량은 임 서장 역시 대다수의 다른 국세청 직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 간혹 제도적인 문제가 불편하기도 했지만, 주어진 제도의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묵묵히 자신에게 맡겨진 일만 수행해 왔던 것.

그런 그의 소극적인 자세는 한양대 행정대학원에서 1992년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마인드로 180도 바뀌게 된다.

석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몸소 ‘문제점에 대한 가설→다양한 정보수집 및 분석→현황 및 문제점 발견→개선방향 및 기대효과 도출‘ 등의 형식을 학술적으로 갖춰야 하는데, 이를 실생활에 접목하면 제안 등을 통한 업무개선도 이룰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

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통계에도 눈을 뜨게 되면서 그는 국민인 납세자의 편의는 물론 공무원의 업무량 감소 및 업무효율성 증진, 그리고 이에 더해 예산절약까지 1석4조의 효과가 가능한 제도개선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특히 당시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국민 불편해소 ▲업무효율 제고 ▲예산절감 등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개선 아이디어 제안을 다양한 루트로 현장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공모하고 있던 터. 그는 이때부터 각종 제도개선에 참여, 훈장과 대통령 표창 등을 휩쓸게 된다.

그가 처음 제도개선에 관심을 갖게 된 분야는 조사현장에서 전용면적 25평이하 주택대출과 관련된 부당행위부인 관련 인정이자를 계산해서 급여로 보는 규정에서 아파트 전용면적의 과대표시 문제.

1994년 이전에는 여러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아파트 전용면적을 실제보다 부풀렸지만, 건설교통부와 행정자치부 등 정부의 관리소홀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전국의 아파트 190만 세대의 6%에 해당하는 10만명이 넘는 아파트 소유자들이 부당하게 국민주택규모초과 소유자로 서류상 내몰렸고, 이 때문에 각종 제도혜택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괜한 세금부담이 늘어난 이들은 각종 민원을 야기시켜 행정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국민고통 증가와 행정력 낭비에 안타까움을 느낀 그는 국세청 기준시가액표를 통해 전국의 전용면적 과대표시 아파트 명단을 일괄 추출한 뒤 일괄 오류수정이라는 획기적인 개선방안을 마련, 관련 정부부처를 찾아다니며 끈질길 설득 끝에 행정적·법적문제를 해결했다.

국제화시대에 맞춰 크게 수요가 늘어난 영문민원증명과 관련해서도 납세자들이 과거 수백만원의 비용을 들이고도 오랜 시간을 발로 움직여 수동으로  발급받아야 하는 불편을 신청과 동시에 발급받을 수 있는 '영문민원증명 자동변환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도 그의 작품.

그가 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전 납세자들은 '영문민원증명 발급신청→한글민원 서류발급→영문서식 별도 출력→번역소에서 영문서류 작성→세무서 재방문(디스켓으로 신청)→민원담당직원 영문서류 검토→영문민원서류 발급'이라는 7단계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세무서를 2회나 방문해야 함은 물론 영문서류 번역을 위해 외부에 번역료를 지불해야 했고, 세무사를 통해 영문증명 1통을 발급받으려면 부르는 게 값일 만큼 수백만원의 비용이 필요했다. 또 영어실력 등의 이유로 발급에 필요한 검토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터.

이같은 문제를 알게 된 그는 당시 문화관광부 등으로부터  주소 로마자 표기시 미국식으로 자동전환방법(逆주소방식)을 직접 익혔고, 무려 8개월간의 끈질긴 노력과 집념으로 1300여개의  국세청분류 업종을 영문표기화했다.

또 1만8134개의 영문상호와 기업현황을 수집·편집해 사업자번호만 입력하면 영문으로 자동변환되는 전산프로그램을 개발해 냈다.

이를 통해 지난 2002년 1년 동안 2000건에 불과했던 영문민원 발급건수가 자동변환프로그램을 개발된 직후인 2003년 7월 이후엔 딱 2달 동안의 발급실적이 2만4452건에 달할 만큼 민원인 불편이 획기적으로 개선됐고 현재에는 훨씬 많은 민원증명이 영문으로 발급되고 있다.

결과야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처음으로 영문민원증명 자동변환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 실현가능성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 사람들이 많았고, 되레 엉뚱한 발상을 한다고 하여 '돈키호테'라는 별명만 얻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일의 결과는 국세공무원 뿐만 아니라 전체 공무원 나아가 국가발전, 세계화의 초석이 될 것으로 굳게 믿었고, 성공을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을 끝까지 설득해서 일을 추진했다.

그 결과 그는 '돈키호테'라는 별명뿐만 아니라 '국세청 최고의 아이디어맨' 그리고 '시작하면 끝내주는 남자'로 불리게 됐다. 또 열정적인 노력을 통한 국세행정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가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훈장을 받았고, 이달의 국세인으로도 선정된다.

■ 걸음마다 남긴 족적(足跡)…국세행정 업그레이드에 일조
 
임 서장이 엉뚱하면서도 다소 기발한 발상을 토대로 국세행정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개선한 흔적은 그가 지나쳐온 걸음마다 뚜렷한 족적으로 남아있다.

IMF사태로 인해 전 국민들이 금모으기에 나서 외환보유고를 늘려야 할 만큼 국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그는 당시만 해도 과세 사각지대에 있던 외국계기업 임직원들의 스톡옵션에 대한 세원을 발굴, 이에 대한 과세로 수조원에 이르는 외환보유고 증대에 일조했다.

또 국세청 법인납세국에 일할 땐 수많은 국민들이 ARS700번 전화요금을 이용해 십시일반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음에도 증빙자료미비로 무려 1조원이 넘는 기부금에 대해 국민들이 소득공제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알게 된다.

그는 이 때 국세청 등 정부는 세무조사를 하면서 필요할 땐 과세자료제출법에 따라 납세자로부터 자료제출을 강제로 받을 수 있는데, 국민들은 왜 정부로부터 필요한 소득공제자료를 제출받을 수 없는가 하는 다소 엉뚱하면서도 합리적인 생각을 갖게 됐다.

이에 따라 그는 국세청이 보험사에서 보내는 보험납입증명, 통신사들로부터 기부와 관련된 ARS700번 전화요금 자료 등 공제자료를 일괄적으로 제출받고, 이를 소득공제대상 근로자들에게 국세청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도록 제도를 개선시키는 등 연말정산 간소화에도 크게 일조했다.

이는 국세청이 전국민이 만족하고 사회적비용을 획기적으로 축소하는 연말정산간소화 시스템 개발에 전격 나서게 되는 계기가 됐으며, 공무원 재산등록시스템 등 국가기관의 종이 없는  행정 실현에도 중요한 근거 아이디어가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국세청 법무심사국에 재직할 땐 심리자료 전산관리시스템 개발을 통한 '국세불복업무의 간소화 방안'을 마련했는데, 엄청난 종이 및 인건비 절감효과와 함께 현재 국세청이 실시하는 조사 및 세원관리분야에 적용하는 전자서고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국제거래 분석역량 강화를 위해 전세계 1억개에 달하는 상장기업 등의 정보를 총망라한 국제거래세원 통합분석시스템(ICAS)을 구축, 국내외 거래에 대한 상호연계검증 등 종합적인 분석을 가능케 하면서 후일 추진된 빅데이타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다양하고 방대한 외국기업 재무자료를 폭넓게 활용함으로써 내국법인의 이전가격 분석 및 조사에서도 납세자가 제출한 이익률 비교대상 자료의 타당성을 객관적・종합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됐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급보증 이전가격 과세기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퇴직 이후 고향 부근인 검단지역에 세무사사무실을 낼 계획인 그는 "역외탈세나 국가간 조세관련 사항 그리고 국내에 복잡한 세무문제 등 어떤 것도 해결에 자신이 있다"며 "지금까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도도 만들어왔다. 대응논리를 개발할 잠재능력 충분하다"고 자신했다.